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이 청와대에 특수활동비를 상납해왔다는 취지의 내용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에서 특활비를 상납 받은 경위와 사용처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뉴시스>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박근혜 정권에서 기업들이 보수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게 한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의혹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청와대로 흘러간 정황이 드러났다. 이헌수 전 실장은 박근혜 정부에서 약 4년간 국정원 예산 집행을 총괄했다.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차례로 교체될 때도 자리를 지켰던 그다.

이헌수 전 실장은 국정원에 재직한 4년 동안 매년 10억원씩 총 40억원 이상의 특활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사실을 털어놨다. 당시 특활비를 건네받은 청와대 측 인사로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을 지목했다.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과 함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두 사람은 31일 뇌물수수 혐의로 검찰에 긴급체포됐다.

◇ 청와대 비자금·보수단체 지원금·친박계 정치자금 ‘설설설’

사건의 향방은 앞으로 48시간 내에 결정될 전망이다. 긴급체포는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이 청구돼야 한다. 관건은 문고리 3인방이 특활비를 상납 받은 경위와 사용처다. 청와대에 상납된 국정원 특활비를 비서관 개인의 호주머니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낮다는 판단에서다. 결국 검찰 수사의 큰 그림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특활비 상납 및 유용을 지시했거나 이 같은 사실을 인지했을 수 있다는 데 의심이 적지 않다.

즉 검찰의 조사 결과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의심이 확인될 경우 관련 혐의로 추가 기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검찰은 국정원 특활비 사용처에 대해 세 가지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청와대 비자금, 보수단체 지원금, 친박계 정치자금으로 활용됐을 수 있다는 것. 특히 이춘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말처럼 “이 돈이 선거에 쓰였다면 더 큰 폭발력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정치권 게이트의 시작이다.

국정원 특활비를 건네받은 청와대 측 인사로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과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이 지목됐다. 두 사람은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과 함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다. <뉴시스>

사건의 또 다른 줄기는 그간 베일에 싸여있던 국정원 특활비의 공개다. 국정원은 정부 전체 특활비의 절반 이상으로 예산을 편성받지만, 사용처에 대해선 제대로 공개된 적이 없었다. “국가 안전보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 거부할 수 있다”는 국정원법을 근거로 특활비 집행 내역 요청을 거부해왔던 것이다. 특활비를 깜깜이 예산으로 비판하는 이유다. 실제 국정원의 민간인 댓글부대 운영비, 군 사이버사령부 심리전단 활동비가 모두 특활비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국정원 특활비가 정권 입맛에 따라 사용된 셈이다.

국정원 특활비 유용 의혹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정권에서도 깜깜이 예산을 이유로 뒷말을 샀다. 하지만 특활비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김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납세자연맹에 따르면, 국정원 특활비는 ▲2015년 4,782억원 ▲2016년 4,861억원 ▲2017년 4,947억원으로 예산이 늘었다. 법조계 일부에선 특활비가 용도와 다르게 사용·관리할 경우 업무상 횡령 또는 국고손실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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