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실상 재판 보이콧을 하고 있는 가운데, 과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판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각하, 죄송합니다.” 이양우 변호사가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퇴정했다. 1996년 7월, 12·12사태 및 비자금 사건에 대한 1심 선고를 한 달 가량 앞두고 변호인 선임을 사퇴한 것이다. 이른바 연희동 변호인단으로 불렸던 변호사 7명도 함께 사임계를 제출했다. 이들은 주2회 재판 강행에 공정성을 문제 삼았고, “재판부가 유죄 예단을 갖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로부터 21년 후, 낯익은 풍경이 벌어졌다. 바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서다.

◇ 전두환, 재판부의 인치 방침에 자진 출두… 보이콧 유명무실

유영하 변호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기한 연장이 결정된 직후 열린 공판에서 변호인단의 총사퇴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무죄추정과 불구속 재판이란 대원칙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변론이 무의미하다”는 게 그 이유다. 주4회 재판으로 시간 부족을 겪어왔던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과 피를 토하는 심정을 억누르면서 피고인을 홀로 두고 떠난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있다. 재판 보이콧이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변호인단의 전원 사퇴 이후 재판 출석을 거부했다. 재판부의 국선변호인 선정에도 불신을 보였다. 지금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과 같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19일과 20일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건강상의 이유를 내세웠으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기엔 어려운 상황이다. 사임계를 제출한 유영하 변호사와 지난 17일과 18일 연이어 접견을 가졌다는 점에서 꼼수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재판에 다시 참여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례가 그 증거다. 재판부는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출석을 거부하자 인치 방침을 세웠다. 여기에 수감된 교도소 측에서도 “재판부가 강제로 모셔오라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결국 두 사람은 제 발로 법정에 나갔다. 마다하던 국선변호인도 선임했다. 결과는 나빴다. 1심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각각 사형과 징역 22년을 선고받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12·12사태 및 비자금 사건에 대한 1심 재판에서 변호인단이 총사퇴하자 국선변호인 선정을 거부하고 보이콧을 했다. 하지만 재판부가 인치 방침을 알리자 자진 출두했다. <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강제로 재판에 출석시킬 수 있다. 피고인이 없는 궐석재판도 가능하다. 형사소송법 제277조2에 따르면, 구속된 피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에 의한 인치가 불가능하다고 인정될 경우 피고인 없이도 선고를 내릴 수 있다. 다만 재판부가 부담을 살 수 있다는 점에서 실현 여부는 장담할 수 없다. 전직 대통령을 물리력까지 동원해 법정으로 끌어내기가 쉽지 않고, 피고인 없는 선고는 판결의 정당성에 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재판 지연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이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 재판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만큼 뇌물수수자로 지목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선고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 보이콧이 항소심 공방 대비를 위한 포석을 뒀다는데 의미를 찾았다. 법적 투쟁에서 정치 투쟁으로 전략을 수정했다는 얘기다. 다시 재판을 받더라도 정치보복의 희생양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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