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십년 간 소득분배는 계속 악화돼왔다. 소득 상위 1%가 전 세계 부의 20%를 차지하고 있다. <픽사베이>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수출기업과 금융회사가 연일 높은 실적을 기록하는 한편, 한국사회의 소득분배가 개선됐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의회에서는 얼마 전까지 내년도 세법개정안을 둘러싸고 소득세·법인세 인하 문제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수면 위로 부상한 소득불평등 문제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인구가 그만큼 많아졌음을 방증한다.

◇ 소득 상위 1%가 전체 부의 20%를 차지

세계불평등연구소는 지난 14일(현지시각) 발표한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서 “최근 수십 년간 지구상의 거의 모든 곳에서 불평등이 심화됐다”고 밝혔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약 20%의 부를 소득 상위 1%가 차지하며, 이는 하위 50%보다 두 배 많다. 미국 내에서는 상위 1%가 39%의 부를 차지한다.

소득 상위 10%가 국가 내에서 얼마만큼의 부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기준으로 측정한 지역별 소득불평등 순위에서 중앙아시아(61%)가 1위를 차지했으며 인도와 브라질이 55%로 그 뒤를 이었다. 미국·캐나다(47%)에서는 1980년경을 기점으로 뚜렷한 소득 집중화 현상이 나타났다. 러시아는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1991~2년을 기점으로 소득불평등이 급속도로 진행됐으며 인도(55%)와 중국(41%)은 2000년대에 들어서야 이와 같은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반면 유럽은 가장 느린 속도로 소득불평등이 확산된 지역이었다. 1980년 당시 이미 33% 가량의 소득불평도가 나타나던 유럽 지역은 2016년에도 37% 수준을 유지했다. 보다 확실한 예로, 1980년 당시 서유럽과 미국은 모두 소득 상위 1%가 전체 부의 10%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제 동 비율은 12%와 20%로 크게 차이난다.

보고서는 소득불평등의 빠른 확산은 자본의 불균등한 소유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세계대전 후 인기를 모았던 평등주의 가치들이 쇠락하고 경제성장 논리가 우선시되면서 불평등이 확산됐다는 논리다. 대처주의와 레이거노믹스 등 1980년대에 불었던 신자유주의의 바람은 사회보장제도와 공공교육, 노동정책을 중시하는 정당들을 정부청사에서 몰아냈다. 90년대 초 개혁·개방정책을 폈던 러시아의 경우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거대기업을 다수 보유한 ‘올리가르히’가 탄생했다.

◇ 감세냐 사회복지냐… 정부재정이 변수

미국 의회는 오는 19일(현지시각)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법안을 표결한다. 법인세·소득세 최고세율 인하와 건강보험가입 의무조항의 폐지 등이 새 세제개혁안의 골자다. 물론 기업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주 목적이다. 프랑스의 엠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또한 법인세의 점진적 인하와 복지예산의 경감을 두고 의회와 씨름하고 있다.

세계불평등연구소는 이번 보고서에서 세금 감면을 교육 불평등과 함께 미국의 소득불평등이 심화된 양대 원인으로 제시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1986년 세제개혁을 통해 당시 50%였던 소득세 최고세율을 38.5%로 낮췄으며, 표준공제와 세액공제도 확대시켰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여기에 강한 영감을 받은 듯하지만, 보고서는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선 보다 진보적인 세금제도(누진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누진세를 어느 정도 유지한 가운데 교육평준화와 중·저소득층에 대한 소득보장정책을 고집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소득불평등지수를 얻어낸 유럽 지역이 근거로 사용됐다.

소득불평등을 완화하고 싶다면 감세정책 대신 교육과 보건, 환경에 대한 투자를 더 늘려야 한다. 다만 거의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막대한 양의 국가부채를 떠안고 있는 현 상황이 발목을 잡는다. ‘부자 국가, 가난한 정부’라는 구도는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가 20조달러를 넘어섰다느니, 일본은 1,000조엔이라느니 하는 뉴스에서 잘 나타난다. 공공자산에서 공공부채를 뺀 순공공자산은 80년대를 기점으로 하락세로 접어들었으며, 2016년 현재 미국과 영국의 순공공자산은 마이너스, 독일·프랑스·일본 등도 국부의 30%를 넘지 못한다. 정부의 소득재분배능력이 크게 제한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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