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소방헬기 구매’ 중앙119, 예산 초과하자 임무장비 대거 제외
냉방장치 없애는 대신 ‘휴대용 얼음팩’ 황당한 조치계획
수백억 세금 들여 ‘반쪽 헬기’ 살라… 사업전면 재검토 필요 지적

▲ 중앙119는 <다수 인명구조 및 원거리 응급환자 이송 등 특수한 성능이 요구되는 임무수행에 적합한 신규 대형헬기 보강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최근 입찰공고 규격서에는 주요 임무장비들이 상당수 삭제돼 논란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발생한 대구 서문시장 대형 화재에 소방당국이 소방헬기를 동원해 진화에 나서고 있는 모습. <뉴시스>
[시사위크=정소현 기자] ‘냉방장치를 설치하지 않는 대신 얼음팩을 비치하고, 예비 배터리를 구매하지 않는 대신 방전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겠다.’
중앙119가 이번에 구매하려는 대형 소방헬기의 현주소다. 인명구조와 수색·구조 등의 활동을 위해 반드시 특수한 성능이 요구되는 ‘대형 소방헬기’를 사야한다고 강조해왔지만, 실제 중앙119가 사려는 헬기에는 이 같은 임무수행에 반드시 필요한 장비들이 대거 빠져있다. 구매를 포기한 장비 대신 중앙119가 내놓은 대처방안은 고작 ‘응급환자를 위해 얼음팩을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사업이 전면 재검토 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예산 초과되자 주요 임무장비 대거 구매 포기… 헬기 임무수행 우려

중앙119는 960억의 예산을 들여 대형 소방헬기 2대를 사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헬기에 필요한 장비 등을 적시한 최종 규격서에는 인명구조 및 응급환자 후송에 필요한 EMS KIT를 비롯해 소화용 물주머니(밤비버킷 Bambi bucket), 야간비행 수색지원장비(EO/IR) 등 기본 임무장비가 삭제되거나 변경(조정)됐다. 일부 장비가 없는 헬기를 구매하겠다는 얘기다.<[단독] 중앙119, 주요 임무장비 뺀 대형소방헬기 구매 추진>

중앙119는 해당 장비들을 별도 구매하거나, 추후 예산을 다시 확보한 뒤 필요에 따라 구매하겠다는 입장이다. ‘예산절감 차원’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단순히 생각하면 큰 문제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사위크>가 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자료를 살펴보면 사정이 그렇지 않다.

중앙119는 주요 장비들을 왜 규격에서 삭제했으며, 이에 따라 어떤 대책(대응방안)을 세우고 있는지에 대한 계획서를 강석호 의원실에 제출했다. 자료에 따르면 우선 ‘예산초과’를 이유로 최종규격서에서 삭제된 △광학열상장비(EO/IR)의 경우, 추후 예산을 확보한 뒤 구매하겠다는 게 중앙119의 계획이다. 대신 탐조등과 야간투시경(NVG) 등을 우선 활용해 임무를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항공전문가들은 그러나, 광학열상장비가 없을 경우 사실상 임무 수행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광학열상장비는 물체에서 발산하는 에너지(열)를 감지하는 장비다. 야간 수색 및 구조작업시 반드시 필요한 장비다. 한 전직 조종사는 “야간, 혹은 안개 등으로 인한 기상악화 시 육안으로는 시야확보 및 구조임무를 위한 식별이 어렵다”며 “야간투시경의 경우 조종사의 시력에 의존한 장비로, 이를 착용하고 비행하면 피로도가 2배 가까이 증가하고 시야각도 15도 정도로 좁아 야간 공중임무 수행시 매우 불안전 하다. 이 때문에 광학열상장비는 야간 수색 및 기상악화시 구조임무수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비”라고 설명했다.

