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행권이 정부의 비정규직 철폐 정책에 발빠르게 반응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문재인 정부가 ‘비정규직 철폐’와 ‘일자리 창출’을 핵심 과제로 정하면서 은행권의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그간 비정규직 비율을 낮춰온 만큼 ‘정규직 전환’에 대한 부담은 타 업권에 비해 덜한 것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일자리다. 비대면거래가 급증하면서 은행권은 점포와 인력을 축소하고 신규 채용에 소극적인 양상을 보여왔다.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어느정도 화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 새 정부 '비정규직 제로화' 선언… 은행권 정규직 전환 논의 '탄력'

“임기 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 시대를 열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정규직 비율이 80%인 인천공항공사에서 찾아 ‘비정규직 철폐’에 대한 의지를 확고히 했다. 이같은 기조는 공공기간을 넘어 민간기업에도 확산될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정부의 영향을 크게 받는 금융업계는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로 은행권의 움직임이 가장 빨랐다. 한국씨티은행은 16일 무기 계약직인 일반사무 전담직원과 전담텔러 직원 약 300여명을 올해 안에 일괄 정규직 전환한다고 밝혔다. 무기계약직은 계약기간이 제한된 비정규직과 달리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임금과 복지, 승진 등에서는 사실상 차별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인 ‘준정규직’으로 분류된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도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도 속도를 낼 분위기다. 기업은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위해 노사 테스크포스(TF)를 운영해왔다. 정부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철폐’ 기조로 논의는 최근 탄력이 붙는 모양새다. 기업은행은 준정규직(3,000여명)은 전체 직원의 30%에 달한다.

다른 시중은행들도 정규직 전환 논의를 적극 검토하는 분위기다.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이 과거 비정규직을 대규모로 정규직으로 전환한 바 있어 부담은 덜한 편이다. 지난 2007년 우리은행이 약 3,100명을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전환한데 이어 신한은행, 국민은행,  외환은행(현 KEB하나은행) 등이 줄줄이 동참했다. 이에 작년 기준 은행권 정규직 비율은 95.2%, 비정규직 비율은 4.8%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 4차산업혁명 맞는 금융권… 일자리 축소 불가피

시중은행 관계자는 “계약직과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꾸준히 진행해왔기 때문에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남아있는 비정규직도 변호사나 회계사, 운용역 등 전문직군이거나 경력단절여성(경단녀)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일자리 창출 과제에 대해서는 부담을 표하는 기색이다. 최근 은행권의 직원수는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여왔다. 항아리형 인력 구조를 해소하기 위한 인력 효율화를 추진해온데다 비대면 채널 거래가 늘어나면서 점포와 인력이 감소 추세에 있다. 신규 채용 역시 소극적인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디지털 금융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은행권의 인력 축소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대규모 점포 통폐합을 추진하는 곳도 있다. 씨티은행이 대표적이다. 씨티은행은 전국 점포의 80%를 축소하는 통폐합 정책을 추진키로 해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다. 금융노조는 이같은 씨티은행의 움직임을 두고 “4차산업혁명을 핑계로 한 구조조정 시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4차산업혁명을 대비한 고용안정방안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사측의 밑어붙이기식 인력 조정은 좌시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인력 효율화와 일자리 확대 압박 사이에서 은행권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관측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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