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범 전 국방홍보원장.

‘5.18 당시 헬기사격 및 전투기 출격대기 의혹 관련 국방부 특별조사위윈회’(약칭 ‘5.18 특조위’)가 공식 출범하자 지금까지 침묵을 지켜왔던 관련 당사자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추석인 지난 4일 SBS는 5.18 당시 광주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에 사격을 한 헬기 조종사 2명의 개인 비행기록 카드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방송에 따르면 이들은 코브라 공격용 헬기와 500MD 조종사들로, 1980년 5월 20일과 22일부터 광주에서 각각 전투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군 헬기 조종사들은 비행이 끝나면 각자 이 비행기록표를 의무적으로 작성한다고 말한다.

놀라운 것은 당시 이들의 임무가 단순한 정찰비행이나 위협비행이 아닌 전투임무 비행이었다는 사실이다. 비행기록 카드에는 반드시 임무를 명시하도록 돼 있는데, 당시 이들 두 사람의 카드에는 ‘전투’(Combat)의 머리글자인 C가 적혀있다. 다른 부대와 합동 또는 연합작전을 할 때는 ‘훈련’(Training)을 뜻하는 ‘T’를 적는데, ‘C’라고 적을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 두 조종사는 처음 취재진과의 접촉에서는 헬기사격을 “들은 적도, 본 적도, 한 적도 없다”며 깡그리 부인했었다. 1995년 당시 검찰조사에서 이들 두 조종사는 자신의 임무와 관련, ‘전투’라는 단어를 언급도 하지 않았다고 방송은 전했다.
 
방송에 따르면 코브라 헬기 조종사는 “광주 상공을 비행하며 정찰임무를 수행”했고, 500MD 조종사 역시 “공중 정찰이나 광주 교도소에서 대기”했다는 등 자신들이 개인 비행기록 카드에 적은 임무와는 전혀 다른 진술을 했다. 두 조종사의 소속 부대장(육군 1항공여단)은 자신이 “(전투)임무를 내리지는 않았지만 폭도진압을 하다 보니 조종사들이 각자 임무를 C로 적을 수는 있다”며 사실과 달리 기록한 책임을 조종사들에게 돌리기도 했다고 방송은 전했다.

지난해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NFS)이 옛 전남도청 앞 전일빌딩에 남아있는 193개의 탄흔에 대해 헬기 기총사격에 의한 것이라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군 관계자들은 ‘절대 있을 수 없다’거나 ‘헬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소리’라며 의혹을 거듭 일축해 왔다.
 
헬기 조종사 등 관련자들이 오래도록 침묵의 카르텔을 견고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이 군 전역 이후에도 끈끈한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방송은 말한다. 당시 광주에 출동했던 헬기 조종사 등은 전역 후에도 산림청이나 경찰, 소방 등 동종 업계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진상조사 지시로 출범하게 된 ‘5.18 특조위’는 위원장을 포함한 9명의 민간인 조사위원들이 11월 말까지 3개월도 안 되는 기간만 조사를 벌이게 된다. 조사범위도 ▲5.18 당시 헬기사격 의혹과 ▲전투기 출격대기 의혹 등 2가지에만 국한돼 있다. ▲발포 명령자 규명이나 ▲행방불명자 소재파악 ▲기무사 문건 공개 계획 등 5.18 관련 총체적인 진실을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국방부는 새 정부의 적폐청산 과제를 가장 많이 떠안고 있는 부처 중의 하나다. ‘5.18 특조위’ 말고도 ▲군 적폐청산위원회 ▲사이버사령부 댓글사건 재조사 TF ▲군 의문사 조사 제도개선 추진단 ▲국방개혁추진단 등 5개의 위원회를 가동,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5.18 특조위’는 송영무 장관이 명운을 걸고 완수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18 제37주년 기념사에서 “5.18 진상규명에 더 큰 노력을 기울일 것과 헬기사격 및 발포책임자 규명, 5.18 관련 자료 폐기와 역사왜곡 방지” 등을 약속했다. 또 5.18 정신을 헌법 전문(前文)에 넣겠다는 후보시절의 공약도 거듭 강조했다.
 
최근 중앙일보 여론조사에 따르면 내년 개헌 때 헌법전문에 추가해야 할 항목으로 국민의 56.7%가 1980년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꼽았다. 국회의원들(52.3%)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전체 국민 여론은 긍정적이다.
 
그동안 꼭꼭 숨겨왔던 5.18 관련 기밀문건을 국군기무사령부 스스로가 공개하겠다고 밝힌 것은 ‘5.18 특조위’의 성공 전망을 밝게 해 주고 있다. 기무사에 보관돼 있는 기밀문건이 원상 그대로라면 진상을 규명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될 것이다. 기무사는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3차례의 진상조사 때도 적극 협조하지 않는 등 불신을 받아왔다.

기무사의 기밀문건 공개 방침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기무사가 공개할 그 기밀문건이 과연 얼마나 원상 그대로 보존돼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일부에서 우려하듯 기무사가 당시 문건을 고의적으로 조작·날조했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놓은 문건이 악의적인 조작과 날조로 오염된 것이라면 진상규명은커녕 또 다른 화(禍)를 불러 오게 될 것이다.
 
보다 정확한 진실규명을 위해 ‘5.18 특조위’는 당시 출동했던 군인들을 일대 일로 정밀하게 면접 조사하고, 협조한 경우 그 과오를 일체 불문에 부칠 것이라는 대국민 약속을 통해 자발적인 양심선언을 유도해야 한다.

지금까지 양심선언 사례가 나오지 않았던 이유는 군 조직에 대한 두려움과 생계형 자구책 때문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특조위는 따라서 출동 군인들에게 양심선언에 따른 공포심을 말끔히 없애줌으로써 진실을 밝히는 대열에 떳떳하게 동참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

‘5.18 특조위’가 규명해야 할 또 하나의 의혹, 즉 ‘5.18 전투기 출격대기’ 의혹은 아직 이렇다 할 단서를 잡지 못해 답보상태다. 5.18 당시 전투기 조종사로 광주에 있으면서 출격대기 명령을 받았었다는 예비역 장군의 최초 증언이 더욱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보다 객관적인 조사결과와 더 많은 관련자들의 증언이 따라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회에 계류중인 관련 법안 2개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는 것이다. ‘5.18 민주화 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과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 등이다. 전자인 ‘진상규명 특별법’이 제정되면 상임위원 2명을 포함한 15인의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5.18 당시 실종 및 사망·상해·발포명령·반인권적 행위 등을 포괄, 종합적으로 2년간 조사할 수 있다.

후자인 ‘특별법 개정안’은 5.18 민주화 운동을 비방·왜곡·날조하거나 관련자와 단체를 모욕하고 악의적으로 비방하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자에게는 7년 이하의 징역,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이런 강력한 사법적 대책이 없이는 ‘5.18 북한군 소행설’ 같은 터무니없는 거짓이 진실로 둔갑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관련 법률을 새로 만들고 기존 법률을 현상황에 맞게 수정해야 한다. 이번에 국방부가 출범시킨 3개월짜리 ‘5.18 특별조사위’는 조사권도 없고 기소권도 없다. 반드시 특별법이 제·개정돼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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