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정두 기자] 늘 그렇듯 다사다난하고 아쉬움 가득한 한해가 저물고 있다. 2015년 우리 경제계는 위기로 시작해 위기로 끝나는, ‘위기의 긴 터널’에 머물렀다. 특히 조선, 철강, 자동차 업계는 거센 파도에 맞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는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에 <시사위크>에서는 조선·철강·자동차 업계의 2015년을 핵심 키워드로 정리하고, 다가올 2016년을 전망하는 기획을 준비했다. 오늘은 마지막인 세 번째, 철강업계다.

 

▲ 2015년 철강업계를 정리한다. <사진=뉴시스>

◇ 몇 사람에 의해 놀아난 국민의 기업 - Gate: 게이트
 

*‘게이트’란 말의 유래는 닉슨 대통령을 사임하게 만든 19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당시 도청사건이 벌어진 곳이 워터게이트 빌딩이었다. 이후 ‘게이트’란 말은 정부 또는 정치권과 관련된 비리 또는 의혹 사건을 의미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민영화가 이뤄진지 오래지만, 포스코엔 여전히 ‘국민 기업’이란 말이 붙는다. 그도 그럴 것이 포스코는 일제강점에 따른 보상금, 즉 민족의 고통과 눈물을 기반으로 설립됐다. 이후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경제발전에 든든한 뿌리 역할을 해온 포스코는 국민들이 사랑하고 자부심을 갖는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포스코는 올해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겼다. 검은 비리로 얼룩져 연일 뉴스와 신문에 오른 것이다. 지난해부터 스멀스멀 피어올랐던 포스코발 악취는 검찰 수사를 통해 일정 부분 모습을 드러냈다. 전 회장부터 임원 및 직원까지, 비리의 형태도 다양했다. MB정권이 선택한 정준양 전 회장은 포스코를 사유화한 채 각종 전횡을 벌였다. 포스코건설 임원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서도 협력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았다. 도덕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이다.

거의 1년 내내 이어진 포스코 비리 수사는 애초의 기세와 달리 다소 찜찜하게 마침표를 찍었다. ‘부패 척결’을 외친 이완구 전 총리의 등장과 함께 포스코 비리 수사도 본격화되기 시작했지만, 이내 그가 낙마하면서 힘이 빠지고 말았다. 이후 핵심 인물에 대한 구속도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정준양 전 회장과 MB정권에서 ‘만사형통’으로 통한 이상득 전 의원이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지만, 이들마저 몸통인지 꼬리인지 확실치 않다.

특히 국민들은 다른 기업도 아닌 포스코에서 불거진 비리에 더 크게 분노했다. 세계적인 경제 침체 속에 위기 극복을 위해 앞장서야 했을 포스코가 정작 ‘딴 짓’에 분주했던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번 비리는 전형적인 정권유착형 비리였다. 이는 민영화됐지만 주인은 없는 포스코의 해묵은 숙제기도 하다.

수사가 장기화되는 사이 권오준 회장 체제의 포스코는 잃어버린 세월을 만회하기 위해 ‘사즉생’을 외치며 분주히 움직였다. 결국 국민 기업이자 철강업계 맏형인 포스코의 2015년은 안팎으로 어수선할 수밖에 없었다.

 

▲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왼쪽)과 이상득 전 의원.

◇ 냉정한 시장논리 - Over-supply: 공급과잉

 

철강업계는 현재 위기에 놓여있다. 국내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위기다. 원인은 간단하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맞지 않고 있다. 시장경제 논리에 따라 ‘공급’ 쪽인 철강회사들의 고민이 깊은 상황이다.

이러한 공급과잉의 주범은 중국이다. 매서웠던 중국의 성장세가 다소 주춤하면서 수요는 줄었고, 중국 철강업계들의 생산확대에 따라 공급은 늘었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까운 우리나라는 중국발 악재에 직격탄을 날렸다. 국내 건설경기가 활성화되면서 한숨을 돌리기도 했지만, 여전히 위기의 복판에 놓여있다.

전망도 밝지 않다. 기본적으로 철강이 쓰이는 업종의 불황이 지속될 전망이다. 중국산 저가 제품에 따른 부담도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더 나빠질 것이 없다는 점 정도가 그나마 위안거리다.

◇ 위기는 기회다 - Development: 발전

상황은 좋지 않지만, 난관은 극복해야 한다. 화려했던 시절은 잠시 묻어두고,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그것이 곧 발전이다.

국내 철강업계는 이미 위기 극복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먼저 어수선한 한 해를 보낸 포스코는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을 개선 중이다. 2017년까지 절반가량의 계열사를 정리한다는 계획 하에 속도를 내고 있다. 나무가 잘 자라기 위해 꼭 필요한 가지치기와 같다. 또한 정준양 전 회장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문어발식 확장을 지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포스코의 아성에 맞서는 현대제철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몸집을 줄이는 포스코와 달리 올해 현대하이스코를 흡수합병 했다. ‘쇳물에서 자동차까지’라는 숙원이 현실로 이뤄진 가운데, 현대제철의 입지는 더욱 중요해졌다. 특히 현대차가 야심차게 런칭한 고급화 브랜드 제네시스가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현대제철 역시 상당한 효과를 볼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포스코와 현대제철의 행보는 조금 다르지만 지향점은 같다. 모두 고부가제품 비중 확대 및 해외판로 확보를 추구하고 있다. 현대제철의 현대하이스코 합병, 포스코의 아르셀로미탈 협력 추진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타난 행보다.

중소업체 역시 제각기 활로를 찾아야한다. 동국제강의 경우 포스코처럼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 개선을 도모 중이다. 지난해 실시한 포스코특수강 인수가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세아그룹은 현대제철과의 경쟁구도 속에 역시 해외에 힘을 주고 있다. 그밖에 중소업체들 또한 구조조정과 사업개편 등의 조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분명히 위기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이기도 하다. 위기를 발전의 계기로 삼는다면 철강업계는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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