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누리당의 유력 대권주자로 점쳐지고 있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페미니스트 선언이 보수진영의 진보적 의제 선점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뉴시스/신화>

[시사위크=은진 기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자신의 유엔총회 마지막 연설에서 ‘페미니스트’ 선언을 했다. 여권의 유력 대권주자로 입지를 굳히고 있는 반 총장이 진보적 이슈로 발을 넓히고 있는 모습이다. 반 총장이 새누리당에 입당하게 되면 보수진영에서는 여성 문제를 끌어안으며 지지층 확장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이주민·탈북자 문제에서 이미 주도권을 쥔 새누리당이 페미니즘 논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지 주목된다.

반 총장은 20일(현지시간) 미국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1차 유엔총회 개막연설에서 “나는 재임 중 유엔 고위직에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여성들을 임명했고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부를 수 있게 돼 자랑스럽다”며 “민족·종교·성적 지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의 권리를 수호해왔다”고 했다.

반 총장은 대권주자로 거론되기 이전에도 여성 문제에 있어 진보적 견해를 밝혀왔다. 지난 3월 제60차 유엔여성지위위원회 연례총회에서는 “아직도 여성 의원이 한 명도 없는 의회를 가진 나라가 4개국, 여성 각료가 없는 나라도 8개국이나 된다”며 “여기서 그 나라들을 밝히진 않겠지만 여성 없는 국회와 내각이 없어질 때까지 매일 발전상황을 확인하고 밀어불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반 총장의 진보적 시각이 여성 문제에 둔감했던 새누리당의 태도 변화를 이끌지 관심이 쏠린다. 새누리당은 지난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촉발된 여성혐오 논란에 침묵하며 소극적인 대응을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상식선에서 이런 문제의 재발방지책을 강구해야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와중에 새누리당은 이 문제에 관심을 표하는 지도부가 없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새누리당은 진보적 의제 싸움에서 항상 더민주보다 앞서 있었다. 표를 확장하기 위한 전략이었지만 그 효과는 상당했다. 조명철 전 의원은 최초의 탈북자 출신 비례대표였다. 이자스민 전 의원 역시 ‘다문화 1호 의원’으로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 개선에 앞장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이 전 의원과 자주 동행했다. 차츰 이주민·탈북자 문제는 ‘보수의 의제’라는 프레임이 굳어졌다. 빨간색으로 당색을 바꾼 것도 이같은 ‘좌클릭’ 행보의 일환으로 해석됐다.

이자스민 전 의원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당연히 민주당에 들어갈 것이라 생각했다. 민주당이 그래도 진보적인, 소수자 이슈에 더 관심이 많으니까. 그런데 민주당은 안 받아들였다”며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고 들었다. 반면 한나라당은 (정치적으로) 상황이 안 좋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 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많아야 할 진보진영이 상대적으로 해당 이슈에 무관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민주를 비롯한 진보진영에서는 ‘정권심판론’을 중심으로 정치·경제적 이슈만을 주로 띄우고 있다. ‘원내 유일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의당마저도 ‘메갈리아’ 논란에 휩싸이면서 여성문제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처럼 진보진영의 대안이 없는 한 새누리당의 의제 선점과 확장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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