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이 취임 초기부터 곤혹스런 처지에 몰렸다.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이 취임 초기부터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있다. 최근 국민연금이 KB금융 주주총회에서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 안건에 찬성표를 보낸 것을 두고 적절성 시비와 ‘정권 코드 맞추기’ 구설수가 불거지면서 한바탕 진땀을 흘린 것이다. 김 이사장은 기금운용본부가 의결권 행사 지침에 따라 독립적으로 결정됐다고 선을 그었지만 야당 정치권과 업계에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 취임 초기부터 호된 ‘신고식’

“외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국민연금의 독립성을 지켜낼 것이다.”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이 지난 2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와 맞물린 국민연금의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찬성 논란을 언급하며 기금운용의 독립성을 강화해 무너진 신뢰를 되찾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찬성 의결권 행사 과정에서 독립성이 훼손된 사실이 드러나 국민적인 실망감을 안겼다. 이에 최근 국민연금 수장에 오른 김 이사장에게는 기관 운용의 독립성 확보가 최대 과제로 지목된다. 다만 그 과정은 만만치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잡고 있어서다.

최근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 찬성 논란도 이를 단적으로 드러냈다는 평가다. 최근 국민연금은 KB금융지주 임시 주주총회에서 KB국민은행 노조가 제안한 하승수 변호사 사외이사 선임 건에 대해 찬성 의결권을 행사한 것을 두고 절차상 ‘적절성 시비’에 휘말렸다.

국민연금은 해당 의결권 행사 방침을 내부기구인 투자위원회에서 결정했다. 노조가 주주제안한 또 다른 안건인 정관변경 건은 외부인사가 참여하는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를 거쳤다. 금융권에선 뜨거운 논쟁 거리로 떠오른 이번 안건을 내부 기구만을 거쳐 처리한 것이 적절한지를 놓고 논란이 됐다.

해당 사외이사 선임안은 ‘노동이사제’와 같은 의미로 해석되면서 업계의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공약을 주목받고 있는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 멤버로 참여해 발언권과 의결권을 갖고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 국민연금 독립성 둘러싼 깊은 불신 해소 관건

국민은행 노조는 해당 안건이 주주로서 사외이사를 추천한 것이라며 노동이사제와는 개념이 다르다고 선을 그었지만 업계에서는 넓은 의미의 노동이사제로 해석했다. ISS를 비롯한 국내외 의결권자문사들은 노동이사제가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반대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자 정부와 코드를 맞추려고 한 것이 아니냐는 뒷말이 일었다. 김성주 이사장이 친문 계열 낙하산 논란을 산 인사라는 점에서 의심스런 눈초리가 짙어졌다. 국회의원 출신인 김 이사장은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낸 바 있다.

22일 기자간담회에서는 이같은 논란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이날 김 이사장은 우선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어떤 입장을 표하는 것은 전적으로 기금운용본부의 소관이고, 이사장에게 사전 보고하지 않도록 돼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노조가 사외이사를 추천한 것이기 때문에 노동이사라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다”며 “기금운용본부로부터 의결권 지침에 따라 한 것이라는 답을 얻었는데,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동 이사제가 바람직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제가 언급할 범위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기업이) 노동자를 항상 식구라고 하면서 정보를 공유할 땐 식구가 아니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든다”고 여지를 두는 발언도 건넸다.

이번 논란은 적절성 자체를 떠나서, 국민연금의 운용 독립성에 여전히 불신이 깊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이같은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의결권 행사 과정을 보다 세밀하고 투명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과연 김 이사장이 포부대로 이같은 과제를 수행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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