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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사태 후폭풍②] 진실 잃은 사회, 불신만 자란다
2015. 06. 05 by 권정두 기자 swgwon14@hanmail.net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대한민국을 공포와 혼란에 빠뜨린 메르스 바이러스. 그 시작은 지난달 20일이었다. 첫 번째 확진자가 발견된데 이어 그 배우자도 메르스에 감염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튿날엔 이들과 같은 병원, 같은 병실을 사용했던 70대 노인이 3번째 메르스 확진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때만 해도 메르스는 공포보단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지난달 26일 이후 메르스 감염자는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난 1일엔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5일 오전 기준 확진자는 41명, 사망자는 4명에 달한다.

▲ 대한민국은 지금 메르스 바이러스 공포에 빠져있다.
◇ 난무하는 루머… 원인제공은 ‘정부’

사회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감염 경로, 감염 장소, 예방법 등에 관심이 집중됐지만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 “걱정 말라”던 정부의 말과 달리 확진자와 사망자는 계속해서 발생했다.

특히 확진자들이 모두 병원에서 감염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어느 병원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정부는 병원 공개를 거부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정부에 직격탄을 날리고 나서야 평택성모병원 한 곳만 이름을 공개했을 뿐이다. 정부는 이 병원을 방문한 사람들의 신고를 당부했지만, 너무 늦었다는 지적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루머만 난무했다. 확인되지 않은 병원 명단이 SNS와 인터넷 상에 떠돌았고, 특정 병원이 폐쇄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확진자를 둘러싼 루머도 끝없이 확대재생산 됐다.

뿐만 아니다. 감염 경로와 예방법에 대한 ‘설’도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우선 대중교통과 길거리에선 마스크를 쓴 사람이 급속도로 늘어났다. 공기 중 감염 여부를 놓고 엇갈린 소문들이 퍼졌고, ‘최대한 감염 경로를 차단하자’고 생각한 시민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에서는 메르스 바이러스 차단에 효과적인 특수 마스크가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마스크가 품절 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코에 바세린을 바르면 된다’, ‘양파가 메르스 바이러스를 흡수한다’ 등 다소 황당한 예방법도 빠르게 확산됐다. 손 씻기, 기침 에티켓 지키기 등 도움이 될만한 내용도 있었지만, 근거 없는 낭설도 적지 않았다.

이 와중에 보건복지부는 ‘낙타와의 접촉을 피하라’, ‘익지 않은 낙타고기를 섭취하지 말라’ 등의 내용이 포함된 예방법을 배포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처럼 루머가 퍼지는 사이 늘어나는 것은 시민들의 불안감뿐이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많았고, 다소 자극적인 내용도 있었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시민이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녀를 둔 부모들의 걱정이 컸고, 확진자 발생 지역 주민들도 극심한 불안에 시달려야했다.

정부는 악성 루머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루머의 발생 원인은 다름아닌 정부에 있었다. 정부가 ‘진실’을 숨기는 사이 그 빈 공간을 루머가 채운 것이다. 애초에 정부가 시민들이 갈구하는 정보를 확실하게 공지했다면, 루머 역시 자취를 감췄을 가능성이 높다. 루머는 결국 불안감을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 메르스 사태는 바이러스 뿐 아니라 불신까지 퍼뜨리고 있다.
◇ 기침하면 모세의 기적? 비극적인 ‘불신’

“버스에서 기침을 했더니 모든 사람들이 쳐다보더라.”

“지하철에서 기침 했다가 모세의 기적을 봤다.”

최근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널리 퍼진 이야기다. 실제로 시민들이 느끼는 ‘불안’의 대상은 또 다른 불특정 시민이 되고 있다. 3차 감염은 없을 것이라던 정부의 말과 달리 3차 감염 확진자가 속속 발견됐고, 이들 중에 사망자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의심환자에 대한 부실 관리도 시민들 사이의 불신을 키우고 있다. 메르스 발생 초기에는 환자와 직접 접촉한 고위험 의심환자가 중국과 홍콩으로 출국해 물의를 빚었다. 최근엔 격리대상자였던 한 50대 여성이 지방에서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기도 했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윤용현(29) 씨는 “혹시 모른다는 마음에 출퇴근길에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며 “아무래도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3살 아이를 둔 경기도 일산의 한 주부는 “아직 일산에서 메르스 의심환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못 들었지만, 불안한 마음에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불신은 당장 생활경제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외식 등 외부활동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지난 4일 저녁, 서울 강서구의 한 한 치킨프랜차이즈 매장은 손님이 고작 두 테이블뿐이었다. 좋은 입지조건으로 평소 10테이블 이상은 기본으로 찼던 곳이었지만, 요즘엔 사정이 다르다. 이 매장 업주는 “6월 들어 매장 손님이 뚝 떨어졌다. 반면 배달은 조금 늘어난 편이다. 메르스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메르스가 퍼뜨리고 있는 것은 바이러스만이 아니다. 어쩌면 그보다 심각한 ‘불신’이 우리 사회를 빠르게 장악하고 있다. 정부가 더 이상 메르스 사태를 방치해서는 안되는 이유이자, 한시라도 빨리 대책마련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