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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이정재의 도전은 계속된다
2020. 07. 31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우 이정재가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감독 홍원찬)로 돌아왔다. /CJ엔터테인먼트
배우 이정재가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감독 홍원찬)로 돌아왔다. /CJ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이정재는 연기 인생 27년 동안 끊임없이 변주해왔다. 더 새로운 이야기, 더 다른 캐릭터로 변화에 변화를 거듭하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감독 홍원찬)도 새롭다. 특유의 카리스마에 독특한 스타일을 더해 지금껏 본 적 없는 강렬한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그의 변신엔 끝이 없다.

오는 8월 5일 개봉하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는 마지막 청부살인 미션 때문에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인남(황정민 분)과 그를 쫓는 무자비한 추격자 레이(이정재 분)의 처절한 추격과 사투를 그린 하드보일드 추격액션이다. 2015년 장편 연출 데뷔작 ‘오피스’로 칸 국제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공식되며 연출력을 인정받은 홍원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정재는 한 번 정한 타깃은 놓치지 않는 추격자 레이를 연기했다. ‘인간 백정’이라고 불릴 정도로 무자비한 암살자 레이는 이정재를 만나 지금껏 보지 못한 신선한 캐릭터로 탄생했다. 목과 쇄골을 덮는 타투부터 직접 아이디어를 낸 다채로운 의상으로 참신하고 독특한 레이의 외형을 완성했을 뿐 아니라, 섬뜩한 눈빛과 카리스마, 특유의 거친 목소리를 더해 또 하나의 ‘인생 악인’을 만들어냈다.

액션도 흠잡을 데 없다. 총기부터 칼 액션, 실제 타격이 오고 가는 맨몸 액션까지 강도 높은 액션 장면을 대역 없이 모두 소화하며 영화의 리얼함을 살렸다. 촬영 중 어깨 파열 부상을 입었음에도, 밤낮없이 액션 연습에 매진하는 등 완성도 높은 액션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열정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황정민도 “이 정도로 집요하게 분석하는 연기자는 처음”이라고 했을 정도로, 이정재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지난 30일 만난 이정재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그가 레이 그리고 영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과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었다. 최고의 자리에 올라있지만, 여전히 겸손하고 한결같이 성실한 충무로 대표 배우 이정재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레이를 연기한 이정재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레이를 연기한 이정재 스틸컷. /CJ엔터테인먼트

-레이가 무자비한 인물이지만, ‘다크 섹시’의 끝을 보여주기도 한 것 같다. 시나리오 자체 설정이었나.
“이정재의 욕심이었다. 하하. 다른 면도 보여드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어떻게 하면 다른 면을 보여드릴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섹시한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건 아니었다. 영화상에서 꽤 중요한 인물이고, 내용상에서도 꽤 중요한 파트를 해내야만 하는 캐릭터라서, 맹목적으로만 쫓아가기만 한다면 중반 이후엔 지루해 보이지 않을까 생각에 캐릭터를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켜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 자체에서 레이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오롯이 연기나 레이의 비주얼을 통해서만 표현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 안에서 뭔가를 더 찾아내려고 했었다.”

-레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은데.
“모든 배우가 잘 연기하려면, 그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있어야 한다. (레이에 대해) 조금 더 표현했으면 좋겠다고 (감독에게) 요구를 많이 했다. 대사를 더 만들거나, 아니면 조금 더 이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있어 용이하게끔 대사 수정도 요구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오히려 설명을 안 하고 관객들이 상상으로 이해하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됐다.

이 사람이 왜 저렇게까지 맹목적으로 쫓아가야만 하는가에 대해 대사나 어떤 상황에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레이를 딱 보는 순간 ‘아, 쟤는 왠지 저럴 것 같아’라는 생각과 이유가 그냥 그 모습에서 벌써 다 해결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레이의 룩(스타일)이나 표정, 표현을 통해 느낌적으로 설명을 한 번 해보자 싶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방식이었다.”  

남다른 노력으로 강렬한 캐릭터를 완성한 이정재. /CJ엔터테인먼트
남다른 노력으로 강렬한 캐릭터를 완성한 이정재. /CJ엔터테인먼트

-시나리오 상에 레이의 스타일이 어느 정도 구현이 돼있었나. 
“전혀 아니었다. 레이의 룩은 아마 (제작진 중) 단 한 분도 그렇게 상상했던 분이 없었을 거다. 일차적으로 내 개인 스타일리스트와 상의를 해서 스타일을 잡았다. 첫 미팅 때 영화팀에서 제시한 레이의 외형을 봤고, 그다음에 내가 생각한 레이의 룩을 보여줬다. (제작진이) 조금 당황해했다. 제작진이 준비한 건 더 다크 했다. 군중 안에 있으면 식별이 되지 않는 킬러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내가 처음으로 보여준 레이의 모습은 핑크색 머리에 흰 부츠, 주황색 반바지였으니 많이 놀라더라.(웃음)

내가 해봤던 역할들 중 가장 독특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어디까지 밀어붙여야 하나 고민이 됐다. 그러면 내가 최대한 과하게 할 수 있는 게 어디인지 먼저 테스트를 해봤다. 거기서부터 조금씩 내려왔던 것 같다. 첫 미팅 때 스태프들이 당황스러웠을 수밖에 없는 게 가장 센 이미지부터 보여줬기 때문일 거다. 현장에서도 내가 갑자기 호피무늬 셔츠에 흰 바지를 입고 나가니 과하지 않을까 놀라다가도, 본 촬영에 들어가고 그 장소에 서있으면 이상하게 어울린다고 하더라. 분명히 과한데 이상하게 어울린다는 말을 현장에서 제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레이를 표현하는데) 효과적이지 않았나 싶다.” 

