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창수 회장이 이끄는 전경련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 <뉴시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 회장이 연이은 정치적 논란을 빚고 있다. 전경련이 발표한 기업경영헌장 실천지침을 스스로 어기며, 애초의 전경련 설립 취지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향한 수상한 돈

최근 정국을 강타하고 있는 이슈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다. 두 재단은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정부 차원의 특혜와 주요 기업들의 수상한 자금 출연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지난해 10월 미르재단이 설립될 당시 주요 기업들이 출연한 자금은 486억원이다. 삼성그룹이 4개 계열사에서 총 125억원, 현대차그룹이 3개 계열사에서 총 85억원, SK그룹은 SK하이닉스를 통해 68억원, LG는 2개 계열사에서 총 48억원을 출연했다. 그밖에 포스코(30억원), 롯데그룹(28억원), GS그룹(26억원), 한화그룹(15억원), KT(11억원), LS그룹(10억원), 한진그룹(10억원), CJ그룹(8억원), 금호아시아나그룹(7억원), 두산그룹(7억원), 대림그룹(6억원), 아모레퍼시픽(2억원) 등 쟁쟁한 재벌 그룹이 이름을 올렸다.

K스포츠재단 역시 지난 1월 설립 당시 주요 19개 기업에서 288억원을 거둬들였다. 삼성-현대차-SK-LG-포스코-롯데-GS-한화 등으로 이어지는 자금 출자 규모 순서는 미르재단과 판박이다.

기업들로부터 돈을 걷은 곳은 전경련이다. 전경련은 두 재단이 지향하는 활동과 관련해 기업들이 공감대를 갖게 됐고, 자발적으로 출연금을 모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두 재단이 그만한 가치를 지녔다고 보긴 어렵다. 신생 재단일 뿐 아니라, 두 재단의 정관이 일부 단어만 다를 뿐 흡사한 것으로 확인되는 등 수상한 점이 많다. 실제 두 재단 모두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여러 문제를 드러내기도 했다.

해당 기업들이 다른 재단이나 활동에 자금을 출연하는 것과 비교해도 규모 및 방식에서 차이가 크다. 이미 비슷한 유형의 사회공헌사업을 진행 중인 기업이 모금에 참여하거나, 해당 기업이 모금 참여 이유를 뚜렷이 밝히지 못하는 등 이해하기 힘든 정황이 적지 않다.

이와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모금을 진행한 전경련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의 입김에 의해 두 재단에 대한 모금이 진행됐고, 전경련이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전경련 측은 사실무근이란 입장이다.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청와대 개입설을 일절 부인하며, 해당 기업들의 의견을 모아 자발적으로 모금을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 정치적 논쟁 중심에 선 전경련

▲ 지난 5월,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전경련과 어버이연합의 수상한 자금 흐름 관련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뉴시스>
미르재단 및 K스포츠재단, 그리고 전경련 및 청와대를 둘러싼 의혹과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순수 민간종합경제단체’를 표방하는 전경련이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섰다는 점이다.

1961년 설립된 전경련은 설립 목적에 대해 “자유시장경제의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의 발전을 위해 올바른 경제정책을 구현하고 우리경제의 국제화를 촉진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전경련은 2013년 발표한 기업경영헌장 실천지침 중 제4장 15조(정치적 중립성 유지)를 통해 ▲기업은 개인의 참정권과 정치적 의사표현을 존중하되, 회사 내에서는 조직 분위기를 저해하는 일체의 정치활동은 인정하지 아니한다 ▲기업은 기업의 자금, 인력, 시설 등을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지 아니한다 ▲기업은 대(對)정부 관련 부적절한 거래를 지양하고, 각국의 관련 법규를 준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전경련이 정치적 논란에 연루되는 일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에 전경련의 자금이 흘러들어간 정황이 드러나 정치적으로 뜨거운 논란이 일었다. 전경련과 어버이연합의 수상한 관계는 아직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전경련 회장은 GS그룹 오너인 허창수 회장이 맡고 있다. GS그룹 역시 미르재단 및 K스포츠재단에 각각 26억원과 16억원을 냈다. 재벌그룹 중 7번째로 큰 규모이며, 모금에 참여한 계열사는 총 8곳으로 가장 많다.

허창수 회장은 2011년 전경련 회장에 취임한 이래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어버이연합 논란이나 이번 두 재단 모금 논란 등이 일 때는 어떠한 해명이나 입장도 밝히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이다.

전경련 회장은 재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중심을 잡고, 전경련의 본래 취지에 맞는 활동을 이끌어야 한다. 그러나 허창수 회장이 이끄는 전경련의 최근 모습은 전경련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이 들게 만든다.

그동안 꾸준히 제기됐던 ‘전경련 해체’ 요구가 다시금 고개를 드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국민의당 장진영 대변인은 23일 논평을 통해 “정권 실세들이 호가호위하며 불경기에 허덕이는 기업들의 팔을 비틀어 돈을 뜯어내는 것이 자유시장경제 창달인가. 극우단체에 뒷돈을 주고 국민 여론을 왜곡하는 것이 건전한 국민경제발전인가”라며 “본래 설립취지를 벗어나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 기업의 발목을 잡고 걸림돌이 된다면 해체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심상정 대표 역시 이날 “어버이연합에 돈 대주고, 대통령 노후자금 대주는 전경련은 더 이상 경제단체라고 볼 수 없다. 정경유착의 온상이고 비리·부패 주범인 전경련은 이제 해체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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