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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판문점 선언 1주년 특집 : 봄은 온다①] 남북 전문가 7인에게 들었다
2019. 04. 25 by 소미연 기자 pink2542@sisaweek.com

첫 발을 떼기가 어려웠을 뿐이다. 그날,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두 손을 맞잡고 함박웃음을 보였다. 사이좋게 군사분계선을 한 발짝씩 넘나들기도 했다. 불식간 찾아온 한반도의 봄에 그간의 추위는 금세 잊을 만했다. 그리고 다시, 봄이다. 1년 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완연한 봄이 오기까지는 아직 기다려야 한다. 꽃샘추위가 자연의 순리인 것처럼 남북의 봄도 아마 그쯤 머물고 있는 게 아닐까. <편집자주>

시사위크에서 이달 초부터 남북 전문가들을 접촉해 북한의 비핵화와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론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사진 왼쪽에서부터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 문정인 대통령 통일안보외교특보, 최완규 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문장렬 국방대 교수, 김준형 한동대 교수,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센터장이다. / 뉴시스, 방송화면 캡처
시사위크에서 이달 초부터 남북 전문가들을 접촉해 북한의 비핵화와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론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사진 왼쪽에서부터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 문정인 대통령 통일안보외교특보, 최완규 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문장렬 국방대 교수, 김준형 한동대 교수,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센터장이다. / 뉴시스, 방송화면 캡처

시사위크=소미연 기자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

1년 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평화의 집 앞마당에서 공동으로 발표한 이른바 ‘판문점 선언’의 내용 일부다. 이날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공식 천명하며 새로운 남북 관계를 열었다. 바야흐로 평화의 시대다. 문제는 비핵화 협상에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북미 간 샅바싸움이 길어지면서 사실상 대화가 중단됐다. 한반도의 해빙 국면에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고 있다.

◇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 믿는다”

하지만 봄은 온다. <시사위크>에서 만난 남북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진정성에 무게를 실었다. 4·27 판문점 선언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보여준 말과 행동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일단 핵무기·핵미사일 시험을 멈췄다. 여기에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의 영구 폐기를 선언한 점, 나아가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경우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 의사를 밝혔다는 점을 주목했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북한의 핵시설과 능력의 80%를 폐기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핵포기는 경제발전으로 노선을 변경한데 따른 전략적 선택이다. 최완규 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김정은 위원장도 핵을 강화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없고, 과거 고난의 행군을 주민들에게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 “북한으로선 외국으로부터 자본과 기술을 들여오고, 국제사회에 정상국가로 등장하면서 국제금융기구의 지원을 받는 길을 택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그 길이 곧 체제 유지와도 연결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뒤 한반도의 비핵화와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공식 선언했다. /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가진 뒤 한반도의 비핵화와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공식 선언했다. / 뉴시스

실제 김정은 위원장은 우리 특사단에게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김준형 한동대학교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의 전략적 결단은 조건부 비핵화로, 자신의 생존을 확보하고 더 나은 옵션이 있으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따라서 그는 “북한이 미국의 빅딜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비핵화 의지가 없었다고 결론을 내는 것은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비핵화 진정성에 대해 계속해서 의문이 제기된다는데 김정은 위원장의 고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성현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부담으로 느껴야 할 것 같다”면서 “이런 상태라면 누가 조금 더 진정성을 보여야 하는지 자명해지지 않겠는가.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의향이 있다면 국제사회가 믿을 수 있도록 확신을 줘야 하고 이에 대한 절반의 책임을 안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 “협상은 51대 49의 싸움이다”

그렇다면,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비핵화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한 방안이 있을까. 가장 우선시되는 방안은 북미의 신뢰 회복이다. 그 방법론에 대해선 문장렬 국방대학교 교수와 김준형 교수가 다소 이견을 보였다. 두 사람은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문장렬 교수는 비핵화 정의에 대한 북한의 공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말로만 완전한 비핵화라고 했을 뿐 최종 상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정상회담 또는 문서를 통해 밝힌 적이 없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진정성이 의심을 받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면서도 “비핵화 정의가 없다보니 그것을 달성하고자 하는 로드맵이 나올 수 없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따라서 문장렬 교수는 북한에 “솔직히 얘기하라”고 제안했다. 미국에서 비핵화의 정의를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핵폐기(FFVD)’라고 말한 것처럼 북한도 “붙이고 싶은 모든 조건을 붙여 자신들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해야 합의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반면 김준형 교수는 “북한이 비핵화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이 제재 완화를 얘기하고 있지 않은데 북한이 어떻게 영변 다음을 얘기할 수 있겠느냐”는 것. 여기에 최완규 전 총장은 협상의 불평등을 지적했다. 그는 “차원이 전혀 다른 가치를 등가로 교환하려고 했다”면서 “협상은 51대 49의 싸움이다. 성공하는 것도 하나나 둘을 먹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한쪽에 유리한 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 “문재인 잘하고 있다. 다만…”