-아이스커피를 들고 다니는 등 디테일한 설정도 눈길을 끌었는데.
“액션이 끝난 후 표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얼음을 씹어 먹는다던가, 아이스커피를 항상 들고 다니면서 마신다던가. 너무 무겁게 가는 것보다 조금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 다른 게 이상한 느낌을 줬으면 했다. 독특하고 묘한 캐릭터로 보이고 싶었다. (아이스커피 설정은) 사람을 죽이러 왔지만,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여줘야 했는데 걸음걸이나 표정으로만 해결이 될까 싶었다. 걸음걸이를 이상하게 하면 과도한 액션이 되고, 표정이 이상하면 과한 연기가 되지 않나. 일상처럼 들어오는데 뭔가 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보니 아이스커피 하나 들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었다.”

-레이와 이 작품이 배우의 상상력을 많이 자극했나 보다.
“맞다. 레이는 딱 봤을 때 이유가 없어도 그냥 막 갈 것 같았고, 그런 이미지를 보여드리려고 하다 보니 상상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상상했던 것들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이 제일 적합한지를 또 선택해야 하는 지점들 이런 것들이 많이 고민됐다. 그런데 그것보다, 그냥 가만히 있었을 때 레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상한 표정이나 느낌을 찾는 게 중요했다. 생각했던 느낌이라는 것이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하기 때문에 항상 그 느낌을 유지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촬영할 때 그 당시에 딱 나와 줘야 하는데… 그런 것을 유지하는 게 제일 중요했다.”

-그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했나.
“현장에서 캐릭터의 감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철저히 나 혼자만 있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인 것 같다. 그렇다 보니 같이 일을 하는 동료들과의 대화도 일적인 것 외에는 잘 못하게 된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정말 사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게 거의 없다. 그런 부분이 아쉽긴 하다. 하지만 좋은 결과물을 뽑아내기 위해서, 표현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캐릭터에만 집중을 해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이정재가 황정민과 7년 만에 재회한 소감을 전했다. /CJ엔터테인먼트​
이정재가 황정민과 7년 만에 재회한 소감을 전했다. /CJ엔터테인먼트​

-황정민과 ‘신세계’(2013) 이후 재회했는데, ‘신세계’ 때 워낙 좋은 반응을 얻어서 부담도 됐을 것 같다.
“‘신세계’ 때 즐겁고 재밌게 촬영을 해서, 항상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사실 (같은 배우와) 두 번씩 세 번씩 함께 (촬영을) 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다. 7년 만에 (황)정민 형과 함께 하게 돼서 너무 즐거운 마음이었다. (‘신세계’를) 의식을 안 할 수는 없는데, ‘신세계’와 상당한 차이점이 있는 캐릭터였다. 어쩌면 역할을 바꾼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지점들도 있었다. 캐릭터 색깔이 워낙 다르다 보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됐지만, 그래도 혹시 내가 비슷한 표현을 다시 한 것 같은 느낌이 들것인가 대한 체크는 끊임없이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새로운 시도와 도전적인 캐릭터와 작품을 선보인다는 느낌이 드는데.
“개인적인 욕심인 것 같다. 관객들에게 조금이라도 새로운 걸 보여드리고 싶다는 고민을 많이 한다. 또 그런 것이 배우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사실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오래 하다 보니 내 안에 있는 건 거의 다 꺼내 쓴 것 같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아이디어도 거의 다 쓴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런데 또 좋은 출연 제안을 받다보면 또 다른 걸 보여드리고 싶은 욕망은 있으니 박박 긁어서 쓰던지, 스태프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평상시 내가 즐겨 입는 옷이나 스타일 안에서는 잘 소화하고 잘 어울리는데 나하고 정말 맞지 않은 옷을 선물 받을 때가 있지 않나. 앞으로 들어오는 옷을 내가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지금 맡은 캐릭터를 잘 해낼 수 있을까, 내가 예전에 했던 걸 다시 써먹는 건 아닌가, 도저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데 예전에 했던 것을 조금 변형해서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등 많은 생각들이 든다. 새롭게 하고 싶은 욕구는 아주 큰데, 이정재라는 사람을 너무 많이 보여드렸기 때문에 더 다른 것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채워 넣는 것도 필요하겠다. 어떤 방법으로 에너지를 채우나.
“여러 방법이 있는데, 우선 운동을 많이 한다. 나 스스로 힘이 좀 생기고 건강해진 거 같으면 조금 더 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웨이트도 하고 걷기도 한다. 걷기도 오래 했는데, 산책하면서 오는 정서적인 치유도 있다. 또 황정민이나 박정민이 연기하는 것을 보면 자극이 된다. 그 자극이 또 채워질 수 있는 거다.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 무엇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항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