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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볼거리의 딜레마
[‘바른 볼거리’의 딜레마②] 애매한 기준과 뒷북 규제… 반복되는 ‘시스템 무용론’
2019. 12. 18 by 이민지 기자 sisaweek@daum.net
부모가 즐겨보는 드라마를 곁에서 따라보는 것을 시작으로 어른이 되고 노후에 접어들 때까지, 드라마는 우리의 삶과 함께 한다. / tvN '응답하라 1988' 스틸컷
부모가 즐겨보는 드라마를 곁에서 따라보는 것을 시작으로 어른이 되고 노후에 접어들 때까지, 드라마는 우리의 삶과 함께 한다. / tvN '응답하라 1988' 스틸컷

시사위크=이민지 기자 

“한국인에게 드라마를 사랑하는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일까. 프로그램 선호도를 조사할 때마다 tv 드라마는 순위를 거의 휩쓸다시피한다. 예컨대 2006년 시청률 상위 20개 프로그램 가운데 16개가 드라마였으며, 1위부터 10위까지가 모두 드라마였다. 그해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매해 그렇다. 방송가에서 이른바 ‘꿈의 시청률’로 통하는 시청률 50퍼센트를 넘기는 프로그램도 드라마 말고는 없다. ”

-김환표 저서 ‘드라마, 한국을 말하다’ 中-

한국인의 각별한 드라마 사랑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부모가 즐겨보는 드라마를 곁에서 따라보는 것을 시작으로 어른이 되고 노후에 접어들 때까지, 드라마는 우리의 삶과 함께 한다. 그리고 이미 드라마는 대중의 삶의 일부분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모양새다.

물론 플랫폼의 다양화로 TV 드라마의 영향력이 점차 하락세를 띠고 있는 추세지만, 아직까진 방송사를 통해 방영되는 TV 드라마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태양의 후예’, ‘도깨비’, ‘SKY 캐슬’ 등 화제성 있는 드라마 하나가 사회 트렌드를 변화시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드라마가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추세에 대해 시청자들이 우려감을 내비치는 이유기도 하다. 더욱이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접할 수 있는 TV 드라마에 아이들이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은 자극적으로 변해가는 드라마의 변화를 간과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 방심위의 ‘애매한’ 폭력성·선정성의 기준

이에 국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폭력성과 선정성이 강한 드라마에 대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 18조에 따라 설치된 조직으로, 방송 내용의 공공성 및 공정성을 보장하고 정보통신에서의 건전한 문화를 창달하며 정보통신의 올바른 이용환경 조성을 주된 목적으로 활동한다. 특히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심의에 대한 규정’을 토대로 시청자들이 보기 부적절한 장면에 대한 제재를 주업무 중 하나로 수행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심의 절차는 홈페이지, 전화, 우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청자들의 민원 접수를 받은 뒤 단순 문의 사항과 불만 토로에 그치는 민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민원에 대해 심의를 상정, 최종적으로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5명의 위원들의 심의를 받는 프로세스로 이뤄져있다. 또한 소위원회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심의에 대한 규정’을 토대로 부적절한 방송에 대한 제재를 내리게 된다.

선정성과 폭력성이 강한 작품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 그래픽=김상석 기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선정성과 폭력성이 강한 작품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것이 주 업무 중 하나다.  / 그래픽=김상석 기자

그렇다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작품의 폭력성과 선정성의 기준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방송프로그램의 등급분류 및 표시 등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15세 이상 시청가’ 기준, 폭력성을 ▲타인에 대한 신체적 가격이나 무기류를 이용한 폭력이 반복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것 ▲유혈이나 신체 훼손 등의 표현이 반복적으로 묘사되지 않은 것 ▲성적 폭력 행위가 전체적인 맥락상 암시적으로 표현된 것 ▲기타 폭력적 내용이 반복적으로 표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선정성은 ‘15세 이상 시청가’ 기준 ▲신체 노출이 강조되거나 반복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것 ▲성적 신체 접촉이 자극적이지 않게 표현된 것 ▲성적 내용과 관련된 언급이 구체적이지 않게 표현된 것 ▲기타 정서적 불안감을 줄 수 있는 선정적 내용이 반복적으로 표현되지 않은 것으로 규정돼 있다.

또한 ‘방송심의에 대한 규정’ 제5절 ‘소재 및 표현기법’에는 ▲방송은 과도한 폭력(언어 등 비물리적 폭력 포함)을 다루어서는 아니되며, 내용전개상 불가피하게 폭력을 묘사할 때에도 그 표현에 신중을 가하여야한다고 적시돼 있다. ‘과도한 폭력’의 기준은 어디에도 없다.

