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희정 지사가 민주당 당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계성 기자] 안희정 충남지사의 새 판짜기가 시작됐다. 최근 실시된 복수의 여론조사에서 급상승 흐름을 탄 안희정 지사의 1차 목표는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다. 독보적인 1위 후보인 문재인 전 대표와 차별성을 부각하는 동시에 외연을 확대하는 것이 안희정 지사가 당면한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구도를 흔드는 게 필수다. 19대 대선의 주요키워드는 ‘최순실’ ‘사드’ ‘북핵’ ‘양극화’ ‘개헌’ ‘후보단일화’ ‘패권주의’ ‘복지’ ‘재벌규제’ ‘야권통합’ 등이다. 대선후보를 검증하거나, 후보들 사이 쟁점을 만들어 내기 위해 사용되는 단어들이다. 문제는 키워드 대부분이 문재인 전 대표를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이다.

◇ 안희정의 ‘진보 vs. 보수’ 경계선 흐리기

실제 ‘최순실’ ‘양극화’ ‘후보단일화’ ‘재벌규제’ ‘야권통합’ 등은 문 전 대표의 ‘정권교체론’에 힘을 실어주는 키워드로 볼 수 있다. 반대로 ‘북핵’ ‘사드’ ‘패권주의’ ‘개헌’ 등은 문 전 대표를 공격하기 위한 프레임이다. 추격자인 안희정 지사 입장에서는 관련된 어떤 견해를 내놓더라도 부각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안 지사도 이를 감안한 듯 문 전 대표나 보수진영과 대립각을 세우기보다 독자노선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2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안 지사는 “누구와 경쟁심을 키우고 싶지 않다. 제가 하고 싶은 정치는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소신대로 이야기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열된 국가의 모습으로 미래를 향할 수 없다. 새로운 미래를 향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단결해야할 많은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좌우를 넘나드는 정책적 제안도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기업의 원활한 M&A 보장과 노동시장 유연화다. 이는 재벌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노동시장 양극화가 가중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진보진영이 반대해왔던 내용이다. 뿐만 아니라 앞서 안 지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성장,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를 이어가겠다”고 했고, 사드에 대해서는 “양국정부가 합의한 내용을 쉽게 되돌릴 수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고도 밝힌 바 있다. 물론 친노 적자라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대연정도 승계했다. “통합을 말했던 김대중, 노무현의 미완의 역사를 완성하고자 하는 제 노력의 큰 줄기 중 하나”라는 게 안 지사의 주장이다.

정치권에서는 여론반전 가능성을 예상하고 있다. 지금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문 전 대표 중심의 정권교체 여론이 강하다. 그러나 경제나 안보 측면으로 화제가 옮겨갈 경우, 외연확대는 안 지사가 유리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YTN에 출연한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정권교체의 최적임자는 누구인가라는 선택기준이 이제는 정말 통치를 잘할 수 있는 사람, 정말 역량이 있는 사람, 이런 내용으로 선택기준이 변할 수 있다”며 “지금 당장은 (반 전 총장의 불출마가) 문 전 대표에게 타격을 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일정 부분 구도의 변화 가능성은 이전보다는 높아졌다”고 분석했다.

◇ DJ 벤치마킹으로 문재인 극복할까

▲ 문재인 전 대표와 안희정 지사가 고 신영복 선생의 추도식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나아가 민주당 안팎에서는 71년 김영삼과 김대중의 신민당 대선후보 경쟁구도에 빗대, 안 지사의 역전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당시 경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이철승 후보와의 극적인 연대를 통해 1위를 달리던 김영삼 후보를 제친 바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KBS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철승 표가 김대중에게 합쳐지면서 김영삼이 결선에서 졌다”며 “과연 그때를 재연하느냐, 못 하느냐 그것이 문제이긴 한데 지금 안 지사가 상당히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대표는 “저는 안 지사가 문재인 후보를 (이겨서), 예전 노무현 대통령 때처럼 극적인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안 지사의 행보가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을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97년 대선은 IMF 여파로 그 어느 때보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았다. 그러나 김 전 대표는 정권교체 여론에 기대는 대신, 위험을 일부 감수한 채 보수를 아우르는 정책으로 승부를 걸었다. 신자유주의 노선을 수용했고, 안보불안 프레임은 ‘남북경협을 통한 번영’으로 덮었다. 김 전 대통령을 평생 괴롭혔던 호남고립은 ‘DJP연대’로 돌파했다. 상대진영의 공격이 예상되는 이슈를 선점한 포석이다. 이를 통해 세계사적으로 드문 평화적 정권교체에 성공한 바 있다.

안 지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업자’로 통하지만, 김 전 대통령을 스승으로 여기고 항상 공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약 2년 전 <시사위크>와의 인터뷰에서도 안 지사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업적과 행보를 더 자세히 언급했었다.

인터뷰에서 그는 “65년 6·3한일협정 반대시위가 한창일 때, 당시 민족주의적 시위에 대한 김대중의 반대입장은 굉장히 놀라운 일이다. 또 71년 장충동 선언에서 남긴 다자간 남북관계 협상과 예비군제도 폐지는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구상”이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결코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를 비판해서 대통령이 된 것이 아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야당의 정치인들이 꼬투리를 잡아 비판하는 것으로 야당의 몫을 다하는 게 아니고, 절대권력의 비리를 고발하는 것만으로 절대 지도자가 될 수 없다. '나라면 이렇게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비전을 국민들에게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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