[시사위크=은진 기자] 조선·해운업의 부실을 규명하고 책임을 추궁할 목적으로 열린 청문회장의 분위기가 훈훈했다면 누가 믿을까. 청문회 시작 10분 전부터 입장하기 시작한 핵심 증인들의 얼굴은 밝았다. 청문회장에 모습을 드러낸 강만수 전 산업은행 회장은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동창회에서 만난 듯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민유성 전 산업은행 회장 역시 나란히 앉은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과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부실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정부의 입장을 ‘방어’하는 데만 급급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위치한 경남 거제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김한표 의원은 “정부에서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서별관회의를 했는데 만약 그때 그 자금지원이 안 됐으면 어떤 현상이 일어났겠느냐”고 유일호 경제부총리에게 물었다. 유 경제부총리는 “지원이 안됐으면 즉각적인 손실이 왔을 것이다. 당시로선 그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장단을 맞췄다.

‘책임 추궁’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의원들은 증인심문을 통해 최은영 전 회장에게 사재 출연 등 사회적 기여를 촉구했지만 최 전 회장은 “앞으로 사회에 기여할 방안에 대해서 고심하고 있고 주변 여러분에게 많은 조언을 구하고 있다” “제가 검찰 조사를 받고 있어서 정신이 없어 생각해보지 않았다. 앞으로 고민해보고 실천하겠다”고만 말했다. ‘책임을 지겠느냐’는 질의에도 “도의적인 책임을 통감 한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당초 서별관 청문회는 큰 기대와 함께 시작됐다. 대우조선해양에 정부 자금 지원을 주도한 최경환·안종범·홍기택이 청문회 증인으로 채택돼야 한다는 야권의 요구와 함께 국민의 기대도 커졌다. 금융권 수장과 경제부총리 등 ‘경제통’들이 모여 논의하는 비공개 경제회의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우리나라의 ‘주력 산업’이던 조선·해운업이 어떻게 몰락하게 됐는지 철저하게 밝혀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같은 기대는 일찌감치 무너졌다. 청문회 증인으로 최경환·안종범·홍기택을 채택하지 않으면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도 없다던 야권이 한발 물러서면서다. 현직 의원인 최경환 의원과 안종범 청와대 참모가 상임위 청문회에 나선다는 게 맞지 않다는 새누리당의 논리를 인정한 셈이다. 그나마 증인 목록에 오른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은 지금 이시간까지도 ‘행방불명’이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의 한 구절이다. 이번 청문회는 그 반대로 진행됐다. 기대를 충족시키기는커녕 ‘맹탕’ ‘허탕’ ‘깃털’이라는 평가만 남겼다. ‘보여주기’ 식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어쨌건 청문회는 끝났다. 이제는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가 진행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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