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부재 속에 삼성이 '신경영 선언' 24주년을 맞았다.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1993년 오늘,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계열사 사장단에게 한 말이다. 기존의 모든 것을 바꾸라는 이 주문은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라 불리며 ‘삼성사(史)’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질을 위해선 양을 포기해도 좋다는 등의 혁신적인 주문은 이후 삼성이 세계초일류기업으로 향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만약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이 없었다면,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 삼성이 도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삼성은 이날을 ‘제2의 창립기념일’로 여기며 기려왔다. 특히 2013년에는 신경영 선언 2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행사를 마련하기도 했다. 신경영 선포의 성공과 삼성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2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른 이듬해 이건희 회장이 쓰려졌고, 이후 삼성은 험로를 걷기 시작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새로운 리더 역할을 했지만, 잇따라 악재가 터졌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땐 삼성서울병원이 전염병 확산의 주범으로 전락했고, 2016년엔 야심차게 내놓은 갤럭시노트7이 배터리 폭발 문제로 망신을 당했다. 또한 이 와중에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동영상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 같은 험로의 끝엔 낭떠러지가 있었다.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말 불거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깊숙이 연루됐고, 이는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결국 현재 삼성은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이 모두 부재중인 상태다. 삼성전자가 실적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잔칫집이 아닌 초상집 분위기에 빠져있다.

이러한 시점에 돌아온 신경영 선언 24주년은 씁쓸하기만 하다. 삼성은 제2의 창림기념일이나 다름없던 이날을 애써 외면하며 조용히 보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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