△관성항법장치(INS) 역시 예산초과·납기지연 우려로 규격에서 삭제됐다. 관성항법장치는 자이로를 통해 항공기의 위치·자세·방위·속도 정보를 제공하는 장치다. 북한접견지역 등에서 전파교란으로 위성항법장비(GPS) 운용불가시 관성항법장치를 통해 항법정보를 제공 받는다. 그런데, 중앙119가 해당 장비를 구매하지 않는 대신 내놓은 조치는 ‘GPS 오작동 시 임무취소하겠다’는 것이다. ‘GPS 전파교란시 육안식별 가능 위주로 운항하고 야간운항을 자제하겠다’고도 적시했다. 중앙119가 들여오려는 대형 소방헬기의 주요 임무가 ‘인명구조·수색’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납득하기 힘든 조치다.

▲ 중앙119는 최종규격서에서 삭제하거나 변경한 장비들에 대해 △별도구매 △추후 예산확보 후 구매 △규격삭제 등으로 구분하고, 그에 따른 운영대책을 세웠다. 위 표는 추후 예산을 확보해 구매하겠다는 장비 목록과 각 항목별 운영대책. <자료=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실>

▲ 최종규격서에서 완전히 삭제된 장비 목록. 중앙119는 삭제된 장비 중 냉방장치의 경우 '휴대용 얼음팩을 비치'함으로써 해당장비 기능을 대체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자료=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실>
◇ 소방헬기에 냉방장치 없애고 얼음팩 비치하겠다는 중앙119

마찬가지로 규격서에서 예산초과를 이유로 삭제된 △예비 배터리는 ‘방전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하겠다는 게 중앙119의 대책이다. △냉방장치는 ‘환자 이송시 병원 측에 체온유지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휴대용 얼음팩 비치’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냉방장치를 헬기에 설치하지 않는 대신 응급환자를 위해 휴대용 얼음팩을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엔진세척기 △타이어공기압측정기 △배터리충전장비 등도 규격에서 삭제됐다. 현재 중앙119가 보유하고 있는 동일기종(EC-225)의 헬기를 구매할 경우 기존에 보유장비를 공동으로 활용하고, 타 기종(S-92)일 경우 해당 기종 운영기관과 협조하여 운영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중앙119는 이번에 도입하는 대형헬기 2대를 충청강원·호남 2개권역에 배치할 계획이다. 쉽게 말해, 호남권역에 배치된 헬기의 타이어공기압 측정을 위해 수도권이나 영남에 있는 공기압측정기를 수시간에 걸쳐 운송해 와 사용하겠다는 얘기다.

국민안전처가 권고한 ‘소방헬기 기본규격’을 위반한 사안들도 포착된다.

국민안전처가 지난해 8월, 중앙119를 비롯 각 지자체 소방본부로 공문을 통해 하달한 ‘소방헬기 기본규격’에 따르면 “조종사 및 정비사 등 헬기 운용인력 9명 이상에 대한 제작사 교육 훈련이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헬기 1대당 조종사 및 정비사 인력을 9명으로 권고한 것이다. 그러나 중앙119는 1차규격서를 통해 교육인원을 ‘조종사 12명/정비사 6명/운용자 6명’으로 명시했다가, 최종규격서에는 ‘조종사 8명/정비사 6명/운용자 0명’으로 대폭 축소했다. 조종사와 정비사 모두를 합하면 총 14명, 도입 예정인 헬기가 2대인 점을 감안하면 헬기 1대당 운용인력은 각 7명이 된다. 소방헬기 기본규격(상위규격)에서 정한 9명에 못미치는 수준이다.

중앙119는 ‘추후 예산이 확보되면’ 삭제한 장비들을 필요에 따라 구매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예산 확보가 안될 경우, 해당 헬기를 운용하고 임무를 수행하는데 문제가 발생할 공산이 크다.

