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국립현충원을 찾아 역대 대통령과 호국영령들의 묘역을 참배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0년의 임기를 마치고 12일 금의환향했다.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와 더불어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의 귀국에 국민의 관심은 지대했다. 수많은 지지자와 취재진이 엉켜 공항은 북새통을 이뤘다. 작심한 듯 반기문 전 총장은 귀국 기자회견에서 사실상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기조는 ‘정치교체’로 잡았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드러난 국가적 폐해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정치가 변해야 가능하다는 게 핵심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정치권 책임론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반기문 전 총장의 강점이다. 정치권과 선을 긋고 민생탐방에 나서겠다는 계획은 이 같은 맥락에서 결정됐다.

그렇다고 반기문 전 총장의 앞에 꽃길이 펼쳐진 것은 아니다. 강력한 경쟁자인 문재인 전 대표의 지지율을 따라잡는 게 급선무다. 문재인 전 대표는 촛불민심을 타고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13일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전 대표(31%)와 반 전 총장(20%)의 지지율 격차가 처음으로 10% 포인트 이상으로 벌어졌다. 양자구도에서도 문 전 대표(53%)는 여유 있게 반 전 총장(37%)을 앞섰다. 정치권에서는 여론의 관심이 반 전 총장에게 집중된 이 시기에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을 추월하거나 최소 동률을 이뤄야 한다고 분석한다. ‘물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얘기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떤 정파와 어떤 방식으로 연대를 이뤄내느냐다. 세력이 전무한 반 전 총장 입장에서는 국내 정당들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은 “당이라는 베이스가 없이 대선출마가 가능하겠느냐”고 했다. 더구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해나가는 문 전 대표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보수진영 유일후보 자리가 필수적이다. 반 전 총장이 현재는 ‘홀로서기’를 선언했으나 설 이후에는 연대를 모색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 박근혜 대통령이 설 연휴를 앞두고 2차 기자간담회를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뉴시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아이러니하게도 ‘반기문 대망론’의 진원지였던 새누리당과 친박, 박근혜 대통령이다. ‘정치교체’를 외친 반 전 총장이 ‘최순실 부역자’ 꼬리표가 달린 새누리당이나 친박과 손을 잡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도보수 및 중도진보로의 외연확대는 어려워진다.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이 물러나 줬으면 좋으련만, 현재까지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인명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강제로 인적청산에 착수했으나 이마저도 친박핵심들의 저항으로 한 차례 제동이 걸렸던 바 있다. 

비교적 노선이 비슷한 바른정당과의 연대 가능성이 크지만, 곤란한 것은 매한가지다. 4.13 총선부터 분당과정까지 친박과 비박 진영의 앙금은 적지 않다. 비박계에 손을 들어주자니, 친박 지지층 이탈이 걱정될 수밖에 없다. 반 전 총장이 세운 깃발 아래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이 모여드는 그림이 가장 좋지만,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여권의 한 중진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보수의 정권재창출에는 항상 처절하리만큼 고통스러운 산통이 따랐다. 노태우 더러 전두환은 ‘나를 밟고 가라’고 했다. 김영삼은 철저하게 노태우 정권을 망가뜨리고 집권에 성공했다. ‘이명박 심판’을 내세운 박근혜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아픔은 있었지만, 정권재창출을 했기 때문에 결국 다 살아남지 않았느냐. 대통령이나 친박들도 죽는 게 사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같은 바람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과 친박핵심들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양새다. 청와대에 머물고 있는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출석을 거부한 채 대리인단을 통해 지지층 결집을 노리고 있다. 효과가 있었는지 보수단체의 ‘태극기 집회’가 ‘촛불집회’ 인원수를 넘었다는 경찰의 발표가 나왔다. 나아가 박 대통령이 설 연휴 전 2차 기자간담회를 열어 자신의 억울함을 피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친박핵심들은 법적수단을 동원하며 당의 인적쇄신 방침에 결사항전 하겠다는 태도다. 박 대통령과 친박핵심들의 고집이 보수진영 전체를 파멸로 몰고 가는 셈이다. 

<한국갤럽 여론조사. 1/10~1/12 조사. 휴대전화 RDD 무작위 추출 유권자 1007명 대상. 전화면접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 19%.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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