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재건축 수주전에서 건설사들이 과열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후분양제 논의가 활발해 지면서 건설사들의 주택 사업이 위축될 우려를 낳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건설업계가 ‘고난의 가을’을 보내고 있다. 대형건설사 간의 빅매치로 관심을 모은 강남 재건축 시장에서 상호 비방과 폭로전 등 제 살 깎아먹기 식 출혈 경쟁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에서 후분양제 확대 시행 방침을 밝히면서 캐시카우인 주택사업에서의 차질이 예상되고 있다.

◇ 승자 없는 싸움 된 강남 재건축 수주전

‘상처뿐인 영광.’ 요즘 건설업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 되고 있는 이 말은 최근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고 있는 강남 재건축 수주전을 가장 함축적으로 평가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조합원 총회 투표라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엇갈렸지만, 패자는 패자대로 승자는 승자대로 누구 하나 떳떳하지 못한 결과를 안게 됐다.

건설사들이 수주전 과정에서 보여준 행태는 지켜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총회 날짜가 임박할수록 건설사들은 상호 비방과 폭로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수주전의 핵심인 건설기술과 조합원들의 행복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마치 공약 보다는 상대 후보를 헐뜯는 네거티브에 매몰되는 정치권 선거철 풍경을 연상케 했다.

사실 건설사들의 과열 경쟁은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대표적인 수주 사업인 건설업은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에서는 물론 토목, 플랜트 등 다른 사업영역에서도 ‘일감’을 따내기 위해 사활을 걸면서 종종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국토부와 수사기관인 경찰까지 직접 나선 경우는 드물었다. 그렇다면 올해 하반기 들어 유독 재건축 수주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정부가 부동산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펴면서 주택 시장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8.2 부동산 대책과 SOC 사업 축소 등으로 인해 건설시장의 전체 파이가 줄면서 사업성이 보장되는 안전한 도시정비사업에 건설사들이 사활을 걸고 있다는 설명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재건축은 건설사들에겐 ‘땅 짚고 헤엄치기’ 격이다. 땅을 별도로 구매해야 할 필요성도 없고, 구매자들도 이미 정해져 있는 터라 미분양 가능성이 낮다”며 “특히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는 랜드마크가 돼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릴 수 있다. 사업 규모도 크다는 것도 장점이다. 반포 1단지만 해도 공사비만 2조6,000원이다. 현대건설 1년 치 영업이익을 달성하고도 남는 돈”이라고 말했다.

◇ 후분양제 도입 확산 움직임에 건설사 긴장감↑

해외시장이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도 국내 건설시장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배럴당 50달러를 오르내리는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면서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거둔 전체 수주 규모는 222억달러(19일 기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올해 최종 수주금액은 10년만에 최저치를 경험했던 지난해보다 소폭 상승한 300억달러에 턱걸이 할 전망이다.

건설사들의 생존을 위한 경쟁이 과열되고 있는 가운데, 후분양제 확산 움직임이 일면서 건설사들의 시름을 깊게 하고 있다. 최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선분양제를 대체하기 위해 후분양제를 LH에 이어 민간 건설사로 확대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관련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실제 후분양제 방식이 일반적인 분양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건설사들은 자금 조달에 상당한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공사비 대부분을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건설사들은 ‘후불제’ 성격의 후분양제가 확산되면 스스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큰 숙제를 안게 된다. 특히 네임밸류와 자금력에서 대형사들에게 뒤쳐지는 중견건설사들의 고전이 예상된다.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선분양제가 시행되고 있는 지금에서도 미분양 사태가 발생하면 건설사들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정부가 도입하겠다는 후분양제 아래서는 수요 예측이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어 건설사들의 리스크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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