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지성이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지난 19일 개봉한 영화 ‘명당’(감독 박희곤)을 통해서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배우 지성이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지난 19일 개봉한 영화 ‘명당’(감독 박희곤)을 통해서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흠잡을 데 없는 연기력에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 작품을 고르는 선구안까지 갖춰 ‘믿고 보는 배우’로 불린다. 두 차례 연기대상을 수상할 만큼 이미 많은 이들의 인정과 박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부족한 게 많다며 겸손이다. 노력에 노력을 더하는 배우 지성. 맞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지.

지성이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지난 19일 개봉한 영화 ‘명당’(감독 박희곤)을 통해서다. 꾸준히 드라마 활동을 해온 그지만 영화는 ‘좋은 친구들’(2014) 이후 약 4년 만이다. ‘명당’은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 분)과 왕이 될 수 있는 천하명당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대립과 욕망을 그린 작품이다. 흥선대원군이 지관의 조언을 받아 2명의 왕이 나오는 묏자리로 남연군의 묘를 이장했다는 실제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인간과 나라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명당을 찾는다는 설정의 영화적 상상이 더해졌다.

극중 지성은 땅으로 왕을 만들려는 몰락한 왕족 흥선 역을 맡았다. 겉으로는 권력에 욕심이 없는 듯하지만 내면은 야욕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명당’에서 지성은 익히 알고 있던 흥선대원군이 그만의 캐릭터를 구현해 눈길을 끈다. 감정의 진폭이 가장 큰 인물을 소화한 그는 영화 초반과 후반 전혀 다른 결의 연기를 선보여 ‘역시 지성’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쉬운 점 투성이다. 동료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감탄했지만, 자신의 연기를 보면서는 마음이 무거워졌단다. 연기 인생 20년, 두 번의 대상 수상, ‘갓지성, 믿보배, 연기신’ 등 그를 향한 수많은 수식어들까지… 그가 최고의 배우라는 증거가 수두룩한데 한시도 겸손을 잃지 않는 지성이다. 최근 <시사위크>는 겸손하고 또 겸손한 지성과 만나 ‘명당’과 그의 연기 철학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언론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했는데.
“개인적인 부분인 것 같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건 아닌데 드라마와 영화가 다른 점이 있을 것 같고, 하고자 했던 부분들이 스크린으로 봤을 때 보이지 않아서 죄송스러웠다. 누가 되지 않았나? 전반적으로 영화의 흐름상 내가 해야 할 몫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그런 마음이 들었다.”

-드라마에서는 활약해서 대상도 받고 했는데, 영화는 오랜만이다. 소감이 어떤가. (지성은 2015 MBC 연기대상과 2017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대상의 의미에 대해서 크게 온 적도 없고, 그 시기에 그냥 열심히 한 사람에게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운이 있었던 것 같다. 아직은 내 연기가 부족하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연기를 즐기면서 한다기보다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 같다. 연기에 대한 능력치가 선천적인 것보다 후천적인 게 더 있고 노력형이다. 과정인 것 같다. 드라마에서의 기회가 많았다고 하면 영화의 기회가 부족했던 건 사실이고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지성이 ‘명당’에서 흥선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지성이 ‘명당’에서 흥선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평소 선한 이미지인데 흥선 캐릭터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흥선은 오히려 선한 사람이었을 거다. 그런데 몰락한 왕족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생과 사를 두고 상갓집 개와 같이 생활했다. 정말 살고자 했기 때문에 그 환경 자체가 그를 바꿔놨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왕족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일반 서민들은 그를 따랐다는 부분을 보면 그에게는 올바름과 선함, 리더십이 있었을 거다. 이 캐릭터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그가 악한 사람인가? 광기 어린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보다 지극히 선한 사람 그리고 그 시대에는 어떻게 보면 올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세도 정치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조선 후기 권력에 좌지우지되고 있었을 때 이 사람은 사람들을 포용하고 따뜻한 대인배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흥선 대원군 관련 자료 조사나 따로 공부를 한 부분이 있나.
“많은 공부를 하지는 않았고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은 찾아봤다. 하지만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영향을 주진 못했다. 흥선의 젊은 시기였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상상을 했다. 얼마나 힘들었고 아픈 일도 많았을 것이며 그와 반대로 열등의식도 생기지 않았을 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흥선 대원군이라기보다 인간 이항으로 이해하고 싶고 표현하고 싶었다. 최대한 인간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개인 액션 트레이너와 함께 액션 연기를 준비했다고. 
“이제 마흔 중반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연습한다고 해서 쉽게 되지 않는다. 흉내 내는 정도만 하고 싶지 않고, 액션 트레이너와 기술 연마하고 몸 쓰는 것을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롱런하기 위해서 자격 조건을 갖춰놔야 한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그렇게 해야 한다. 발레도 한다. 아이 앞에서 괜히 스트레칭하고 그런다.(웃음)”

-평소 일찍 일어난다고 들었다. 하루를 알차게 보내기 위함인가.
“아이를 키우면서 뭔가를 다 해내는 게 쉽지 않더라. 아내들의 고충을 알았다. 아내(배우 이보영)가 드라마를 찍을 때 나는 시나리오를 봐야 하는데 시간은 없고 아이는 울고, 놀자고 하고 씻기고 밥도 먹어야 하고 시간이 그냥 막 가니까 안 되겠더라. 그래서 8시에서 8시 반 사이에 아이와 같이 잤다. 그리고 새벽 3시에 일어나는 거다. 내 하루는 그때부터 시작된다. 서너 시간 사이에 정말 많은 걸 할 수 있다.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시나리오도 보고, 준비할 것도 하고 공부, 운동도 한다. 다 끝내놓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있으면 아이가 일어나고, 아내랑 아이랑 같이 아침식사하면서 시간도 보내고 그렇게 한다.”

