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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뉴스
[문학이 사랑한 통계⑪] 코니 윌리스의 섬세한 통계적 세계
2018. 11. 26 by 현우진 기자 hwjin0216@naver.com
미국 SF 작가 코니 윌리스는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을 다수 수상한 인기 작가다. 사진은 최근 국내에 번역 출판된 코니 윌리스의 단편집 '화재 감시원'. /뉴시스
미국 SF 작가 코니 윌리스는 휴고 상과 네뷸러 상을 다수 수상한 인기 작가다. 사진은 최근 국내에 번역 출판된 코니 윌리스의 단편집 '화재 감시원'.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미국 SF 판타지 작가 협회가 그 해의 가장 뛰어난 작품에 수여하는 네뷸러 상을 7번, 팬 투표로 선정한 최고의 과학소설에게 주어지는 휴고 상을 11번 수상한 인기 작가 코니 윌리스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로 로버트 A. 하인라인과 제인 오스틴을 뽑는다. 딱딱하고 거친 하드 SF의 거장 하인라인과 중·상류층 여성들의 사랑을 그린 오스틴을 동시에 좋아하는 작가답게, 코니 윌리스의 SF는 다른 작가들보다 부드럽고 친근한 대화와 묘사에 훨씬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물론 그 뒤에는 냉철한 과학 이론들이 섬세하게 숨겨져 있다.

◇ 외계인의 지구 침략에 대한 베이지안적 추론

아서 코난 도일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의 모든 장·단편을 통틀어 가장 유명한 대사는 아마도 <네 사람의 서명>에 나온 다음 대사일 것이다. “불가능한 것을 모두 제거하고 남은 것은, 그것이 아무리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진실이다.” 홈즈의 말은 그의 기발한 추리와 과감한 판단을 상징하는 대사임과 동시에 통계적 가설검정 방법론의 아이디어도 담고 있다. 가설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 다른 가설들보다 더 가능성이 높기만 하면 충분하다.

코니 윌리스의 단편소설 <소식지>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졸지에 미국을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된 두 남녀의 이야기다. 주인공의 직장 동료 ‘게리’는 어느 날 세상이 어딘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와 함께 비행기에 탄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앞좌석을 발로 차지 않았고, 어른들은 존 그리샴이나 다니엘 스틸 대신 새뮤얼 버틀러의 <만인의 길>을 읽고 있었다. 물론 사람들이 조금 착하게 굴고 갑자기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고 해서 그것을 위험 신호로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다. 화자인 ‘낸’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앞에 선 남자는 사진이 있는 신분증 챙기는 걸 잊었고, 보안 검색 줄에서 우리 앞에 선 여자는 중금속을 두르고 나왔으며, 탑승장으로 가는 객차에서는 어떤 여자가 내 발을 밟고는 마치 내 잘못인 양 눈을 부라렸다. 좋은 사람들은 몽땅 다 게리가 돌아오던 그날 그 비행기에 탄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게 그거였을 것이다. 어쩌다 사려 깊고 지적인 사람들이 한 비행기를 타게 된 사건에서 오는 모종의 통계 오류 말이다.
그런 현상이 존재한다는 건 안다. 수앤이 한때 보험 회계사를 사귄 적이 있었는데(그도 횡령을 했고, 수앤이 그 남자와 사귄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 친구가 말하길 사건은 고르게 분포되는 게 아니라 바닥과 꼭대기가 있다고 했다. 게리는 그저 우연히 그 꼭대기를 만났을 뿐이었다.
코니 윌리스, 소식지, 신해경 옮김, 아작

토마스 베이즈 목사가 1700년대에 만들었던 베이즈 정리에 따르면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확률분포인 ‘사전 확률’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다. 때문에 똑같은 사건이라도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개개인의 주관에 따라 달라진다. 비행기 한 기에 모두 좋은 사람들만 탔다는 사실은 ‘게리’에겐 자연발생적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던 반면 ‘낸’에게는 허용 가능한 범위 안에 있었다.

그가 뒷주머니에서 접은 신문을 꺼냈다. “이거 봐.” 그가 신문을 내 앞에서 흔들었다. “명절 신용카드 사기 20퍼센트 감소. 명절 자살사고 30퍼센트 감소. 자선 기부액 60퍼센트 증가.”
“우연이야.” 나는 통계적인 고점과 저점을 설명했다. “봐.” 나는 신문을 뺏어 1면을 펴며 말했다. “‘동물 학대 반대자들, 시청 성탄 장식에 항의하다.’, ‘동물권 단체, 순록 착취에 반대하고 나서.’”
“네 동생은?” 그가 말했다. “늘 인생 패배자들하고만 사귄다며. 그런 애가 왜 갑자기 괜찮은 남자와 사귀기 시작해? 왜 탈주범이 갑자기 자수해? 왜 갑자기 사람들이 고전을 읽기 시작하지? 다들 사로잡혔기 때문이야.”
“외계에서 온 우주인한테?” 내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낸’은 결국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침략해 ‘긍정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있다는 게리의 가설을 받아들인다. 그녀의 극성맞은 올케가 “이제 내 딸에게 과도하게 이것저것 시키지 않고, 정상적이고 일반적인 아이로 키울래.”라고 다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것을 모두 제거하고 남은 것은, 그것이 아무리 믿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해도 진실이다>는 셜록 홈즈의 조언이 다시 떠오르는 대목이다.

