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히어로즈가 명승부 끝에 가을야구를 마쳤다. /뉴시스
넥센 히어로즈가 명승부 끝에 가을야구를 마쳤다. /뉴시스

[시사위크=김선규 기자] 9회초 스코어는 4대9. 사실상 승부의 추는 기울어졌다. 하지만 넥센 히어로즈의 야구는 거기서 그대로 끝나지 않았다.

대타로 가장 먼저 나선 김민성은 깔끔한 안타로 추격의 포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어진 두 타자 모두 범타로 물러나며 2아웃 주자 1루의 벼랑 끝에 몰렸다.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남은 아웃 카운트는 단 하나였고, 점수 차는 5점이었다.

2018시즌 넥센 히어로즈의 ‘마지막 타자’가 될 수 있는 상황. 김하성은 호쾌한 2루타로 경기를 이어갔다. 뒤이어 등장한 송성문도 풀카운트 끝에 2루타를 뽑아내며 주자 2명을 불러들였다. 서건창은 상대 수비실책의 행운으로 주자를 불러들이며 2루까지 진루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스코어는 7대9가 됐다.

물론 여전히 넥센 히어로즈가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아웃 카운트는 계속해서 하나만 남아있었고, 점수는 2점 차였다. SK 와이번스는 흔들리던 투수 켈리를 내리고 신재웅을 투입했다.

타석엔 박병호가 들어섰다. 넥센 히어로즈의 가장 강력한 타자이자 리그를 대표하는 홈런타자. 다만, 박병호는 플레이오프에서 좀처럼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박병호는 박병호였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경기장을 휘감았다. 홈런 한방이면 동점이 되는 상황에서 홈런타자 박병호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것이 스포츠다. 이날 역시 그랬다. 박병호는 신재웅의 6구째를 받아쳐 담장을 훌쩍 넘겼다. 순간 정적이 감돌았고, 이내 환호성이 터졌다. 박병호와 넥센 히어로즈는 그렇게 또 하나의 명승부를 만들었다. 9회 2아웃 이후 5점을 따라붙은 것이다. 그것도 플레이오프 마지막 5차전에서.

시계를 돌려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준플레이오프에선 넥센 히어로즈와 두산 베어스가 만났다. 두 팀은 4차전까지 3번의 끝내기 승부를 펼치며 가을야구의 진수를 선사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마지막 5차전. 넥센 히어로즈는 상대 투수 유희관에게 꽁꽁 묶인 가운데 이원석에게 내준 3점 홈런으로 패색이 짙어있었다. 9회말, 아웃 카운트 3개를 남긴 가운데 스코어는 0대3이었다.

당시에도 첫 타자는 대타가 등장했다. 그리고 출루에 성공했다. 이어 서건창도 안타를 때려내며 무사에 주자 2명이 나갔다. 그러자 두산 베어스는 ‘에이스’ 니퍼트를 투입하는 강수를 뒀다. 니퍼트는 두 타자를 연속해서 삼진으로 잡아내며 승부에 마침표를 찍는 듯 했다.

그때 박병호가 타석에 등장했다. 홈런 한방이면 동점이 되고 아웃 카운트 하나면 준플레이오프가 끝나는 절체절명의 순간, 가장 강한 투수와 가장 강한 타자가 맞붙은 것이다. 그리고 박병호는 거짓말처럼 니퍼트의 공을 담장 뒤로 넘겼다. 9회 2아웃에서 홈런 한 방으로 3점차를 따라붙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넥센 히어로즈는 두 경기 모두 승리를 챙기지 못했다. 연장전에 돌입한 끝에 아쉬운 패배를 기록했다. 9회 2아웃 이후 만들어낸 기적의 드라마와 박병호의 홈런은 그렇게 빛이 바랬다.

하지만 넥센 히어로즈 팬들은 아쉬워하지 않았다. 결과는 아쉬웠을지 몰라도 내용은 아쉬워할 수 없었다. 승리보다 더 큰 짜릿함과 감동을 선물 받았기 때문이다.

2013년, 그렇게 가을야구를 마쳤던 넥센 히어로즈는 이듬해 더욱 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반게임차이로 정규리그 2위를 차지했고, 가뿐히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올 가을 진한 여운을 남긴 넥센 히어로즈의 다음 시즌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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