-작품을 하다 보면 술자리도 많을 텐데.
“참여는 하는데 내가 술을 안 먹는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조금 더 맑은 정신으로 살고 싶어서다. 물론 술자리는 중요하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렇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쉽게 지치는 걸 인지하고 안 마시기 시작했다. 체력도 좋아지고, 연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아이한테 취한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다. 술 마신 아빠의 모습이 좋아 보일 리 없다. 몇 년 전부터 안 마신다. 그런데 그것도 팀에서 이해를 해주니까 할 수 있지, 안 해주면 못한다.”

지성이 연기 철학을 밝혔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지성이 연기 철학을 밝혔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본인의 연기에 대해 계속 부족하다고 표현을 했다. 보통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없으면 피하기 마련인데, 어떤 마음으로 계속 연기를 해서 이렇게 좋은 결과까지 오게 된 건가.
“감사하다. 사실 이 정도도 될지 몰랐다. 처음에 아역배우 이민우가 영향을 줬다. 드라마 ‘카이스트’를 함께 했는데 그때 당시만 해도 이민우가 연기 경력이 20년이 넘었던 상황이다. 그의 연기를 보는데 어떻게 대본 하나를 다 외워서 여유롭게 할 수 있는지 나는 감히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기생활을 할수록 나에게 주어진 역할이 조금씩 커지더라. 너무 두려웠다.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귀담아듣고, 어떻게 하는지 보고, 공부하고, 노력했다.

하나하나 글을 써나가듯 내 생각을 정리하면서 하나씩 되새겨 보니까 어느 날 이만큼 소화하는 정도가 돼 있더라. 잘하든 못하든. 그런 소중한 기억들이 감사하고 아름답게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도 너무 빠르다. 이렇게 20년이 지났을 줄 몰랐다.

대상으로 내 이름이 호명됐을 때 기쁠 줄 알았다. 자부심을 갖게 될 줄 알았는데 눈곱만큼도 없고, 연기에 대한 책임감이 느껴졌다. ‘받을 만 했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더 겸손해지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 앞으로 더 잘하자는 마음뿐이었다. ‘명당’도 그렇다. 내가 한 부분을 맡고 함께 하는데 혹시 누가 될까 (열심히 했다). 개봉하고 한 명 한 명 보러 와주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그런 힘으로 앞으로도 연기를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베테랑 배우인데 겸손함을 넘어 연기에 대한 경외감을 아직도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배우라는 것을 돈을 벌고 싶다 스타가 돼야지라는 마음으로 하면 못할 것 같다. 그런 마음으로 와서 그런지 누군가 칭찬을 해주면 못듣겠다. 대상 준다고 했을 때도 ‘나한테 왜 이래?’ 싶었다. 이런 겸손이 스트레스일 때도 있었다. 사람들이 가식인 거 아니냐고 하기도 하고 ‘너무 안 그래도 돼’라고 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바꿔보려고 노력했었다. 나도 ‘가식인가? 내가 부족하니 겸손으로 때우려고 하는 건가?’라고 생각하면서 바꿔보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더 스트레스더라. ‘그냥 살아. 네 모습대로 그냥 살아’라고 깨닫게 됐다. 그냥 나의 당연한 마음이다.”

-연기가 왜 좋나.
“왜 좋은지 사실 생각 안 해봤는데, 지금 질문을 들으니 영화 ‘레인맨’이 생각났다. 어린 시절 슬픔이 많은데 항상 웃는 아이였다. 그런데 그 영화가 굉장히 위로가 됐던 것 같다. 그 후로는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주변에서는 배우한다고 하면 다들 걱정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이 ‘정신차려야 한다’고 했던 것도 기억난다. 그런 얘기를 들었음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건 나한테 큰 힘을 준 뭔가가 있지 않았을까. 지금도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나 지쳤을 때, 뭔가 내려놓고 싶었을 때가 있었다 하더라도 나를 지탱하게 해준 건 배우라는 직업과 아내 이보영의 역할이 크다.”

-정말 사랑꾼이다. 기승전‘이보영’이다.
“사랑꾼을 넘어선 이야기다. 단순히 사랑해서, 사랑을 표현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말하는 건 아니고 나한테 (이보영이) 많은 힘을 줬고 똑바로 방향을 볼 수 있게 만들어줬다. 용기도 줬다.”

-마지막으로 ‘명당’이 관객들에게 어떤 영화로 남았으면 좋겠나.
“가족들을 데리고 가장 손쉽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명당’이지 않을까 싶다. 보면서 착잡한 마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역사도 설명해가면서 볼 수 있는 그런 영화가 아닐까. 그렇게 비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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