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캡슐담배에 살충성분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상관 없음.<뉴시스>
[시사위크=백승지 기자] 캡슐담배에 살충성분 등이 포함된 정황이 포착됐다. ‘톡’하고 터지는 캡슐 부분에 조류 퇴치제, 방충제, 살균제 등에 쓰이는 성분이 섞여있는 것이다. 보건당국은 문제의 성분을 용역보고서에 올렸다가 삭제하는 등 은폐 의혹까지 일고 있다.

◇ 향 좋은 캡슐의 달콤 살벌한 비밀

캡슐담배는 향료가 포함된 작은 알갱이가 필터부분에 내장된 제품이다. 필터를 입에 무는 순간 ‘톡’하고 캡슐이 터지며 향이 퍼진다. 2014년 기준으로 캡슐담배는 국내 담배시장에서 6.1%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전 세계 9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커피‧오렌지‧박하 등 다양한 향이 강점으로 판매고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매혹적인 향을 담은 ‘캡슐’ 부분에 살충제 성분이 들어갔다면 어떨까. 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성일종 새누리당 의원은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로부터 제출받은 ‘2015년도 연구용역보고서’를 공개했다. 국내외 캡슐담배 현황조사를 분석한 결과, 시중에 판매되는 캡슐담배 31종에 여러 살충성분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캡슐부분에서 조류퇴치제, 살충제용 방향성분, 곤충퇴치제, 희석제, 방충제, 살균제, 항염증제, 청소제품, 접착제 등에 쓰이는 성분이 검출됐다. 전문가와 해당 용역을 발주한 질본 관계자도 성분 분석 결과에 80%의 신뢰성을 담보했다.

성일종 의원실에서도 담배회사 내부자료를 입수해 보고서에서 언급된 문제의 성분이 다수 포함된 것을 확인했다. 조류퇴치제에 쓰이는 ‘안트라닐산메틸’, 살충제에 쓰이는 ‘디 리모넨’ 등이 캡슐담배에 포함된 대표 적인 성분으로 꼽혔다.

정작 문제를 제기한 질본은 최종 보고서에서 해당 성분목록을 삭제했다. 이 목록이 후보물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질본 관계자는 “보고서 초본에 있던 후보목록은 일반적으로 가향을 위해 캡슐에 첨가할 수 있는 향료물질을 정리해 놓은 것”이라며 “존재 여부도 불확실한 성분에 대해 유해성 여부를 논하는 것은 오해를 부를 소지가 있다고 판단돼 삭제했다”고 밝혔다.

성일종 의원은 “보건당국이 캡슐담배 위해성 성분을 은폐한 것은 국민을 기만한 행위”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은 해당 책임자들에 대한 엄중 조치와 논란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국내선 유해성 여부도 ‘깜깜이’

성분 유무에 이어 유해성 여부도 깜깜이다. 질본은 앞선 보고서를 통해 후보 성분들이 눈, 피부, 호흡기에 접촉 시 자극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피부염, 두드러기, 홍조, 두통, 불면증, 손 떨림, 정신 혼란, 우울증 등 다양한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취지의 위해성 자료를 제출했다.

하지만 질본은 문제가 커지자 본인들이 제시한 자료를 부정하고 있다. 질본 관계자는 “당시 보고서에서 언급된 부작용은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이며, 사람을 대상으로 한 유해성 보고는 없었다”고 말했다. 또 해당 실험은 고농도의 성분용액을 주입한 것으로, 실제 담배 캡슐에 들어갈 수 있는 양은 극히 미미해 유해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해당 물질에 대한 흡입독성 여부는 아직 판명나지 않았다. 그러나 담배에 첨가되는 각종 가향물질은 단순히 맛과 향을 개선시키는 것이 아니라 니코틴 흡수를 촉진시키는 효과를 낸다. 가장 일반적으로 쓰이는 향료인 ‘멘톨’의 경우 말단신경을 마비, 담배연기를 흡입할 때 느껴지는 자극을 감소시켜 흡연을 촉진 및 조장한다. 실제로 멘톨 담배로 흡연을 시작한 경우 정기적 흡연율과 니코틴 의존도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에서는 가향담배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규제방안을 마련하는 추세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는 멘톨을 제외한 모든 가향물질의 담배 첨가를 2010년께부터 금지했다. 유럽연합은 올해 가향담배를 금지하고, 2020년에는 멘톨 첨가도 원천 금지할 예정이다. 브라질과 에티오피아는 멘톨까지 포함해 모든 가향담배 제품의 시판을 금지했다.

국내 가향담배는 규제는 고사하고 실태 조사조차 전무하다. 청소년과 비흡연자가 가향담배의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다. ‘국민건강증진법 제9조 3항’에 의해 제품 포장에 가향물질 포함 여부를 광고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으나, 가향물질 첨가에 대한 규제는 여전히 구멍이 뚫려있다.

캡슐 안전성에 대한 지적이 계속되자 질본은 최근 성분 검사와 유해성 검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질본 관계자는 “의원실에서 자료가 발표된 이후 시중 판매되는 캡슐담배 31종에 대한 전수조사가 논의됐다”며 “1차 성분 검사를 거친 후 흡입독성 등 유해성 여부에 대한 조사가 최종적으로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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