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이 합작한 HDC신라면세점은 “삼성동 아이파크타워(사진)를 면세점 2호점 후보지로 내세워 입찰에 참여한다”고 28일 밝혔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삼성동 아이파크타워를 면세점 2호점 후보지로 내세워 입찰에 참여한다.”
현대산업개발이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 특허 참여를 선언했다. 이번에도 호텔신라와 손잡고(HDC신라면세점) 경쟁에 뛰어든다.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타워를 면세점 2호점 입지로 정한만큼, 이미 출사표를 던진 현대백화점과 ‘삼성동’ 같은 지역에서 경쟁을 벌이게 됐다. 문제는 3장뿐인 티켓 중 현대가(家)에서 2장을 모두 차지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식으로든 친족 간 혈투가 불가피해진 셈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현대산업개발이 면세점 과욕에 무리수를 뒀다는 뒷말이 적지 않다.

◇ ‘면세점’이 뭐길래… 친족 간 혈투 촉발한 현대산업개발

호텔신라와 현대산업개발이 합작한 HDC신라면세점은 추가 신규 특허권을 신청하기로 했다고 지난 28일 밝혔다. HDC신라면세점은 호텔신라가 50%, 현대산업개발·현대아이파크몰이 50%씩 지분을 투자한 합작법인으로, 현재 서울지하철 1호선 용산역에서 ‘신라아이파크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2호점 입지로는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타워를 정했다. 현대산업개발의 사옥으로, 현재 업무시설로 사용 중이다. HDC신라면세점 측은 서울 시내면세점 9곳 중 8곳이 강북에 있는 만큼 강남에 면세점을 운영함으로써 ‘용산-중구-강남’을 잇는 ‘면세점 벨트’를 완성해 관광산업의 질적 개선에 기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HDC신라면세점이 2호점 입지로 선정한 아이파크타워 맞은편에는 이미 출사표를 던진 현대백화점의 후보지(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가 위치해있다. 두 곳은 직선거리로 500m 정도에 불과하다. 게다가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5촌간으로 당숙과 조카 사이다. ‘삼성동’이라는 좁은 지역에서 범현대가의 혈투가 예고된 셈이다.

지난해 신규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서 고배를 마셨던 현대백화점은 일찌감치 삼성동 무역센터점을 후보지로 내세우고 차근차근 준비해왔다. 현대산업개발은 현대백화점이 해당 지역에 이미 후보지를 선정해두고 오랜 시간 준비를 해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삼성동에 후보지를 정했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전사적 힘을 쏟아 붓고 있던 현대백화점 입장에선 턱밑에 칼을 겨눈 쪽이 ‘집안사람’이라는 점에서 곤혹스러워졌다.

물론 후보지 선정은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의 자유다. 입지와 상권, 교통 등을 고려해 면세점 선정에 유리한 후보지를 택하면 된다. 문제는 단 세 장뿐인 면세점 티켓을 ‘삼성동’이라는 한 지역에 두 장이나 배정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이다.

현대산업개발과 현대백화점 두 그룹이 범 현대가(家)에 속한다는 점도 치명적이다. ‘현대가’에 특허권을 몰아줄 경우 특혜 논란에 휘말릴 것이 뻔해서다. 관세청도 이 부분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HDC신라면세점 측은 이번 면세점 사업자 선정에 출사표를 던지면서 “강남지역에 면세점을 오픈해 성공 모델을 확대하고 ‘재계의 화합’ 분위기도 확산시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화합’도 ‘상생’도 사실상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 서울의 한 면세점에서 중국인 관광객(유커)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 “공멸한다”며 추가 특허 반대하다가 발빠르게 도전 선언

