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구’가 관객들의 마음에 따듯한 감동을 전할 수 있을까. <영화사 두둥 제공>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시작부터 눈물이 났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웅변을 하는 바가지 머리를 한 어린아이와 그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비쳤을 뿐인데 코끝이 찡해졌다. 평범한 장면에서도 깊은 울림과 따듯한 감동을 전하는 영화 ‘덕구’(감독 방수인). 관객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을까. 
(*지극히 ‘주관적’ 주의)

◇ 시놉시스

“이별은 항상 훅하고 옵니다.”

할아버지 밑에서 어린 여동생 덕희(박지윤 분)와 함께 살고 있는 일곱 살 덕구(정지훈 분)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시골 소년이다. 마을에서는 ‘죽은 남편의 보험료를 갖고 도망친 외국인 며느리’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지만 덕구의 기억 속 엄마의 마지막은 할아버지 손에 모질게 내쫓긴 모습이다.

덕구는 엄마를 쫓아내고 남들 다 있는 로봇 장난감도 사주지 못하는 할아버지가 마냥 야속하기만 하다. 또 구멍 난 양말을 신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창피할 뿐이다.

하고 싶지 않은 웅변을 시키고, 원하지도 않는 대통령이 되라고 강요하고, 장손의 의무라며 얼굴도 알지 못하는 집안 어르신들의 이름을 줄줄이 외우게 하는 할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나날이 커져만 간다. 설상가상 동네에서 ‘덕희 엄마’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어린 여동생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못내 속상하다.

‘덕구’는 세상에 홀로 남겨질 두 남매를 위해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사 두둥 제공>

한편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고 실의에 빠져 있던 덕구 할배는 믿었던 며느리의 배신에 슬픔이 분노로 바뀌고, 당장에 며느리를 쫓아낸다. 일흔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어린 손자들을 키우기 위해 마을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덕구 할배는 어려운 형편에도 바르게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러던 어느 날 덕구 할배는 동네 의사로부터 남아있는 날이 얼마 없음을 전해 듣게 된다.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질 두 아이들을 위해 할배는 자신을 대신할 사람을 찾아주기로 하고 홀로 먼 길을 떠나 특별한 선물을 준비한다.

▲ 뻔하지 않게 풀어낸 가족애 ‘UP’

“처음 시나리오 접했을 때 감독이 누군지도 모르고 봤는데 ‘이거 참 소박하면서 진솔한 영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보면 앞뒤가 맞지 않고 작위적인 영화들이 많이 있는데 ‘덕구’는 잔잔한 이야기지만 무리 없이 우리 일상적인 정서를 담아서 잘 흘러가는 영화다.” (배우 이순재)

‘덕구’는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다. 특별한 소재도 아니다. 그동안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혹은 주변에서 흔히 접했던 홀로 어린 남매를 키우는 할아버지의 짠한 이야기다. 뻔한 이야기가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 그러나 ‘덕구’가 주는 감동은 결코 뻔하지 않다.

‘덕구’에서는 다문화가정의 모습이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담겼다. <영화사 두둥 제공>

방수인 감독은 ‘덕구’ 통해 다문화가정의 모습을 평범하고 자연스레 그려냈다. 우리 사회에 녹아든 다문화가족을 낯설고 특별한 존재가 아닌 우리 이웃, 우리들의 이야기로 표현했다.  며느리를 찾아 인도네시아로 떠나는 덕구 할배의 모습과 그곳에서 만난 이들과 그리는 가족애는 색다른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노인, 어린아이, 외국인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이 이야기의 주된 인물인 이 영화에서는 우리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심한 차별을 받는다거나 억울한 누명을 쓰는 일은 없다. 노인에게 괜한 시비를 거는 지나가는 행인1 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덕구에게 억울한 상황이 연출되긴 하지만 이것 또한 훈훈한 우정을 완성하기 위한 과정이다. 즉, 이 영화에는 악역이 없다. 오히려 그들을 도와주는 따듯한 이웃들만 존재할 뿐이다. 이들의 따듯한 시선이, 작은 도움이 영화를 훈훈하게 감싼다.

이에 대해 방수인 감독은 최근 진행된 ‘덕구’ 언론 시사회에서 “삶을 살면서 어린아이와 외국인, 그리고 노인들 즉 약자의 입장에서 보호하려고 하고 아이들을 지키는 것이 어른들의 의무인데 요즘 세상은 ‘그렇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되지 않고 알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당연한 일이 행해지는 세상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배우 이순재와 아역배우 정지훈이 ‘덕구’에서 열연을 펼쳤다. <영화사 두둥 제공>

‘덕구’는 영화 내내 눈물샘을 자극한다.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그 웃음조차 울컥한다. 그러나 절대 작위적이지 않다. 인물들을 극단의 상황으로 몰아넣고 억지 눈물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잔잔히 흘러가는 이들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물이 흐르고 가슴 가득 감동이 차오른다.

배우들의 열연도 ‘덕구’를 뻔하지 않은 영화로 완성했다. 먼저 노 개런티로 출연해 화제를 모은 이순재는 등장만으로도 눈물샘을 자극했다. 불같이 화를 내다가도 손녀에게는 달콤한 사탕과 굽은 등을 내어주는 한없이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에서 우리네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또 집 나간 손자를 찾은 뒤 “살아있으니 됐다”고 안도하는 모습과 어린 손자를 떠나보내기 전 그를 꼭 안아주는 이순재의 모습은 눈물 한 방울 없어도 큰 감동을 안겼다.

아역 배우들도 제 몫, 그 이상을 해냈다. 특히 1,000대 1의 경쟁률을 캐스팅된 정지훈은 외워서 하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를 완벽히 이해한 모습이었다. 순박하면서도 또래 아이들과는 다른 감수성을 품은 덕구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표현해냈고 대배우 이순재와의 ‘케미’도 좋았다. 완벽한 사투리 연기는 덤이었다. 로봇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는 7살 아이의 모습부터 할아버지를 위해 돈가스를 챙기는 의젓한 모습까지, 정지훈은 덕구 그 자체였다.

▼ 잔잔함이 싫다면 ‘DOWN’

화려한 볼거리와 거창한 스토리, 혹은 자극적인 소재를 다룬 영화들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잔잔하게 흘러가는 ‘덕구’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눈물을 들키고 싶지 않다면 혼자 가길 추천.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영화.

소중한 이들과 함께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영화 ‘덕구’ <영화사 두둥 제공>

◇ 총평

슬픈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덕구’ 상영관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게 좋다. 91분의 러닝타임 동안 눈물이 마를 틈이 없을 테니. 그러나 ‘덕구’는 단순히 슬프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덕구와 덕희의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모습은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하고 할배와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유쾌한 웃음을 유발한다. 또 반찬투정을 하는 덕구에게서는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떠오르고 주머니에서 사탕을 한 움큼 꺼내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향수를 자극한다. 뻔한 소재였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덕구’. 소중한 이들과 따스한 봄날 함께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영화다. 휴지나 손수건은 필수. 오는 4월 5일 개봉.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