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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아내를 죽였다] 현실 공포? 한숨 유발 스릴러
2019. 12. 06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영화 ‘아내를 죽였다’(감독 김하라)가 베일을 벗었다. /kth
영화 ‘아내를 죽였다’(감독 김하라)가 베일을 벗었다. /kth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친구와 술을 마신 후 곯아떨어진 정호(이시언 분). 숙취로 눈을 뜬 다음 날 아침, 별거 중이던 아내 미영(왕지혜 분)이 살해당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그 순간, 정호는 자신의 옷에 묻은 핏자국과 피 묻은 칼을 발견하게 된다. 가장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그는 경찰의 눈을 피해 도망친다. 알리바이를 입증하고 싶지만 간밤의 기억은 모두 사라진 상태. 스스로를 믿을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정호는 어젯밤의 행적을 따라가기 시작한다.

배우 이시언의 스크린 첫 주연작 영화 ‘아내를 죽였다’(감독 김하라)가 베일을 벗었다.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평점 9.4점을 기록한 희나리 작가의 웹툰을 영화화한 ‘아내를 죽였다’는 제32회 도쿄국제영화제 경쟁부문인 ‘아시안 퓨처’에 초청, 개봉 전부터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았다. 국내 관객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내를 죽였다’는 음주로 전날 밤의 기억이 사라진 남자가 아내를 죽인 범인으로 몰리면서 벌어지는 사투를 그린 블랙아웃 스릴러다. 일상적인 사건에 스릴러 장르를 결합한 ‘현실 공포’로 관객 취향을 저격한다는 각오다.

영화는 과음으로 인한 단기 기억 상실 현상을 뜻하는 ‘블랙아웃’을 소재로 호기심을 자극한다. 필름이 끊긴 상태에서 아내를 죽인 용의자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 정호의 모습은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흥미를 끈다.

‘아내를 죽였다’에서 연기 호흡을 맞춘 이시언(위)와 왕지혜 스틸컷. /kth
‘아내를 죽였다’에서 연기 호흡을 맞춘 이시언(위)와 왕지혜 스틸컷. /kth

하지만 그뿐이다. 스릴러의 장르적 재미와 긴장감, 어떤 것도 담아내지 못했다. 우선 정호가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리며 아내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이 지나치게 천천히 펼쳐져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짜임새도 헐겁다. 불필요한 설명이 몰입을 방해하더니, 정작 관객이 궁금해할 부분에 대한 설명은 과감히 생략한다. 비로소 마주한 진실은 허무하기까지 하다. 97분이라는 비교적 짧은 러닝타임이 길게만 느껴지는 이유다.

더 큰 문제는 주인공 정호에게 쉽게 몰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호는 평범하게 직장에 다니며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었지만,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후 생활고에 시달리며 막다른 길로 빠져들게 되고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되는 인물이다.

이에 대해 김하라 감독은 “일상이 무너진 상황에서 개인이 쉽게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와 그것이 만든 결과를 통해 ‘평범하게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진 안타까운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아내를 죽였다’로 첫 스크린 주연작을 소화한 이시언. /kth
‘아내를 죽였다’로 첫 스크린 주연작을 소화한 이시언. /kth

그러나 어긋난 선택들을 계속해가는 정호의 모습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아내를 그리워하다 다른 여자에게 입을 맞추려한다거나, 술에 취해 아내를 찾아와 눈물로 새로운 삶을 약속하더니 너무 쉽게 다시 유혹의 길로 빠져드는 정호에게 감정이입을 하기란 여간 쉽지 않다. 몰입은커녕, 한숨만 나온다.

데뷔 10년 만에 스크린 첫 주연작을 소화한 이시언은 그동안 보지 못한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일상적인 생활 연기부터 극한의 감정 연기를 오가며 극을 이끈다. 다만 몇몇 장면에서는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다소 과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오는 1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