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산업개발 본사가 있는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전경. <뉴시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현대산업개발이 25만 거제시민으로부터 미운털이 단단히 박힐 모양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민 구원의 손을 잡아 준 거제시에게 약속한 은혜를 수년째 갚지 않고 있어서다.

◇ ‘살려달라’던 현산… 급한 불 끄자 돌변?

‘여측이심’. 화장실에 갈 적 마음 다르고 올 적 마음 다르다는 뜻이다. ‘급할 때는 다급하게 굴다가 일이 해결되면 마음이 변한다’는 뜻을 담고 있는 이 말은 인간의 간사함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사자성어로 널리 쓰이고 있다.

시평 10위의 대형건설사인 현대산업개발이 딱 그 꼴이다. 경상남도 남단에 위치한 인구 25만의 소도시 거제시에 ‘70억원’ 환원을 약속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형국이다. 벌써 4년째 감감 무소식이다.

현대산업개발이 70억원이라는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을 지방의 한 소도시에 지급하기로 한 건 보은적 차원이었다. 2년 치 영업이익을 넘는 1조2,000억원 가량의 대량 손실이 우려되는 급박한 상황에서 자신들을 도와 준 거제시에 건 낸 마음의 표시였다.

사연은 2008년 무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산업개발이 거제에서 발주한 하수관거 발주사업에서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적발됐다. 안전한 공사를 위해 설치하는 가설시설물을 적법하게 설치하지 않고 서류를 허위로 꾸몄다.

이를 통해 현대산업개발과 하도급업체 등은 160억원 규모의 공사에서 44억7,000만원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사건으로 현장소장을 비롯해 하도급업체 직원 등 9명이 구속됐으며 6명이 불구속 입건됐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2009년 거제시는 앞으로 현대산업개발이 5개월간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공사의 입찰을 제한하는 처분을 내렸다. 현대산업개발은 즉각 반발했다. 거제시를 상대로 행정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5개월간 관급공사 입찰 참여가 금지되면 1조2,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판단에서 내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절벽 끝에 몰린 현대산업개발에 기적이 일어났다. 2011년 열린 2심에서 역전에 성공하며 승기를 거머쥔 거제시가 돌연 입찰제한 기간을 당초 5개월에서 1개월로 대폭 감량하기로 결정했다. 2013년 대법원 판결이 임박한 상황에서 현대산업개발이 거제시에 제안한 타협책이 먹혀든 것이다.

◇ 1조와 맞바꾼 70억원… 4년째 ‘함흥차사’

이때 나온 것이 70억원 지원방안이다. 당시 현대산업개발에 근무하던 J상무는 회사를 대표해 기자회견을 열고 부당 수령한 공사대금을 전액 환원한 사실을 강조하며, 앞으로 거제시 발전에 적극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구체적인 지원 규모까지 언급됐다. 바로 70억원이다.

말 뿐이었다. 이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대산업개발이 거제시에 건 낸 돈은 단돈 1원도 없다. 대기업 봐주기라는 세간의 비난에도 국가 경제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현대산업개발의 입장을 반영해 준 거제시로서는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송미량 거제시의원은 “시의 행정처분 경감조치를 받아 1조130억원 가량의 이득을 본 것으로 추정되는 현산이 (70억원 지원)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는데, 유야무야 잊혀 질까 우려 된다”고 말했다.

지역 환경운동가인 김영춘 거제자연의 벗 대표는 “시의 덕을 톡톡히 본 현산이 혜택만 누리고 수년째 약속을 지키고 있지 않다”며 “이 같은 현산의 행태를 알리기 위한 본사 앞 1위 시위를 조만간 실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거제에서 현대산업개발을 규탄하는 움직임이 없었던 건 아니다. 앞서도 거제 YMCA와 거제 경실련 등이 주축이 된 거제시민단체연대협의회가 빅딜을 한 거제시장과 현대산업개발의 경영진을 제3자 뇌물공여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불기소 처분됐다.

이와 관련 현대산업개발은 거제시를 모른 체 한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구체적인 금액 범위를 밝힐 수는 없으나 현재 어떤 식으로 거제에 사회공헌을 할지 방향을 잡고 있는 단계에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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