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99년 5월29일 여의도 대우트럼프월드 모델하우스 개관을 기념해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 <대우건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국내 정가에 비상이 걸렸다. 미국 백악관의 45번째 주인에 아웃사이더로 치부했던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기 때문이다. 정치와 경제 등에서 미국 의존도가 큰 한국으로서는 벌써부터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이다. 특히 미국과 긴밀한 호흡을 맞춰야하는 동북아 안보 문제에 있어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란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재계도 사정은 비슷하다. 기축통화 국가이자 한국의 주요 수출국인 미국과의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는데 분주한 모습이다. 사실상 세계 경제의 중심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할 가능성이 확실시 되면서, 그 여파를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분위기다.

‘트럼프의 미국’을 준비하는 데 국내 정·재계가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유독 관심을 끄는 기업 하나가 있다. 시평 4위의 건설기업 대우건설이다. 세계 초강대국 미국을 이끌 트럼프와의 네트워크가 전무한 현실 속에서, 대우건설과 트럼프의 과거 19년 인연이 새삼스레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 ‘트럼프’ 이름 딴 건물, 서울·부산·대구에 총 7곳

대우건설과 트럼프와의 인연은 19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의 부동산 부호 트럼프는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자신의 이름을 딴 빌딩을 짓기로 한다. 지하2층~지상70층 규모의 초고층 빌딩을 건설할 시공사에 한국의 기업이 선정됐는데 바로 대우건설이다. ‘트럼프월드타워’로 명명된 이 빌딩은 2001년 완공됐다. 대우건설과 트럼프의 첫 합작품을 짓는 데는 공사비로 총 2억4000만 달러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로도 둘의 인연은 계속됐다. 이번엔 대우건설의 고향 한국에서였다. 1999년 IMF외환위기 가운데서도 고급주택 수요자를 겨냥한 사업을 구상하던 대우건설은 트럼프의 이름을 사용하기로 한다. 그렇게 2002년 서울 여의도에 ‘대우 트럼프월드 1차’가 들어섰다. 아파트 282세대, 오피스텔 69실을 구성된 트럼프월드 1차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스포츠센터와 수영장 등 편의시설이 완비된 현대식 주상복합 건물이었다.

트럼프는 해외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트럼프월드를 기념해 한국 땅을 밟았다. 트럼프월드 1차 분양에 맞춰 1998년과 1999년 두 차례 한국을 찾았다. 첫 방한 해인 1998년에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당시 손님인 트럼프를 의전 했던 임문규 전 대우조선 상무는 한 언론에서 “(트럼프는) 키가 크고 잘생긴 한량 같은 스타일인데, 말도 시원시원하게 하지만 예의는 지키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국내 첫 트럼프월드가 성공을 거두자 대우건설은 2차 분양에 돌입했다. 2003년 1차와 같은 여의도 땅에 ‘트럼프 월드 2차’가 들어섰다. 2004년에는 용산 방향 한강대표 바로 앞에 ‘한강 대우 트럼프월드 3차’를 세우면서 트럼프 브랜드의 명맥을 이어갔다.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의 입지를 다진 트럼프월드는 지방으로 눈길을 돌렸다. 2006년 부산의 대표적인 부촌인 해운대 센텀에 4번째 트럼프월드를 건설했다. 트럼프와 계약이 종료된 2007년에는 부산 2곳과 대구에서 동시에 시공이 이뤄졌다. 부산의 신흥 부자동네 마린시티와 대구 수성에 각각 트럼프월드 5, 6호가 세워졌다. 트럼프월드 센텀 인근에는 오피스텔 전용으로 지워진 트럼프월드 센텀 2차가 완공됐다.

◇ 트럼프월드 9년째 중단, 접촉 라인은 열려있어

업계에서 대우건설과 트럼프의 만남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푸르지오 탄생 전 트럼프라는 브랜드를 이용해 주상복합 주택 시공경험을 쌓는 것은 물론, 명품 건설사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큰 효과를 봤다는 것이다. 대우건설이 총 7개 사업장에서 트럼프 브랜드를 사용하는 대가로 지불한 금액은 600만∼700만 달러로 알려졌다.

대우건설과 트럼프와의 파트너쉽은 9년째 중단된 상태다. 하지만 트럼프 측과의 접촉 창구는 여전히 열려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트럼프 측과 사업을 진행했던 실무자들이 상당수 회사에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트럼프와의 관계 구축에 애를 먹고 있는 정치권을 대신해 대우건설이 민간외교의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온 지 하루 정도 밖에 안 된 상황에서 트럼프와의 사업 재개 여부에 대해 언급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면서 “내부적으로도 미국의 대통령이 된 인물과 인연이 있었다는 데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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