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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웬만해선 ‘배종옥’을 막을 수 없다
2020. 06. 11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종옥이 영화 ‘결백’(감독 박상현)으로 다시 한 번 연기 변신을 선보였다. /키다리이엔티
배종옥이 영화 ‘결백’(감독 박상현)으로 다시 한 번 연기 변신을 선보였다. /키다리이엔티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연기할 때 가장 나 같고, 가장 살아있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더 갈증이 난다.”

드라마와 영화, 연극무대까지 종횡무진 활약 중이지만, 새로운 작품 앞에 서면 늘 설렌단다. 연기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중의 신뢰를 받고 있는 연기파 배우지만, 더 잘하고 싶고 뻔하지 않은 연기를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한단다. 연기 인생 36년 차 관록의 배우 배종옥은 여전히 지치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가 또다시 변신을 택한 이유도 연기를 향한 식지 않은 열정 때문이다. 1985년 KBS 특채 연기자로 데뷔한 뒤 장르와 캐릭터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연기 행보를 선보여 온 배종옥은 영화 ‘결백’(감독 박상현)을 통해 다시 한 번 강렬한 변신을 선보여 이목을 끈다.

‘결백’은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막걸리 농약 살인사건, 기억을 잃은 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엄마 화자(배종옥 분)의 결백을 밝히려는 변호사 정인(신혜선 분)이 추사장(허준호 분)과 마을 사람들이 숨기려 한 추악한 진실을 파헤쳐 가는 무죄 입증 추적극이다.

지난 10일 개봉한 ‘결백’은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워 차별화된 재미를 주면서도, 쫄깃한 긴장감을 자아내 호평을 얻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극에 무게를 더한 배종옥이 있다. 함께 호흡을 맞춘 허준호가 “다시 한 번 팬이 됐다”며 극찬을 보냈을 정도.

극 중 배종옥은 기억을 잃은 채 살인 용의자로 몰린 화자를 연기했다. 치매에 걸린 60대 노인 역을 위해 특수 분장을 감행하는 등 파격적인 외적 변신은 물론, 기억을 잃은 혼란스러운 인물의 내면과 가슴 절절한 모성애 연기로 묵직한 울림을 선사했다.

여전히 식지 않은 열정의 소유자 배종옥. /키다리이엔티
여전히 식지 않은 열정의 소유자 배종옥. /키다리이엔티

성공적 변신을 이뤄낸 배종옥은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나 “연기에 대한 갈증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며 남다른 열정을 드러냈다. 

- 60대 치매 노인 역에 도전했다. 어땠나.
“분장이 힘들었다. 노역 분장을 할 때마다 2~3시간씩 걸렸다. 상당히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다. 분장 동안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채화자의 이미지를 고민하고 상상하고 더 익혀나갔던 것 같다. 치매 설정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본 소재이지 않나. 드라마 ‘원더풀 마마’(2013)에서 치매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화자는 급성치매였다. 치매 연기에 대한 부담보다, 감정의 연결적인 부분이 어려웠다. 현실에 있다가 과거로 갔다가 정신을 잃었다가 연결선상에 있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다.”

-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촬영 당시 연극도 같이 하고 있어서 힘들었다. 왔다 갔다 하는데 병날 뻔했다. 영화 중후반부터는 공연이 없으면 촬영이 없어도 (촬영지 근처) 호텔에서 있었다. 빗속 촬영이 정말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신을 끝냈다는 게 다행이다 싶을 정도다. 그때 엄청 추웠다. 비가 내리면 바로 얼 정도였는데, 영화에는 짧게 담겼지만, 몇 번을 찍었다. 정말 힘들었던 장면 중 하나다.”

- 딸 역할을 맡은 신혜선과 현장에서 일부러 거리를 뒀다고.
“준비해 온 대로 하면 하겠지만, 나는 사전 연기라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현실에서 친하게 지내다가 낯선 모녀 관계를 연기한다는 게 그렇더라. 그래서 (신혜선에게) 분장한 모습도 안 보여주려고 했고, 현장에서도 별로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오래 하다 보면 웬만한 건 연기가 다 되지 않나. 그런데 웬만한 연기가 사람들이 과연 감동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든다. 웬만하지 않게 하려면 그 상황에 완전히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낯설다는 감정을 연기할 땐 정말 낯설게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잘 안될 수도 있지만, 만들 수만 있다면 그런 장치를 해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가능하면 그렇게 가고 싶은 거다.”

