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순재가 7년 만에 주연을 맡은 영화 ‘덕구’로 관객들과 만난다. <영화사 두둥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중요한 것은 내가 계속해서 할 일이 있었다는 거예요. 오늘도, 내일도 일이 있어요. 하루하루 하나의 과제가 있고 그것을 좇은 것, 드러누울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연기를 해 올 수 있는 조건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배우 이순재)

올해 나이 84세, 연기 경력 62년. 긴 활동 기간 동안 한 해도 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온 배우 이순재. 현재까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만 합쳐도 200여 편이 훌쩍 넘는 그는 여전히 쉴 틈 없이 바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7년 만에 주연을 맡은 영화 ‘덕구’(감독 방수인)로 관객과 만나고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라이브’에서도 열연을 펼치고 있다. 연극 무대도 떠나지 않는 그다. ‘노배우’ 이순재의 연기 열정은 도무지 식을 줄을 모른다.

특히 5일 개봉한 영화 ‘덕구’에는 노 개런티로 출연할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이순재는 “출연 기회만 있으면 한다”라며 웃었다.

“이제는 맡을 수 있는 역할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어요. 일정이 비슷하거나 중복되는 경우에는 거절할 수밖에 없지만 시켜준다는데 고맙게 해야지. 또 작품이 마음에 들었어요. 일단 해야겠다는 전제고, 가만히 보니 출연료를 별로 줄 것 같지 않더라고. 그래서 그냥 하자고 했지. ‘잘 되면 많이 주면 될 것 아니냐’ 하고 하기로 했어요.”

‘덕구’는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일흔 살 덕구 할배(이순재 분)가 세상에 남겨질 두 아이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특별한 사건이나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지만 ‘덕구’가 주는 감동은 특별하다. 그저 잔잔히 흘러가는 이들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물이 흐르고 가슴 가득 감동이 차오른다.

“‘덕구’는 가족애를 그린 영화예요. 사랑은 여러 가지이고 상대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모든 사랑의 근원은 가족 간의 사랑에서 시작되는 거예요. 부모와의 사랑, 자식과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 이건 바로 그걸 얘기한 거라고. 이방인이지만, 또 전과가 있지만 내 며느리를 가족으로 끌어안는 마음. 가족 간의 사랑의 의미를 강조하는 영화예요. 그래서 이게 눈물이 나는 거예요. 어떤 사건이 벌어져서 그런거면 조작된 거라 감동이 덜하다고. 그런데 일상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잔잔한 정서가 전달된 거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는 거죠.”

이순재가 깊이 있는 연기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예정이다. ‘덕구’ 스틸컷 <영화사 두둥 제공>

영화 내내 눈물샘을 자극하는 ‘덕구’이지만 억지 눈물을 강요하거나 작위적이지 않다.

“억지도 아니고 신파도 아니었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구나’ 절제해가면서 했죠. 시나리오 보면서 몇 군데 울먹울먹했는데 제일 마지막 며느리와 포옹할 때까지, 최대한 거기까지 참아 보자는 거. 손주 보내고 울어야 하는 장면인데 되도록 참아보자 했었지. 마지막 장면에서는 참을 수가 없더라고.”

실제로 이순재는 등장만으로도 눈물샘을 자극하며 ‘대배우’ 면모를 과시했다. 특히 어린 손주를 떠나보내기 전 그를 꼭 안아주는 이순재의 모습은 눈물 한 방울 없이도 큰 감동을 안겼다.

“연기라는 것은 진실성이 있어야 해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죠. 배우가 연기를 하다 보면 이 대목에서 효과를 내야겠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러다 보면 그것이 튀게 돼요. 판단은 관객의 몫이죠. 진솔하게만 해도 그 의미가 전달이 된다고. 가끔 보면, 열연을 했어. 슬픈 장면에서 막 정신없이 오열을 하고 그랬는데 어느 순간 관객들은 냉정해진다고. 관객의 몫을 배우가 다 뺏어 버리니까. ‘되게 슬프네’하고 만단 말이야. 관객의 몫을 남겨둬야 한다 이거예요. 연기의 절제라는 것이죠.”

