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경제 포럼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당시 후보)이 발언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규제완화를 통해 게임산업을 한국경제의 성장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게임업계는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집권기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부른다. 보수정당과 여성가족부가 게임을 ‘사회악’으로 취급하며 각종 규제법안들을 잇따라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심야시간 청소년의 인터넷 게임 이용을 원천 금지한 ‘셧다운제도’와 술·도박·마약·게임을 함께 규제한 ‘4대 중독관리법’이 대표적이다. 덩달아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널리 퍼졌다.

산업계는 자연스레 위축됐다. 국내 게임산업의 3분의2를 점유하고 있는 서울시 내 게임산업체 수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연평균 11.6%씩 감소해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하는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현재 게임업계 종사자는 8만명 가량으로, 셧다운제도가 본격 시행되기 직전인 2011년에 비해 약 1만5,000명이 줄어들었다. 세계 게임시장이 규모와 활동범위 양면에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현실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지표들이다.

 

'셧다운제도'가 시행되기 전과 현재의 게임업계 동향. <그래프=시사위크>

◇ 정부, “게임산업 성장동력 삼겠다”

보수정권 하에서 게임을 규제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된 반면 문재인 정부가 게임산업을 대하는 태도는 훨씬 호의적이다. 문재인 대통령(당시 후보)은 4월 열린 디지털경제 국가전략 포럼에 참석한 자리에서 “여러 규제 때문에 게임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아지면서 (한국의 게임 산업이)중국 등에게 추월당했다. 규제를 풀어준다면 게임 산업은 다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다”고 발언했다. 게임업계의 제1목표인 ‘규제완화’를 직접 거론하며 가려운 곳을 긁어준 것이다. 대선 당시 위정현 콘텐츠경영연구소장을 비롯한 게임산업인들이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고 나선 이유다.

여당과 청와대가 게임업계 출신의 인사들을 등용한 것 또한 업계의 기대감을 높였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전병헌 정무수석이 대표적이다. 인터넷 게임개발업체 ‘웹젠’의 대표이사를 역임한 김병관 의원은 지난 1월 게임을 영화·만화 등과 함께 예술의 일종으로 분류하는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스포츠협회장을 맡으며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쳐 청년층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남긴 전병헌 정무수석은 국방부가 병영 내 게임채널의 송출을 전면금지한 지난 2015년 조치에 대해 “‘꼰대’적 발상이다”며 정면 비판한 바 있다.

◇ 쉽지 않은 ‘규제완화’ 속도내기

문재인 정부가 예고했던 게임산업 규제완화 및 지원정책은 아직까진 답보 상태다. 집권한지 5개월밖에 지나지 않았거니와 북핵·통상현안과 추경 등 보다 시급한 현안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물밑작업은 느리게나마 진행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현재 셧다운제도의 효용성과 보완방안에 대한 연구를 한국행정학회에 위탁진행 중이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셧다운제 완화 입장을 밝혔던 만큼 가정 단위에서 자녀의 게임이용 제한시간대를 선택할 수 있는 ‘부모선택제’가 향후 논의의 중심이 될 전망이다.

다만 또 다른 관계부처인 여성가족부와의 협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지난 7월 열렸던 인사청문회에서 “지금은 셧다운제도의 안정화가 필요한 단계다. 게임산업 위축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게임산업 규제에 대한 양육계층의 인식조사 결과. <그래프=시사위크>

기성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된 부정적 인식도 규제완화작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여성가족부가 2012년 발간한 ‘2011 청소년 종합실태조사’는 당시 청소년층 자녀를 둔 부모의 74.5%가 셧다운제도에 찬성했음을 밝히고 있다. 적용범위를 스마트폰 게임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은 84.0%였으며 만 16세 미만으로 설정된 나이제한을 만 19세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도 49.0%에 달했다.

◇ 게임정책 로드맵 제공한 서울시… 중소업체 금융지원은 과제

서울시가 4월 발표한 ‘서울시 게임산업 육성 종합계획’은 산업발전방안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중소기업 육성이라는 정책기조도 함께 담아냈다. 2021년까지 500억원이 투입되는 해당 계획안에 따라 서울시는 게임 개발자를 육성·해외 마케팅 지원정책을 추진하며, 스타트업과 인디게임 개발을 지원하기위해 서울게임콘텐츠센터를 새롭게 단장하는 중이다. 지난 14일 첫 선을 보인 국제 이스포츠 대회 ‘서울컵 슈퍼매치 2017’에서는 10개 중소 게임개발업체가 참여해 자체개발한 제품들을 홍보했다.

“건전한 게임문화를 조성하고 과몰입을 방지하겠다”는 목표 하에 게임산업의 사회적 순기능을 배양하는 정책도 지속된다. 교육·의료·복지·건강분야와 게임을 접목시키는데 관련예산의 40%인 200억원이 책정됐다.

그러나 도시가 아닌 국가 차원에서 맡아야하는 일도 있다. 게임산업계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중소개발업체 이야기다. 지난 19일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바른정당 강길부 의원은 “중소 게임개발업체의 51%가 파산에 이르렀다”며 자금조달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했다. 한국게임사업전문가협회가 더불어민주당에 제출했던 정책제안서에 따르면 국내 중소 게임개발사의 82%가 연 매출 1억원을 넘지 못했으며(2015년 기준), 전체 게임산업 매출액의 40%를 상위 3개사가 차지했다(2016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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