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규제 강화로 대포통장 발생 건수가 2015년부터 감소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경찰이 대포통장 유통 일당의 범죄 증거물품을 확보한 사진.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금융당국이 이른바 ‘대포통장과의 전쟁’에 나선지 어느덧 5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각종 금융사기 범죄의 핵심 수단으로 활용돼온 대포통장을 근절하고자 당국은 2012년부터 본격적인 칼을 빼들었다. 그해 종합근절대책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매해 다양한 대책을 쏟아냈다. 실제 효과는 있었을까.

◇ 대포통장 발생 건수·보이스피싱 피해액 ↓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융사기에 악용된 대포통장 건수는 △2012년 3만3,777건 △2013년 3만8,930건 △2014년 7만3,534건 △2015년 5만7,209건 △2016년 4만6,351건으로 나타났다. 2012년 근절대책이 발표된 후 가시적인 효과를 보이지 않고 증가세를 보이다가 2015년부터 감소세로 돌아섰다.

올 상반기에도 대포통장 발생 건수는 2만981건으로, 전년대비 2.6% 줄었다. 2015년부터 신규 통장 개설 절차 심사와 모니터링이 대폭 강화되면서 증가세가 꺾인 것으로 풀이됐다.

대포통장 발생건수가 감소하면서 보이스 피싱 범죄 건수와 피해액도 둔화세를 나타냈다. 금융당국은 범죄 수익금 통로인 대포통장 유통이 위축되면서 금융범죄가 다소 둔화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금감원에 접수된 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 건수는 4만5,921건으로, 전년대비(5만7,695) 대비 20.4% 줄었다. 같은 기간 피해액은 1,924억원으로 2015년(2,444억)보다 21.2% 감소했다. 다만 월평균 피해액도 올 상반기에는 상승세로 돌아섰다.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올해 상반기 173억원으로 전년대비 8.1% 증가했다.

이처럼 대포통장과 보이스피싱 범죄 건수가 둔화세로 돌아섰지만 안심한 수준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범죄 수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는 있는데다 신종범죄까지 등장해서다.

2012년부터 최근 5년간 대포통장 발생건수 추이. <시사위크>

◇ 유령 법인 설립ㆍ채용 빙자 사기수법 ‘성행’ 

통장 개설을 위한 절차가 까다로워지자 이를 회피하기 위한 꼼수도 성행하고 있다. ‘유령 법인 설립’도 대표적인 수법 중에 하나다. 지난 6월 검찰은 취업준비생 등의 명의로 유령법인을 설립한 뒤 수십 개의 대포통장을 양산한 사기 일당을 대거 적발했다. 이들은 통장 발급을 위한 서류를 마련하기 위해 청년들을 꾀어내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채용 빙자 대포통장 사기도 등장했다. 취업이 절박한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준다고 접근해 계좌정보를 빼내는 수법인데, 대포통장 규제가 강화되면서 명의이전자 모집이 쉽지 않아지자 활개를 치고 있다. 이들은 채용아웃소싱이나 채용공고대행 업체를 사칭한 뒤 “급여계좌 개설과 출입증 발급을 위해 통장과 체크카드를 필요하다”며 정보를 빼내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온라인커뮤니티에는 이 같은 사기를 당해 졸지에 대포통장 범죄에 연루됐다는 피해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심지어 사기범에 속아 통장 양도 후 피해자의 신고로 계좌가 지급 정지되자, 지급정지를 해제시켜주겠다며 돈까지 편취하는 악질적인 신종 사례도 나타났다.

대포통장 대용으로 비트코인을 이용한 신종 범죄도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측은 “대포통장 개설이 어려워지자 사기범들이 비트코인 거래소 계좌로 돈을 보내도록 하고 이를 현금화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감독 당국의 규제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곳으로 대포통장의 수요가 몰리는 풍선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 은행권과 상호금융권역의 올 상반기 대포통장 월평균 발생 건수는 전년대비 각각 12.7%, 13.1%씩 줄어들었지만 제2금융권 중 새마을금고는 7.1%, 우체국은 10.9%씩 대포통장 개설 건수가 늘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규제 강화로 대포통장 발생 건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금융사기 수법도 그에 맞춰 진화하고 있어 여전히 감시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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