이순재가 ‘덕구’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아역배우 정지훈(왼쪽)과 박지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사 두둥 제공>

이순재는 ‘덕구’에서 70세 이상 차이나는 아역 배우들과 연기 호흡을 맞췄다. 덕구 역을 맡은 정지훈(9세)과 덕희 역의 박지윤(5세)이 그 주인공. 이순재와 두 아역 배우는 나이차가 무색할 정도로 환상의 호흡를 보여줬다. 그도 만족감을 표했다.

“사실은 걱정됐어요. 요즘 아이들이 영민하고 똑똑하고 잘하는데 분량이 많아서 걱정을 했죠. 그런데 오디션에서 아이(정지훈)를 아주 잘 뽑았더라고요. 의욕이 넘치고 잘하더라고요. 오히려 너무 잘할까봐 걱정을 했죠. 오버할까봐. 그런데 감독 지시에 따라서 아주 적절하게 잘 하더라고요. 5살짜리 아이(박지윤)는 아주 마스코트예요. 현장에서 추운 겨울에도 내색 안하고 아주 팀의 마스코트였다고. 분위기를 아주 좋게 만들고.” 

영화에서 90%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순재는 작품에 대한 강한 애정으로 부상 투혼도 마다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는 “별거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목욕탕 장면이었는데 애를 안고 부엌에서 방으로 나오는데 슬리퍼가 미끄러졌어요. 아이를 떨어뜨릴 수 없어서 안고 쓰러지다 보니 무릎이 깨졌는데 뭐 별거 아니에요. 근데 방 감독이 가슴이 아파서 본인이 우는 바람에. 별거 아니었어.” 

많은 이들의 롤모델로 꼽히고 있는 이순재 <영화사 두둥 제공>

이순재는 많은 배우들이 닮고 싶은 롤모델로 자주 언급된다. 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어른으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본인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내가 80대까지 일하니까 부러워서 하는 말”이라며 쑥스러워했다. 그러나 이순재는 함께 작업하는 이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고자 노력하고 있음을 밝혔다.

“내가 특별히 존경받을 만한 일을 한 건 아니고 다만 내가 하면서 후배들한테 귀찮은 존재는 아니었다는 얘기죠. 우리 때도 잘해주는 선배가 있고 까다로운 선배들이 있었어요. 까다로운 선배들은 아무래도 경원(공경하되 가까이하지는 않음) 하게 된다고. 면전에서는 ‘선배님 오셨냐’하면서 모시게 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보면 불편하다고. 현장에서 스태프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예요. 나이 먹었다고 행세를 하거나 투정을 부리거나 조건을 자꾸 달면, 그 작품은 그대로 하겠지만 다음 작품은 안 불러요. 젊은 애들도 까다롭게 굴거나 시끄럽게 굴면 안 쓰는 판인데. 지금 배우가 한 둘도 아니고 말이야.”

뿐만 아니라 그는 어른으로서의 책임감도 강조했다.

“작품은 전체가 즐거운 가운데서 일이 된단 말이죠. 서로 갈등 있거나 하면 작업이 될 수 없어. 또 그런 거에서 가장 첫 번째 책임져야 할 사람은 나이 먹은 사람이라고. 그런 분위기에서 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보람이 있어. 왜 이 즐거운 일을 불편하게 만드냐 이거야.”

여든넷 노배우 이순재는 여전히 촬영 현장이 즐겁다. <영화사 두둥 제공>

62년이나 반복해온 일이지만 이순재는 여전히 현장이 즐겁다. 매사에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그의 모습이 긴 세월을 흔들림 없이 견뎌온 비결인 듯하다.

“육체적으로 힘들 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연속해서 밤을 새우거나 하면 아무래도 젊은 사람들과 달라서 힘들죠. 그래도 다행히 젊을 때 하도 밤을 새워서 노하우가 있긴 하지만 또 즐겁게 생각하면 되는 거예요. 즐겁게 생각하고 이게 바로 내 생존의 의미다 생각하면 어려울 게 뭐 있고 힘들게 뭐 있겠어요. 즐겁지. 즐겁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대배우’ 이순재는 인터뷰 내내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겸손했다. 나이를 앞세워 대접받으려 하지 않았고 자신이 쌓아온 경력을 들먹이며 잘난 척하지 않았다. 질문 하나하나에 기자와 눈을 맞추고 진솔한 답변을 내놨다. 오랜 시간 그가 많은 이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여든넷 ‘노배우’ 이순재의 전성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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