이밖에도 ‘방송심의에 대한 규정’에 제5절 ‘소재 및 표현기법’에는 ▲방송은 부도덕하거나 건전치 못한 남녀관계를 주된 내용으로 다루어서는 아니되며, 내용전개상 불가피한 경우에도 그 표현에 신중을 기하여야함 ▲성과 관련된 내용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료 묘사하여서는 아니되며 성을 상품화하는 표현을 하여서도 아니됨으로 적시하고 있다. 또한 내용전개상 불가피한 경우 극히 제한적으로  ▲폭력적인 행위 및 언어를 동반한 강간․운간․성폭행 등의 묘사장면 ▲ 어린이․청소년을 성폭력․유희의 대상으로 한 묘사장면 등을 허용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지나치게 선정적’ ‘제한적’ ‘반복적’ 등 구체적인 회차나 정도의 표기 없이 매우 주관적인 판단이 가능한 개념으로 규정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올 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선정성과 폭력성으로 제재를 받은 7작품. / JTBC, SBS, MBC, KBS2TV, OCN, TV 조선 제공
올 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선정성과 폭력성으로 제재를 받은 7작품. / (사진 좌로부터) JTBC, SBS, MBC, KBS2TV, OCN, TV 조선 제공

◇ 2019년 방심위, 폭력성 및 선정성 제재 ‘단 7작품’

그래서일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제재 수준은 시청자들의 체감 정도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어 보인다.

KBS2TV에서 올 한 해 방영된 드라마는 약 12편에 달한다. SBS는 약 14편, JTBC는 약 16편의 드라마를 방영했다. 한 방송국에서 12편의 드라마를 방영했다고 가정하면, 지상파 3사와 JTBC, tvN만 단순 계산해도 올 한 해 60편 이상의 드라마가 방영됐음을 알 수 있다. MBN, TV조선 OCN 등 종편과 케이블 드라마 수를 합치면 훨씬 더 많은 드라마가 방영됐다. 

그러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올 한 해 방영된 수 십편의 작품들 중 단 ‘7작품’(JTBC ’SKY 캐슬‘, MBC ’나쁜 형사‘, KBS2TV ’동네변호사 조들호2- 죄와 벌‘, SBS ’황후의 품격‘, TV조선 ’바벨‘, OCN ’빙의‘, SBS ’열혈사제‘)에 대해서만 지나친 폭력성 및 선정성의 이유로 제재를 가했다. 극히 일부 드라마만이 제재를 당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단순 제재 받은 작품수가 적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7작품 중 ‘5작품’에 대해 행정지도에 해당하는 ‘권고’ 처분을 내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관계자는 <시사위크>와의 통화에서 “‘권고’는 방송사 벌점이 주어지지 않으며, 위반사항이 있으니 다음에 실수가 없도록 되새겨 주는 수준의 처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뿐 만이 아니다.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사후규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KBS2TV ‘동네변호사 조들호2- 죄와벌’은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여성이 교통사고 장면을 적나라하게 담은 장면을 1월에 방영했다. 그리고 해당 장면은 3월 행정처분 ‘권고’ 판정을 받았다. OCN ‘손 the guset’의 경우 지난해 11월 방송이 종영된 것에 반해, 올해 1월 ‘권고 및 등급조정 요구’ 판정을 받았다. 최소 방송된 지 두 달이 지나야 심의의결현황을 알 수 있는 셈이다.

실효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 뉴시스
실효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 뉴시스

이와 관련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드라마는 사후규제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를 제외하곤 사후규제가 이뤄지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 침해 부분과 나아가 검열의 이미지로 비춰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방송이 끝나고 규제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절로 떠오른다. 자극적, 폭력적인 장면이 이미 시청자들에게 모두 노출된 후 ‘옐로카드(경고)’에 그치는 제재가 과연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드라마 흐름에 어떤 효과를 불러올 지 의심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스템에 대한 실효성 지적과도 맥이 닿아있다.

물론 모든 TV 드라마가 교육프로그램처럼 건전하고 교육적인 내용만을 담을 수는 없다. 다양한 플랫폼의 발달로 콘텐츠의 질적 향상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만큼 드라마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요소다. 또한 이러한 표현의 자유 때문에 시청자들이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15세 이상 시청가’라고 매겨진 등급기호를 보고 안도의 마음으로 드라마를 접하던 시청자들은 선정적, 폭력적 장면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1~2분 사이에 갑자기 안방극장을 급습하는 선정적·폭력적인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마음의 준비시간을 주진 않는다. 부모마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상황에서 ‘보호자 시청지도’는 현실성이 다소 떨어진다. “아이와 함께 텔레비전을 보기 무섭다”는 부모들의 아우성이 터지는 이유기도 하다.

‘드라마 자극성’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 토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불거지는 실효성 문제에 대한 의문을 배가시키는 대목이다. 드라마 표현의 자유만큼이나 시청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제재의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