더구나 HDC신라면세점 측이 2호점 입지로 정한 삼성동 아이파크타워는 현대산업개발 본사로, 현재 사무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설계 당시 사무용(오피스용)으로 설계된 건물인 만큼 면적이 좁고 층간 높이가 낮다는 게 단점으로 꼽힌다. 또 주변에 지하철역이나 코엑스 등에서 바로 연결되는 통로가 없어 현대백화점에 비해 입지적으로 불리하다. 현대산업개발은 이번 면세점 사업을 위해 아이파크타워를 업무시설이 아닌 상업시설(판매시설)로 용도변경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지 선정 문제와 이에 따른 도의적 논란 외에도 HDC신라면세점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당장 HDC신라면세점에 지분을 참여한 호텔신라의 ‘과점’ 문제가 이번 입찰에서도 논란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현재 국내 면세점 시장은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이 시장점유율 80% 수준을 기록하며 과점하고 있다. 호텔신라가 현대산업개발과 손을 잡은 이유도 이 같은 논란을 상쇄시키기 위한 의도였다.

특히 올 초 관세청의 서울 시내면세점 추가특허 발표 직전까지 ‘면세점 추가 반대’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했던 점도 논란거리다. 지난 4월 양창훈 현대아이파크몰 사장(HDC신라면세점 공동대표)은 한화, 신세계, 두산 등 신규면세점 사장단과 함께 관세청을 찾아 ‘면세점 추가 특허’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면세점 특허를 또 내줄 경우, 공급과잉으로 업계가 공멸한다’는 것이 신규 면세점 사업자들의 논리였다. 신규 면세점 업체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적어도 1년 정도는 추가 출점을 내줘선 안 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하지만 HDC신라면세점과 신세계DF는 말을 바꿔, 되레 입찰에 나서 이율배반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HDC신라면세점이 이런 논란에도 면세점 사업에 ‘또’ 도전하는 이유는 그만큼 ‘돈이 되는 사업’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국내 면세점 매출액은 총 9억6794만 달러 규모(약 1조600억원/내·외국인)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최대치였던 지난 7월(9억536만 달러)보다 6.9% 증가한 사상 최고액이다.

하지만 업계 간 경쟁이 뜨거워지면서 생각만큼 실속을 차리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올 3월에 오픈한 HDC신라면세점은 상반기에만 매출 945억원, 순손실 80억원을 기록했다. 당초 연간목표액 1조원을 설정했지만, 이대로라면 목표액의 절반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신세계, 두산 등 다른 신규 면세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지만, 애초부터 ‘삼성과 현대의 합작’으로 가장 경쟁력을 갖췄다고 기대를 모았던 점을 감안하면 HDC신라면세점의 손실은 뼈아프다. 여기에 신규 면세점이 늘어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 앞으로의 상황은 장담할 수 없다.

▲ 이번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사업자 선정은 지난해 7월(HDC신라면세점·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선정)과 지난해 11월(신세계·두산 선정)에 이은 3번째다. 이번엔 총 4곳(대기업 3곳, 중소·중견기업 1곳)의 사업권을 놓고 7~8개 업체의 격돌이 예상된다. <뉴시스>
◇ 서울 면세점 추가 티켓 3장 놓고 ‘강남 대전’

이번 서울 시내 면세점 신규사업자 선정은 지난해 7월(HDC신라면세점·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 선정)과 지난해 11월(신세계·두산 선정)에 이은 3번째다. 이번엔 총 4곳(대기업 3곳, 중소·중견기업 1곳)의 사업권을 놓고 7~8개 업체의 격돌이 예상된다. 면세점 특허 기간이 현행 5년에서 10년으로 변경되면서 당분간 시내면세점 사업권 선정이 없는 만큼 업계의 관심이 뜨겁다.

일찍부터 도전 의사를 분명히 밝힌 기업들은 지난해 특허 재승인에 실패한 롯데와 SK네트웍스, 그리고 현대백화점이다. 여기에 신세계DF와 호텔신라-현대산업개발의 합작사인 HDC신라면세점이 28일 신규 특허권 신청을 선언했다. 한화갤러리아와 두산그룹 등은 이번 입찰의 참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3차 신규 면세점 입찰은 지난 6월 3일 신청공고에 이어 내달 4일까지 신청서를 접수한다. 관세청은 입찰제안서 접수를 마감한 후 2개월간 특허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12월 중에 최종적으로 서울 4곳(대기업 면세점 3곳)과 부산·강원지역 시내면세점 신규 사업자를 선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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