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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말모이] ‘순한 맛’이 주는 ‘뜨거운’ 울림
2018. 12. 24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가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까. 해당 영화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가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까. 해당 영화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어린아이부터 지식인들까지 나이와 성별, 지식 유무를 떠나 조선인이기에 ‘말 모으기’에 마음을 모았다. 지금은 당연하게, 어쩌면 함부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말, 한글이 어떻게 지켜졌는지 담아낸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가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을까. (*지극히 ‘주관적’ 주의)

◇ 시놉시스

까막눈 판수, ‘우리말’에 눈뜨다 vs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 ‘우리’의 소중함에 눈뜨다!

1940년대 우리말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경성. 극장에서 해고된 후 아들 학비 때문에 가방을 훔치다 실패한 판수, 하필 면접 보러 간 조선어학회 대표가 가장 부인 정환이다. 사전 만드는데 전과자에다 까막눈이라니! 그러나 판수를 반기는 회원들에 밀려 정환은 읽고 쓰기를 떼는 조건으로 그를 받아들인다.

돈도 아닌 말을 대체 왜 모으나 싶었던 판수는 난생처음 글을 읽으며 우리말의 소중함에 눈뜨고, 정환 또는 전국의 말을 모으는 ‘말모이’에 힘을 보태는 판수를 통해 ‘우리’의 소중함에 눈뜬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바짝 조여오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말모이’를 끝내야 하는데…. 우리말이 금지된 시대, 말과 마음이 모여 사전이 되다.

▲ 평범한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 ‘UP’

‘말모이’는 우리말 사용이 금지된 1940년대, 까막눈 판수(유해진 분)가 조선어학회 대표 정환(윤계상 분)을 만나 사전을 만들기 위해 비밀리에 전국의 우리말과 마음까지 모으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주시경 선생이 남긴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로 조선말 큰 사전의 모태가 된 말모이는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자 극중에서 사전을 만들기 위해 전국의 우리말을 모으는 비밀작전의  이름이기도 하다.

‘말모이’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아무도 몰랐던 우리말 사전의 탄생 비화를 담았다. 조선어학회가 왜 주시경 선생님의 뒤를 이어 사전 편찬 작업을 재개하게 됐는지, 말과 글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였는지 등 우리말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말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말모이’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아무도 몰랐던 우리말 사전의 탄생 비화를 담았다. (왼쪽부터) 조현도 유해진 박예나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말모이’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아무도 몰랐던 우리말 사전의 탄생 비화를 담았다. (왼쪽부터) 조현도 유해진 박예나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는 1940년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시대의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전국의 학교에서 우리말 사용과 교육이 금지되고 국어 시간에는 일본어를 가르치고 배웠던 시대다. 1929년부터 조선어학회에 의해 재개된 사전 편찬 작업이 전국의 사투리를 모아 공청회를 거치는 말모이의 완수를 마지막 순서로 남겨 놓았던 시기, 일제의 감시망은 점점 더 극악해진다. 이를 피해 까막눈 판수와 조선어학회 회원들을 주축으로 말모이가 펼쳐지는 과정은 그 자체로 극적이고, 공감할 수밖에 없는 뭉클한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무장투쟁을 한 독립군, 위대한 영웅들의 모습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낸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점도 좋다. 그동안 일제강점기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부분의 영화에서 독립운동가의 항일투쟁을 다뤘던 점과 달리, ‘말모이’는 ‘벤또’가 아닌 우리말 ‘도시락’을 지키며 일제에 맞서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독립운동의 또 다른 면을 보여줘 특별함을 더 한다.

웃음 요소도 적절히 배합,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전달한다. 유해진의 공이 크다. 극중 감옥소를 밥 먹듯 드나들다 조선어학회 사환이 된 까막눈 판수 역을 맡은 그는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웃음을 자아낸다. 특히 판수가 현진건의 단편 ‘운수좋은 날’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유해진은 오열하고 있지만.

묵직한 감동도 안긴다. 유해진이 연기한 판수는 자식에게 걱정만 끼치는 못난 아버지였지만 조선어학회에 들어가고 후반으로 갈수록 변화하고 성장한다. “도시락이든 벤또든 배만 부르면 된다”라던 판수는 동지를 위해, 딸 순희의 이름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건다. 유해진은 판수로 완전히 분해 그의 변화를 섬세하게 담아내며 마음을 흔든다.

‘말모이’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낸 (왼쪽부터) 김홍파 윤계상 민진웅 김선영 김태훈 우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말모이’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해낸 (왼쪽부터) 김홍파 윤계상 민진웅 김선영 김태훈 우현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유해진 외에도 윤계상(류정환 역)·김홍파(조갑윤 역)·우현(임동익 역)·김태훈(박훈 역)·김선영(구자영 역)·민진웅(민우철 역) 등이 부족함 없는 활약으로 극을 채운다. 아역배우 조현도(김덕진 역)와 박예나(김순희 역)도 제 몫을 톡톡히 해내며 ‘말모이’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 진부한 전개 ‘DOWN’

거창한 스토리와 화려한 볼거리, 자극적인 소재 등을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말모이’는 자칫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야기 전개도 진부한 지점이 있다. 이에 135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지루할 수 있다. 또 몇몇 장면에서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험을 할지도 모르겠다.

◇ 총평

배우 유해진은 ‘말모이’를 ‘순한 순두부 같은 영화’라고 소개했다. 그의 말처럼 ‘말모이’는 어떤 조미료로 넣지 않은 순수하고 건강한 맛의 영화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이들에게는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우리말을 지키려고 고군분투한 이들의 열정은 그 어떤 맛보다 뜨겁게 마음을 흔든다. 기대보다 더 큰 감동을 전하는 영화 ‘말모이’는 내년 1월 9일 개봉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