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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필 '에세이'] H에게-확증편향이 만연한 사회
[김재필 '에세이'] H에게-확증편향이 만연한 사회
  • 시사위크
  • 승인 2017.09.1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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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김재필(미 델라웨어대학 사회학 박사)

[시사위크] “지식을 가지면 ‘잘못된 옳은 소리’를 하기가 쉽다. 사람들은 ‘잘못 알고 있는 것’만 고정관념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도 고정관념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다. 한 가지 문제에는 무수한 ‘해답’이 있을 뿐, 평생 그 해답을 찾기도 힘든데, 나만 옳고 나머지는 다 틀린 ‘정답’이라니…. 이건 군사독재가 만든 악습이다. 박정희 이전엔 ‘정답’이란 말을 안 썼다. 모든 ‘옳다’는 소리에는 반드시 잘못이 있다.”몇 년 전 채현국 청암학원 이사장이 한 신문 인터뷰에서 한 말일세. 근데 뜬금없다고?

요즘 여기저기서 자주 듣는 말들 중에 확증편향(confirmative bias)이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더군. 확증편향은 꽤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일종의 심리적 장애일세.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옳다고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해주는 정보만 찾고, 자신이 좋아하는 이론이나 설명을 강화시켜주는 사실만을 받아들이지. 그러면서 자신의 믿음에 어긋나는 통계수치나 정보는 잘못된 것으로 무시해버리거나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네. 지난 겨울에 길거리에서 보았던 ‘태극기 부대’ 아저씨들이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대표적인 사람들이지. 자신들의 경전에 있는 모든 단어를 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것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종교적 근본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이고.

그러면 이런 사람들은 왜 객관적으로 문제가 있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지 못하고 편협할까? 자기가 믿거나 선호하는 것을 약화시키는 상황이 펼쳐지면 심리적으로 불편해지기 때문이야. 대개 합리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뭔가 잘못 알고 있음을 깨달으면 그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려고 애쓰네. 부끄러워하기도 하지. 하지만 확증편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고치려고 노력하기보다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게 진리라고 우기고 억지를 부리네. 자신의 잘못된 믿음을 바꿔 심리적 불편함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상황을 합리화하는 쪽을 선택하는 거지.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정보의 유입을 차단하고,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찾아서 보고 믿는다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는 대다수의 미디어가 이런 확증편향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네. 그러니 적반하장이라는 사자성어를 써야 할 상황이 많아 질 수밖에.

언젠가 《논어》에 나오는 ‘학이불사즉망, 사이불사즉태(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는 말을 소개한 적이 있었지?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는 뜻이네. 여기서 어둡다(罔)는 말은 아무리 많이 배워도 얻음이 없다는 뜻이야. 확증편향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공자 말씀일세.

지금 우리 사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보수 언론이나 종편, 인터넷, 에스엔에스(SNS) 같은 미디어를 통해 얻은 지식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기가 믿는 종교만이 참이라고 주장하면서 타종교를 배척하거나 공격하는 근본주의자들도 많아지고 있네. 그래서 “모든 분야에 성경적 창조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배치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분이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었다가 사퇴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하지. 이미 과학적으로 검증된 보편지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가 믿는 종교만 진리라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 국가 주요 정책을 심의 결정하는 국무회의의 일원이 된다는 건 위험한 일일세. 이런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자기가 살고 있는 좁은 세계만을 지상낙원으로 착각하는 개구리이기 쉽네. 당연히 시야가 좁고 외골수일 수밖에 없어.

다시 앞에서 인용한 채현국 이사장의 말을 되새김질 하네. “반드시! 햇빛이 있으면 그늘이 있듯이, 옳은 소리에는 반드시 오류가 있는 법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 하나 뿐인 정답은 없네. 그래서 한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비판과 관용이 동시에 필요한 거야. 그런 비판과 관용을 무시하거나 억압하는 사회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거지. 우리 사회에는 많이 배운 사람들 중에 염치없는 족속들이 많네. 지난 9년 동안 자유민주주의를 짓밟고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이 지금 ‘자유’를 지킨다고 외치면서 저항하고 꼴이 가관일세.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파렴치한들이지. 그러니 확증편향이라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말이 유행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