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포춘지가 선정하는 500대기업 리스트에 우주항공과 제약 등 첨단산업기업체를 하나도 포함시키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그늘진 카이스트의 인공위성연구센터. <뉴시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미국의 저명한 경제전문지 ‘포춘’은 매년 매출액을 기준으로 세계 500대 기업을 선정해 발표한다.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은 월마트와 도요타, 애플 등 각 산업분야의 유명 기업들. 한국 역시 귀에 익숙한 대기업들이 꼬박꼬박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그 분야는 해외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상당히 협소하다.

◇ 전통 제조업에 집중된 한국의 ‘500대기업’… 첨단산업에 특히 취약

월마트는 포춘지가 가장 최근(2017년) 발표한 500대기업의 리스트에서 4년 연속 1위를 지키는데 성공했다. 2·3·4위는 국영기업의 성격이 짙은 중국의 에너지기업들이 차지했다. 중국은 1년 사이 6개의 대기업을 500위 안쪽에 밀어 넣으며 미국에 이은 2위 자리를 공고히 했다.

반면 2015년 17개 기업을 포함시켰던 한국은 16년과 17년 조사에선 15개에 그쳤다. 한국보다 순위가 낮았던 네덜란드에게 따라잡혔을 뿐 아니라(영국/네덜란드 기업 ‘유닐레버’ 포함‘) 총매출액 순위에서도 8,639억달러와 7,459억달러로 뒤쳐졌다.

보다 문제시되는 것은 500대기업에 포함된 한국의 기업체들이 9개 산업분야에 집중돼있다는 점이다. 포춘지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삼성전자(15위)와 현대차(78위), SK그룹(95위) 등의 국내 대기업들은 대부분 전통적 제조업을 통해 지금의 위치에 올라섰다. 반면 금융 분야에서 삼성생명보험이 413위, 유통업계에선 롯데쇼핑이 431위에 자리 잡은 것이 전부다. 한국과 500대기업 보유개수가 같은 네덜란드가 13개 산업분야에 걸쳐 자국 기업들을 포함시킨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포춘지의 500대기업 목록을 분석해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한국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미흡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매출액이 여러 산업에 골고루 퍼져있을수록 값이 커지는 ‘총다각화 지수’에서 한국은 1.88로 전체 9위에 그쳤다. 단순히 500대기업의 숫자가 부족한 탓으로 돌리기엔 네덜란드(15개 기업·2.24)와 스위스(14개 기업·2.01)에게 순위가 밀린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다.

대표적인 취약점이 우주항공·방위·의약 등 첨단산업 분야다. 해당 산업분야의 ‘강자’들은 부가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최신 과학기술의 시험무대 역할도 도맡기 때문에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의 대장주인 보잉(60위)과 미국의 의료서비스 기업 유나이티드헬스그룹(13위) 등이 대표적이다.

◇ 민간 주도의 투자 활성화되도록 지원 필요

독점기업이 많고, 정부가 거대기업에 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중국을 제외하면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기업의 절대다수는 민간사업체다. 따라서 ‘왜 한국은 첨단산업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을 육성하지 못했느냐’는 질문은 ‘왜 한국에선 첨단산업에 대한 민간참여도가 낮은가’로 치환할 수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15년 발간한 ‘주요국 우주산업 경쟁력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는 한국의 우주산업을 ‘걸음마 수준’이라고 평가한다. 선진국에 비해 저조한 경쟁력의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지나치게 낮은 민간분야의 참여도였다. 2013년 기준으로 우주산업에 대한 기업의 R&D 지출은 정부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했으며, 이는 민간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이 자생적으로 자라날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또한 정책의 변화에 따라 산업계 전체가 받는 영향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당시 보고서에서 “민간 중심의 우주산업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고 제언한 이유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관련 예산 확충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한국의 우주기술 연구개발비는 지난 2009년 이후 답보 상태다. 기획재정부가 발행한 ‘2018년 나라살림 예산개요’에서 우주항공과 생명 분야의 R&D 예산은 오히려 0.9% 줄어들었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핵심·융합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 예산이 1조2,126억원에서 1조5,225억원으로 25.6% 증가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방위산업 분야도 마찬가지다. 오랜 기간 군사적 갈등을 겪었으며, 세계 10위 수준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는 한국은 방위산업이 발달하기 좋은 환경처럼 보인다. 실제로 한국의 방위산업은 생산·수출·고용·국방과학기술 등을 종합해 볼 때 세계 10위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2015년 기준).

그러나 산업연구원(KIET)은 16년 발표한 ‘방위산업의 글로벌 위상 변화와 향후 전략’ 보고서에서 한국의 방위사업이 “아직까지 주요국 및 국내 제조업과 비교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산업연구원이 제시한, 국내 방위산업의 경쟁력이 선진국에 비해 저조한 이유들 중 하나가 바로 민간업체의 참여 부족이다. “국방 R&D 대부분을 정부 비용부담에 의존하고 있어 기업의 주도적인 투자실적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해당 보고서는 기업의 자체적인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기술소유권 독점방식을 혁신하고, 자율적 구조조정을 통해 국내 방산업체의 글로벌 역량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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