- 여성 캐릭터가 이끌어가는 추적극이라는 점도 색다르다.
“맞다. ‘결백’을 통해 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와서 여성 캐릭터들이 더 발전하면 좋겠다. 최근 여성 감독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나. 앞으로 여성 캐릭터도 많아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동안 여성감독들이 별로 없었고, 있었다고 해도 남성감독들한테 밀려서 작품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작품도 많고 심지어 좋더라. 이제 여배우들의 시대가 오겠구나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결백’에서 치매 노인으로 분한 배종옥 스틸컷. /키다리이엔티
‘결백’에서 치매 노인으로 분한 배종옥 스틸컷. /키다리이엔티

- ‘결백’을 통해 연기 변신에 대한 갈증이 해소됐나.
“그 갈증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 같다. 배우는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 끊임없이 있다. 어렸을 때는 선생님들이 계속 작품을 하는 걸 보면서 쉬었다 하고 쉬었다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그 나이가 되니 앞으로 연기를 얼마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더 갈증이 나고 욕심이 생기더라. 그래서 멈춰지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누구한테 조언을 한다는 건 쓸데없는 일인 거다.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 하는 조언은 조언이 아니다.”

- 드라마나 영화, 무대 연기도 번갈아가면서 하고 있는데, 시너지가 있을 것 같다.
“당연히 있다. 무대 연기는 무대를 전부 아울러야 한다. 자신이 갖고 있는 에너지로 무대 전체를 감싸야 하기 때문에 연기가 확장이 된다. 그런 확장성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카메라 앞에서 줄인다는 건 쉽다. 그런데 작은 연기를 확장시킨다는 건 굉장히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후배들에게도 연기를 계속하고 싶으면 연극을 하라고 권한다. 내가 연극을 통해 많은 걸 배웠기 때문에 확장된 연기를 할 수 있다면 작은 연기는 얼마든 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거다.

무대는 두 시간씩 통으로 극이 흘러가고, 흘러가는 과정에서 내가 틀려도 더 잘해도 꾸준하게 끝까지 가야 하는 지구력이 필요하고, 이끌어가기 위한 담대함도 필요하다. 그런데 드라마 같은 경우는 장면마다 잘라서 연기를 한다. 계속 NG 내면서 하나씩 붙여 나가는 것에 익숙한 배우들에게 감정을 물 흐르듯 가져갈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하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그러한 공부의 한 방법이 연극이라고 얘기하고 싶은 거다.” 

배종옥이 연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키다리이엔티 ​
배종옥이 연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키다리이엔티 ​

- 작품을 선택할 때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나.
“내가 재밌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재밌게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은가. 뭘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잘 모르겠지만, 그 당시에 내가 재미를 느끼는 것들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취향도 달라지지 않나. 20~30대 때는 진지한 것들이 좋았다. 30대 후반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2002)를 했는데, 내가 더 재밌게 하지 못한 게 아직도 아쉽다.

그땐 진지하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추구했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시기였다. 요즘은 그게 아니라는 것은 아니지만, 코미디 장르가 하고 싶더라. 무겁기만 한 것보다 가벼우면서도 진지한 작품들이 있지 않나. 계속 생각하게 하고 머릿속에 그림들이 남아있는 그런 작품을 하고 싶다. 허준호와 로맨틱 코미디를 해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웃음)”

- 여전히 연기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는데, 어떨 때 성취감을 느끼나.
“연기할 때 가장 살아있는 것 같다. 연기할 때 가장 나 같고, 연기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고, 더 갈증이 나고 그렇다. 연극 ‘꽃의 비밀’을 본 관객들이 너무 재밌다고 하고, 좋은 작품이었다고 얘기해 주면 배우로서 성취감을 느낀다. ‘결백’ 간담회에서 허준호가 해준 말도 정말 좋았다. 내가 열심히 살았구나 싶더라. 다행이었다. 동료 배우에게 들으니 다른 의미로 들리긴 했다.”

- 연기의 매력은 무엇인가.
“어떤 때는 잘 되고, 어떨 때는 죽어라 해도 안 된다. 안 되는 걸 이루고 싶어 하는 욕구와 갈망이 겹쳐있고, 또 정말 안 되던 감정들을 발견하고 표현하면서 성취감도 느낀다. 그런 것 때문에 연기를 놓지 못하는 것 같다. 마냥 잘 됐으면 안 하고 다른 거 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죽어도 안 되는 거, 안될 것 같은 것들을 하나씩 넘으면서 재미를 붙였던 것 같다. 그래서 늘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열망이 있다.”

-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그 인물을 이해하고 있느냐. 배우가 캐릭터를 잘 이해할수록 좋은 인물을 만든다. 이해하지 못할수록 캐릭터가 붕붕 뜬다. 캐릭터를 잘 이해한다는 건 땅에 발을 굳건히 디뎠다는 것과 같다. 이 말에 흔들리고, 저 말에 흔들리면 캐릭터가 왔다 갔다 한다. 연기를 잘 하려면 인물을 이해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