◇ 특이점에서 발견해낸 ‘거대한 계획’의 의도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빅토리아 시대로 시간 여행을 하는 역사 연구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빅토리아 시대로 시간 여행을 하는 역사 연구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식지>나 <나일 강의 죽음>같은 단편도 좋지만, 코니 윌리스를 대표하는 작품은 역시 <둠즈데이 북>과 <화재 감시원>, 그리고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는 어떻게 해서 마침내 주교의 새 그루터기를 찾게 되었는가(이하 ‘개는 말할 것도 없고’)>로 이어지는 옥스퍼드 3부작이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인류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됐지만 과거에서 무언가를 가져오거나 역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동을 일으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반쪽짜리 시간여행 기술을 가장 쏠쏠하게 써먹는 것은 소설의 배경인 옥스퍼드 대학 베일리얼 칼리지의 역사학자들이다. 3부작 중 가장 다채롭고 희극적인 요소가 많은 <개는 말할 것도 없고>는 자신들이 실수로 역사를 바꿔버렸다고 생각한 두 역사연구가의 이야기다.

“통계량으로 보자면 당시 14분이나 4분의 편차는 쉽게 일어날 수 있었어요. 그리고 편차가 그렇게 나타나기만 했다면 인과 모순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거든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딱 9분이라는 편차가 나타났고, 그러니 단 하나 남은 논리적 결론은 베리티가 시공 연속체가 원하는 정확한 시점에 떨어졌-”
“시공 연속체는 내가 아주먼드 공주를 구할 수 있도록 일부러 편차를 일으킨 거란 말인가요?” 베리티가 말했다.
“맞아요. 그 때문에 우리는 당신이 인과 모순을 일으켰다고 믿고는 그 모순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우리는 토시를 코번트리로 보내기 위해 강신회를 열었고 토시는 그로 인해 주교의 새 그루터기를 본 뒤, 자신의 인생을 바꾼 그 경험을 일기장에 적게 되고-”
“그리고 슈라프넬 여사가 그걸 읽게 되는 거죠. 그리고 코번트리 성당을 재건할 결심을 하고 나를 뮤칭스 엔드에 보내 주교의 새 그루터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게 하고, 그래서 나는 고양이를 구하-”
“그래서 나는 그걸 과거로 돌려보낼 수 있게 되고 블랙웰에서 추리 소설에 대해 엿듣게 되고 탑에서 저녁을 보내고-”
“그렇게 해서 주교의 새 그루터기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리는 거군요.”
코니 윌리스, 개는 말할 것도 없고, 최용준 옮김, 열린책들

역사연구가 베리티는 과거에서 물에 빠진 고양이(‘아주먼드 공주’) 한 마리를 가져오고, 주인공 네드 헨리는 만났어야 할 남녀가 만나지 못하도록 막는다. 빅토리아 시대의 옥스퍼드에서 인과 모순을 바로잡으려고 애쓰던 이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이 일으킨, 꼬리에 꼬리를 문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모두 인과 모순을 해소해 역사를 제대로 흘러가게 만들기 위한 시공 연속체의 교정 작업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역사학자가 과거로 떠날 때 처음 설정했던 시간과 장소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를 가리키는 ‘편차’는 베리티와 네드가 인과 모순이 해결되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었던 단서다. ‘왜 인과 모순이 일어날 수 있도록 9분이라는 편차가 일어났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셜록 홈즈적 대답은, ‘그것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더 큰 과정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래서 울트라의 비밀은 지켜지는 거군요.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볼 때, 내가 아주먼드 공주를 구한 일이나 이리토스키 부인을 만나기 위해 옥스퍼드로 간 일, 당신 때문에 테렌스와 모드가 만나지 못한 일, 보트 빌릴 돈을 대준 일, 강신회 등 모든 것이 자체 교정의 일부였단 말인가요? 그 모든 일이요? 베리티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 모든 일이요.” 나는 대답을 하고 나서 내가 한 말에 대해 생각했다. 연속체는 단지 자체 교정을 위해서 그토록 정성스럽게 일을 꾸미고 모든 사람들을 참여시켰단 말인가? 페딕 교수와 오버포스 교수의 다툼이나 심령 연구 협회까지도? 설탕 입힌 제비꽃을 담아 두었던 상자를 잡동사니 판매장에 기증한 것도? 블랙웰에서 모피를 걸쳤던 여자들까지 모두가 다 자체 교정을 위해 동원된 거란 말인가? (중략) 만약 이것들이 자체 교정의 일부로서 역할을 했다면 자유 의지의 개념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면 자유 의지 역시 그랜드 디자인의 일부인 걸까?

자유 의지와 시공 연속체에 대해 고민하던 네드는 약 600년 뒤의 미래, 2678년 6월 15일 옥스퍼드에서 인과 모순을 교정하기 위한 사건이 일어나리란 것을 알게 된다. 말하자면 그 역시 더욱 거대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한 부분이었던 셈이다. 개개인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이 알고 보니 모두 거대한 계획의 일부였다는 전개는 코니 윌리스의 선배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연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