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이 수천억 규모의 영업손실을 반영한 올해와 내년 잠정실적을 공개하면서 파장을 낳고 있다. 사진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삼성중공업>

[시사위크=범찬희 기자] 국내 ‘빅3’ 조선사 가운데 하나인 삼성중공업이 부진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할 전망이다. 4년 연속 대규모 영업손실이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다. 장장 10년 가까이 불황의 늪에 빠져있던 조선업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삼성중공업은 올해 뿐 만 아니라 내년까지 수천억원 규모의 영업적자를 예고하고 나섰다.

◇ 증시 놀래킨 ‘빅배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

6일 유가증권시장의 최대 화제는 단연 삼성중공업이었다. 이날 삼성중공업이 4분기가 채 종료되지 않은 시점에서 연간 잠정실적을 공시하면서 투자자들의 이목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삼성중공업은 조선 업황 전체가 침체에 빠진 악조건 속에서도 올해 3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왔던 터라, 적잖은 투자자들이 적자 고리를 끊을 수 있다는 기대 속에서 최종 성적표를 확인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올해 줄곧 ‘플러스’를 유지해 오던 영업익은 ‘마이너스’로 전환돼 있었다. 더 놀라운 건 수치였다. 손실 규모가 무려 4,900억원에 이르렀다. 불과 한 달 전 발표된 3분기 보고서를 통해 누적 영업이익이 717억원이라고 밝힌 굴지의 조선사가 천문학적 적자를 떠안은 부실기업으로 변모해 있었다.

투자자들은 충격에 빠뜨린 건 이게 다가 아니었다. 삼성중공업은 이례적으로 내년 실적까지 예측해 내놨는데, 2,400억원의 영업적자를 안게 될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지난 1일 ‘조선의 날’ 행사에서 박대영 사장이 “내년 조선업은 올해 보다 나아질 것”이란 희망 섞인 메시지를 전달했기에 투자자들은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고, 삼성중공업의 이날 주가는 전날 대비 28.89% 떨어진 8,960원에 장을 마쳤다.

삼성중공업이 불보듯 뻔한 후폭풍을 감수하면서까지 2년 치 영업실적을 선 공개를 하고 나선 배경엔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남은 4분기와 내년 실적 하락이 분명한 상황에서, 이를 미리 외부에 알려 시장 충격을 최소하겠다는 나름의 대응전략인 것이다.

실제 삼성중공업의 경우처럼 ‘빅 배스’(Big Bath)를 단행하면 해당 기업은 시장으로부터 회계 투명성이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또 잠재부실을 털었기 때문에 향후 실적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경향이 강하다. 가까운 예로 올해 초 감사의견 ‘거절’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대우건설이 빅배스 카드를 꺼내 들어 어느 정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한 바 있다.

◇ 구조조정 실패라는 삼성중공업… 수주잔고 ‘꼴찌’

삼성중공업은 4분기와 내년 부진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구조조정 및 비용감축 실패에 따른 고정비 증가 ▲17년 수주한 일부 공사에서 손실 충당금 예상 ▲인력 구조조정에 따른 위로금 및 강재가 인상 등이다. 쉽게 말해 인력효율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일각에서는 손실 규모가 천문학적이라는 점에 비춰 이 같은 설명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삼성중공업의 매출(10조4,141억원) 대비 직원 급여 비중은 1.3%(1,379억원) 에 불과하며, 고정비용인 판관비에서 차지하는 몫도 22% 수준이다. 업계에서 삼성중공업이 빅배스까지 진행하게 된 핵심 원인을 구조조정의 실패가 아닌, 수주 실패 탓으로 보는 이유다. 실제 삼성중공업의 수주잔고는 지난 3분기 기준 조선 3사 가운데 가장 적은 12조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던 대우조선해양보다도 5조 적은 규모다.

한편 삼성중공업은 유상증자에도 나서 투자자들을 울상 짓게 하고 있다. 경영실적 악화에 따른 자금난 해소 고육책 차원에서 1조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삼성중공업이 1조 규모의 증자에 나선 건 지난해 11월 이후 거의 1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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