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가기
스페셜뉴스
[미투가 바꾼다①] 여성들의 ‘고발’ 끝나지 않았다
2018. 08. 24 by 은진 기자 jin9eun@sisaweek.com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로 한국에도 ‘#미투’(MeToo)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여성들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미투를 함께하며 여성운동의 반경을 넓혀갔다. 미투는 ‘나도 고발한다’는 주체적 의미지, ‘나도 당했다’는 피동적 의미의 운동이 아니다. 미투 이후의 사회는 달라져야만 한다. 우리 사회는 미투를 어떻게 바라보고, 여성들의 ‘비명’에 어떤 식으로 답해야 할까. <편집자 주>

 

자신의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무죄 선고는 들끓던 미투 운동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힘들게 목소리를 얻은 여성들은 쉽게 좌절하지 않았다.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피해 폭로는 올해 1월 29일이었다. 그가 방송과 검찰 내부 통신망을 통해 2010년에 벌어진 검찰 간부의 성추행 가해 사실을 폭로하자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서 검사가 털어놓은 것은 나의, 혹은 내 주변 사람의 일상 속에서 매일 같이 벌어져왔던 일들이었다. ‘부끄러운 일’ ‘피해자 탓’이라는 잘못된 인식 하에 묵인해왔던 일들이었다.

2016년엔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있었다.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말하기’ 운동의 초창기 버전이라 할 수 있다. 피해자들은 ‘영화계 내 성폭력’ ‘문학계 내 성폭력’ ‘출판계 내 성폭력’ 등 다양한 직업군에서 벌어지는 비일비재한 성희롱, 성추행 사례를 고발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0년 익명의 모임인 ‘운동사회 성폭력 100인 위원회’는 대학 총학생회, 노동조합, 사회운동 단체에서 벌어진 성폭력 사건을 조사해 17명의 가해자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성폭력은 피해자의 침묵을 강요하는 구조 속에서 존속한다. 24일 ‘미투에서 여성정치까지’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신기영 오차노미즈여대 교수는 “(피해자는) 폭로하면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책임으로 간주하게 되는 것”이라며 “제도의 배반으로 큰 트라우마를 입은 경우 피해를 호소해도 달라질 게 없으며 자신이 더 큰 피해를 입는다는 생각, (주변의) 피해자에 대한 불신과 반격(백래시)이 피해자의 침묵을 강요한다”고 했다.

성희롱·성추행 등 비교적 ‘가벼운’ 성폭력이 지니는 일상성은 가해자의 지위를 공고하게 만드는 기제가 된다. 신 교수는 “성희롱은 다른 종류의 성폭력보다 가볍게 다뤄지는 경향이 있다. 너무 일상적이기 때문에 피해 정도에 대해 둔감하게 생각하기 쉽다. 농담이나 친밀성의 표현으로 오해된다”며 “예를 들면 여성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성희롱을 그냥 웃어넘기거나 강력하게 거부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둘 중 어떤 선택을 해도 가해자가 유리해진다. 웃어넘기면 (성희롱을) 인정하는 것이고 거부하면 ‘민감한 여자’가 된다. 결국 남녀가 모두 성희롱에 침묵하고 동의하면서 남성중심적인 조직문화가 지속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투 운동이 이 같은 공고한 ‘카르텔’을 깰 수 있었던 것은 미투가 가진 ‘이어말하기’ 속성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경험을 직접 말하고 이 증언에 동참하는 또 다른 여성이 줄을 잇는다. 다수의 여성들이 동시에 성폭력을 말하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를 향한 ‘의심의 눈초리’는 힘을 잃는다.

신 교수는 “성폭력은 피해자를 침묵하게 함으로써 유지된다. 만약 피해자가 침묵을 깨고 말하기를 시작하면 말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침묵으로 되돌리려 한다”며 미국의 페미니스트 법학자 캐서린 매키넌을 인용해 “매키넌은 이렇게 여성들이 하는 말이 신뢰받기 시작하고 말하는 여성들이 발화주체로서 동등한 가치가 인정되면 가부장적 권력체제에 실질적인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봤다”고 했다.

전국미투생존자연대 발족식 및 권력형 성폭력 2차 피해 방지 정책 제안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뉴시스>

미투 운동은 미국 할리우드의 여성 배우들이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이제 미국의 미투는 여성들의 성폭력 방지 연대 운동인 ‘타임스업’(Time’s Up·한 시대가 끝났다) 운동으로 진일보했다. 개별 여성들의 성폭력 고발을 넘어 사회의 일상적이고 전반적인 성폭력 문화를 개선하자는 움직임이다.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선 미투를 상징하는 색인 검은 드레스를 입은 배우들이 ‘타임스 업’을 외치며 지지의사를 표명했다.

자신의 수행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한 무죄 선고는 들끓던 미투 운동에 찬물을 끼얹었다. 하지만 힘들게 목소리를 얻은 여성들은 쉽게 좌절하지 않았다. 안 전 지사의 재판 과정에서 있었던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와 미비한 법체계를 끊임없이 지적하며 미투의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입법기관인 국회에서도 미투 관련 법안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미투에 대한 올바른 응답은 무엇일까. 신 교수는 “사회적인 공감대는 형성됐다. 하지만 안희정 판결로 ‘역시 변화하기 어렵다’는 인식도 동시에 확대되고 있다. 입법기관과 법 집행기관은 모두 남성들의 독점적 권력기관이다. 여성의 경험에 의한 연대의 기반이 형성된 지금,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국가권력의 성평등 민주주의를 요구해야 할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