그동안 중앙119는 <다수 인명구조 및 원거리 응급환자 이송 등 특수한 성능이 요구되는 임무수행에 적합한 신규 대형헬기 보강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왔다. 멀리 가고, 많이 싣고, 다양한 임무 수행이 가능한, 쉽게 말해 ‘슈퍼헬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중앙119는 현재, 냉방장치 대신 ‘휴대용 얼음팩’이 비치된 헬기를 구매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목적 대형 소방헬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중앙119는 과거 대형 소방헬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문제로 감사원 지적을 받은 바 있다. 지난해 감사원이 소방방재청(현 국민안전처)과 조달청을 대상으로 ‘다목적 대형 소방헬기 구매업무’에 대해 감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2013년 소방방재청은 고층건물 화재 진압을 위해 물대포를 장착한 헬기가 필요하다며 대형 소방헬기 도입사업을 추진했고 398억원을 들여 그해 12월 외국산 대형 소방헬기 1대를 계약 했지만 이 헬기에는 물대포 등 고층건물 화재진압용 장비가 구비돼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 사진은 지난 2009년 국내 최초 도입된 다목적 대형 소방헬기 취항식 모습. 당시 도입한 프랑스 유로콥터사 EC225 헬기는 현재 중앙119구조본부에서 운용하고 있다. <뉴시스>
◇ 과거에도 주요장비 대거 빠진 ‘반쪽짜리 대형헬기’ 구매

이 뿐만이 아니었다. 당초 규격서와 달리 무려 40여개의 임무장비가 빠진 사실도 확인됐다. 프랑스 헬기업체가 예산(398억원)과 입찰가격(666억원)에 큰 차이가 있으니 계약체결을 위해 구매규격에 포함된 임무장비와 예비정비부품 등 40여개 장비(215억원 상당)를 제외하고, 교육조건 및 운송조건을 변경해달라고 요청하자 정당한 절차에 따르지 않고 계약을 변경한 것이다.

결국 소방방재청은 당초 필요한 물대포는 물론 주요 임무장비가 40개나 빠진, 사실상 ‘반쪽짜리 헬기’를 400억 가까이 들여 구매한 셈이다.

당시 감사원은 이런 구매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당초 목표로 한 헬기 임무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계약대상(헬기업체)에 특혜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구매사업이 지난 2013년과 달라진 점은 그나마 ‘절차’를 지킨 시늉이라도 했다는 점이다. 업체들로부터 견적서를 받은 결과 예산을 초과하자 규격 조정심의회를 통해 최종규격서를 수정한 뒤 재공고하는 절차를 거친 것. 앞서 감사원 감사로 곤욕을 치른 데 따른 학습효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최종규격서를 결정하는 회의에는 외부위원은 배제된 채, 내부자들(11명)만 참여했다.

사정이 이쯤되면서 중앙119의 대형 소방헬기 구매 사업이 전면 재검토 돼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특히 수백억의 국민예산을 들여 반쪽짜리 외국산 헬기를 구매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만큼, 공공부문 헬기 구매시 국산 헬기를 고려한 규격 등 기준의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앞서 (주)한국항공우주산업은 960억원 예산으로 중앙119가 요구하는 모든 임무장비와 의무장비를 갖춘 ‘완전체’ 헬기(국산헬기 ‘수리온’)를 제공하겠다고 견적서를 제출한 바 있다. 수리온이 중대형급인만큼, 헬기 2대 값으로 4대를 제공하겠다고도 제안했다. 하지만 중앙119는 민수헬기 인증이 없다는 이유와 ‘대형’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산절감 차원’이라는 중앙119의 주장은 이미 사실이 아닌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오히려 추가 예산이 필요한 상황이다. 모든 예산은 국민 세금으로 처리된다. 주요 임무장비는 빠졌고, 삭제한 장비(관성항법장치)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 되면 임무를 취소하겠다고 한다. 과연, 그동안 중앙119가 강조해오던 ‘특수한 성능이 요구되는 헬기’로서의 임무수행이 가능한 것일까. 중앙119가 ‘국민안전’을 볼모로 무모하고 무리한 ‘외국산 헬기 편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부 차원의 진지한 재고(再考)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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