현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 역할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당장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1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일원으로서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는 판문점 선언에서 언급한 것처럼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강조한 것과 같다. 하지만 미국은 중재자 역할만 인정하고 있다는 게 남북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결국 북미가 요구하는 역할의 간극을 얼마큼 좁히느냐가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정동영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정면 승부’를 당부했고, 최완규 전 총장은 ‘내비게이터(안내자)’ 역할을 강조했다. 나아가 문장렬 교수는 “정부가 결단을 해야 할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면서 “남북 경협에 있어서 비핵화와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를 언제까지 유지해나갈 것이냐는 문제에 답을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주평통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통일의 필요성에 인정하고 있다. / 이선민 그래픽 기자
민주평통에 따르면, 우리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통일의 필요성에 인정하고 있다. / 그래픽=이선민 기자

특히 김준형 교수는 김정은 위원장의 당사자론 발언을 주목했다. 그는 “북한의 입장에선 우리한테 두 번 속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우리가 설득해 동창리를 양보하고 영변도 내놨다. 자신들에게 또 내놓으라고 할 게 아니라 미국을 설득시켜달라는 불만이자 부탁의 표현”이라고 해석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올해 말까지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만큼 시간을 두고 “물밑에서 꾸준히 두드려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기회는 더 빨리 찾아올 수도 있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안보외교특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일본 국빈 방문에 이어 6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다시 한 번 일본을 찾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이 과정에서 한국을 방문하고 북미 대화를 재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금 과도기적 불확실성에 있지만 미래를 밝게 볼 필요가 있다”면서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린다”고 말했다.

◇ 김정은 서울 답방 가능성 여전

자칫 표류될 수 있는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긍정적으로 전망됐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연말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보낸 친서를 긍정의 신호로 해석했다. 친서에는 서울 답방이 이뤄지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과 향후 서울을 방문하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의지가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반대로 “김정은 위원장이 약속을 지키겠다는 얘기”라는 게 정세현 이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은) 시기의 문제”라고 말했다.

정동영 대표는 지난해 9월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목란관 만찬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주고받은 대화를 떠올렸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에게 ‘남쪽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환영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며 서울에 꼭 오라고 권했더니, ‘내가 서울에서 환영받을 만큼 아직 일을 많이 못했다’고 겸손한 화법으로 답변을 했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전 세계인을 향해 한반도 비핵화를 연설하는 그날을 정동영 대표도 기다리고 있다.

장밋빛 미래의 동력은 국민 여론이다. 정세현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내적·정치적 힘이 떨어지면 북미 대화를 중재할 수 없다”면서 “여론이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정인 특보 역시 “무엇보다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국민 76.2%(매우 필요하다 37.4%/어느 정도 필요하다 38.8%)가 통일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통일이 된 뒤 경제적 효과에 대해 65.2%(매우 공감한다 26.0%/대체로 공감한다 39.2%)가 공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당 수치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2019년 1분기 통일여론조사 결과로 나타났다. 민주평통은 한국사회여론연구소에 의뢰해 지난달 15~16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방식의 조사를 진행했다. 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는 ±3.1%p다. 조사 결과, 문재인 대통령의 新한반도체제 선언에 대한 공감도 역시 절반(59.2%)을 넘겼다.

다만 최완규 전 총장은 “현실을 냉혹하게 볼 필요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진정성을 믿는다”면서도 “북한이 제재를 예상하고도 고난의 행군을 하며 핵개발을 했다는 점에서,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대북정책은 오히려 반동을 불러오거나 좌절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북한을 고집 있게 설득하면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최완규 전 총장은 “대통령의 고심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 북러 정상회담, 일단 긍정적 평가

현재 한반도 비핵화 협상의 변수로 등장한 것은 북러 정상회담이다. 김정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만남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성현 센터장은 “분단의 역사로 피해의식이 반영된 조건반사적인 반응일 수 있다”면서 도리어 “역설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도발 대신 외교적인 노력을 택했다는 것, 아직 협상(대화)의 여지가 있다는 것에 다행이라는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준형 교수는 북러 회담 이후 “러시아가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에 대해 국제여론전을 대신해줄 가능성”을 제기했다. 실제로 러시아는 북한이 내세우는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지지해왔다. 그럼에도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거나 미국에 반기를 들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 여론전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이성현 센터장은 “회담을 통해 러시아가 북핵 문제에서 얼마큼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오랜만에 다시 검증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