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준범 전 국방홍보원장.
[시사위크] 지난 9월 5일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모병제희망모임’ 주최로 ‘가고 싶은 군대 만들기’ 제1차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2025년쯤 다가올 우리나라 인구절벽에 대비하기 위해 모병제를 도입해 작지만 강한 군대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모병제 전환 문제는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김두관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었으나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년 대선 잠룡으로 떠오른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2017 대선 공약으로 내걸겠다고 선언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김두관 의원(김포갑, 더불어민주당)까지 적극 가세하면서 힘을 보태고 있다.

모병제 도입을 주장하고 나선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인구감소에 따른 병력충원 어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갈수록 늘어나는 막대한 국방예산 때문이다. 남 지사는 1965년 군입대자가 100만 명인데 2016년에는 43만 명으로 50년 만에 무려 60%나 줄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추세로 가면 2025년쯤엔 틀림없이 인구절벽에 마주칠 것이다. 50만 이상의 병력을 유지하려면 정신적·신체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까지도 예외 없이 입영해야 하고, 복무기간도 크게 늘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 해결책으로 남 지사는 모병제를 제안하고 나선 것이다.

가기 싫은 걸 억지로 끌려서 가는 군대가 아니라 가고 싶은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9급 공무원 수준의 월급(200만원)과 함께 고등학교 졸업 후 입대하면 3년 군복무 기간 동안 7000~8000만원을 모아 대학진학이나 취업준비를 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꼭 좋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남부럽지 않게 멋진 사회 일원이 되는 사다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두관 의원은 국방예산과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의 관점에서라도 모병제로 전환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징병제로 인해 연간 25조9000억~69조원의 사회적 비용이 소요된다는 학계보고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내년 국방예산 400조원의 1%인 3~4조원이면 모병제를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병제를 도입하면 ‘예산폭탄’을 맞을 것이라는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정면 부정한 셈이다.

김 의원은 현재의 63만 병력을 30만으로 줄이면 여기서 나오는 병력 운영비 절감분으로 12만~37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고, 사회적 기회비용에 의한 약 145조원의 GDP 상승효과도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군에서 발생하고 있는 수많은 사건·사고 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예컨대 ▲연간 100여명의 사망자와 ▲70여명의 자살자 ▲4000여명에 이르는 의가사 제대 ▲500여명의 전과자가 양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부모가 아들을 흔쾌히 군대에 보내고 싶겠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2014년 윤 일병 구타 사망사건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주었고, 일시적이나마 모병제 논의를 부활시킨 계기가 되기도 했다.

물론 이런 문제점들이 모병제를 실시한다고 해서 말끔히 해소될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징병제하에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병영폭력과 같은 반인권적 폐단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이들은 보고 있다. 

모병제에 대해 군 당국은 여전히 시기상조론을 펼치고 있다. 군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적정규모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2022년까지 목표치로 정해 놓은 52만 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도 최소한의 마지노선이라는 것이다. 정치권 내에서도 모병제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많다. 남 지사와 같은 새누리당의 유승민 의원 같은 경우는 ‘모병제야말로 정의가 아니다’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새누리당 김영우 의원도 “장기적으로는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다”며 시기상조론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군복무 면제자에게는 병역세를 부과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4일 국감에서 우리도 스위스처럼 병역세 시행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영세중립국인 스위스는 우리처럼 징병제 국가인데, 병역 면제자들은 10년 동안 과세소득 3%에 해당하는 병역세를 납부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모병제 논쟁은 지난달 TV에서도 뜨겁게 달아올랐었다. 송영선 전 한나라당 의원은 KBS 모병제 공개토론에서 ‘모병제를 가장 반대하는 사람이 바로 군 장성들’이라고 말했다. 모병제로 갈 경우 먼저 병력규모를 대폭 줄여야 하고, 그러자면 장군 수도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장군들이 적극 반대한다는 것이다. 이런 지적은 군 밖에서도 상당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방위 야당 간사인 국민의당 김중로 의원은 모병제 논의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지금 이 문제를 주장하는 것은 포퓰리즘이라고 말했다. 그 보다는 먼저 국방개혁을 통해 병력수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병제로 갔다가 다시 징병제로 돌아오려는 나라들도 유럽에는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다문화 인력을 군에서 받아들이자는 새로운 방안을 제시했다. 그럴 경우 그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징병제냐, 모병제냐에 대한 국민 여론은 대체적으로 징병제 유지 쪽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50대 이상 노년층에서는 55% 정도가 징병제를 찬성하고 있고, 20~40대에서는 모병과 징병제가 비슷한 비율로(9월말 갤럽조사) 나타났다. 중앙일보 조사에서는 징병제와 모병제 찬성비율이 무려 83:17로 나타나기도 했다.

징병제냐, 모병제냐 하는 문제는 결국 정치적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국방연구원(KIDA) 정주성 박사의 설명도 이렇다. 이 문제는 학자들의 연구나 공청회, 세미나 등을 통해 둘의 장단점을 비교, 분석해서 합리적으로 선택되기 보다는 정치인들이 대부분 대선공약으로 내걸면서 정치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병제를 공약으로 내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그 후 맞게 될 어려운 난관들을 극복하고 그 부담을 떠안아야 할 책임도 대통령이 져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따라서 병역제도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인 선택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모병제도 장단점이 있고 징병제 역시 장단점이 있으니 만큼 어느 쪽 장점을 더 비중 있게 보느냐에 따라 최종 결정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지금 우리에게 더 시급한 문제는 병역제도를 바꾸는 것 보다 현행 징병제하에서라도 군을 효율적으로 개혁하려는 적극적인 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지금까지 군은 여러 차례 개혁을 시도해 왔지만 만족스런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게 국민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입영의무 상한선을 현행 38세에서 50세 정도로 높여서 병역 면탈을 못하도록 왜 입법화하지 못하는가. 병역 기피자는 3급 이상 국가직 공무원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규제할 수는 없는가.  순순히 병역의무를 이행한 사람만 바보취급 당하는 우리 사회는 과연 정의로운 사회인가. 이번에 모병제 논의가 다시 불붙게 된 것도 어쩌면 군 개혁을 원하는 국민들의 바람이 분노로 표출돼 나타난 결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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