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토정보공사가 내부에 성추행이 만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국토정보공사 제공>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한국국토정보공사(LX)가 뒤숭숭하다. 지난달 기관장의 사퇴로 수장 공백 사태를 맞이한 가운데 과거 성추행 사건에 대한 후폭풍까지 강하게 몰아치고 있어서다. 국민인권위원회는 실태 조사를 거쳐 성추행 사건 가해자를 고발조치하고 조직 내 만연한 성희롱 문화에 대해 강력한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 “성추행 사건 솜방망이 처벌”… 인권위, 조사 결과 발표 

한국국토정보공사(이하 국토정보공사)는 국토에 대한 종합정보를 조사‧관리하는 공공기관이다. 지적측량, 지적재조사, 공간정보 구축 등을 주업무로 하고 있다. 직원의 1인당 평균 보수가 높아 국토부 산하 기관에서도 ‘신의 직장’으로 꼽힌다. 한국국토정보공사의 1인당 평균보수는 지난해 말 기준 7,900만원에 달한다. 2016년에는 한 글로벌 신뢰경영 평가기관에 의해 ‘국민이 뽑은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인권위 발표로 공개된 내부 조직문화의 민낯은 이같은 평가를 무색케 했다. 조직 내  성희롱 사건이 은폐되면서 2차 피해가 발생했는가 하면, 회식 자리에서 성희롱 문제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국토정보공사 내부 성추행 문제에 관련해 국토교통부 장관의 의뢰로 실태 조사를 벌여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국토정보공사는 일부 간부들이 인턴 여직원과 여대생 실습생을 상대로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사실이 지난해 알려지면서 논란을 일으켰던 곳이다. 사건이 초기 조직 내부에서 축소 솜방망이 처리된 점이 드러나면서 공분을 샀다.

인권위는 우선 2015년 성추행 사건을 일으킨 전 간부 A씨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치하기로 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2015년 인천본부에 근무하던 A씨는 근무 시간에 술을 마시고 사무실에 들어와 여직원을 폭행하고 성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인천본부에서는 심각한 강제 추행 사건임에도 보고 과정에서 은폐‧축소, 가해자에게 감봉 3개월의 경징계로 부적절하게 처리했다고 인권위는 지적했다. 이후 가해자는 본사 감사실의 재조사가 이뤄지면서 그해 10월 뒤늦게 파면조치됐지만 피해 여직원은 그 사이 2차 피해를 겪어야 했다. 피해자는 사건 제보 후 별다른 보호 조치 없이 방치됐다. 이후 제보 내용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다른 직원들로부터 사건의 내용과 개인의 성경험 등을 질문 받아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는 해당 사건에 대해 더욱 강도 높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인권위는 아직 형사상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고,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 의사를 밝혀 고발조치하기로 했다.

지난해 사건은 가해자 중 일부가 감사실 직원이었다는 점에서 문제를 드러냈다. 지난해 일부 간부들은 실습을 나온 여대생 3명을 상대로 개인적인 만남을 요구하며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은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또 인권위는 내부 성추행 문제가 단순한 개인의 도덕적 일탈로 발생한 아니라고 판단했다. 전형적인 남성 중심의 공기업 특성 때문에 공사에 성추행이 만연한 것으로 판단했다. 국토정보공사는 전체 직원 중 여성 인원의 비중이 15%밖에 되지 않는다.

◇ “회식 자리, 성추행 만연” 남성 위주 조직문화 도마 위  

실제로 회식자리에서 일상적인 성희롱도 만연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공사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성희롱 문제에 대해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다. 본인피해 경험률과 타인피해 인지율을 종합한 성희롱 경험률을 보면 “회식에서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하는 행위”(9.0%)가 가장 높았다.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8.2%)와 “음담패설 및 성적 농담(전화·문자·SNS 포함)”(6.2%)이 뒤를 따랐다.

모든 항목에서 ‘남성’ 대비 ‘여성’의 경험률이 높았다. ‘회식에서 술을 따르거나 옆에 앉도록 강요하는 행위’(31.1%),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나 평가’(25.3%), ‘음담패설 및 성적 농담(전화, 문자 포함)’(17.8%), ‘포옹, 손잡기, 신체 밀착, 입맞춤 등의 신체 접촉을 하거나, 신체 접촉을 하도록 강요하는 행위’(15.4%)에서 여성의 경험률이 특히 높게 나타났다.

이에 인권위는 국토정보공사 사장에게 성희롱․성폭력사건의 근절·예방 및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이행여부에 대해 향후 3년간 연 2회씩 인권위에 정기적으로 통지할 것을 권고했다.

다만 기관장 자리가 공석상태인 만큼 빠른 조직 쇄신이 될지는 미지수다. 박명식 전 사장이 지난달 20일 임기를 1년 7개월을 남겨두고 자진사퇴했다. 현재 국토정보공사는 직무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사장 지원자를 공모하는 등 인선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선임 작업이 완료되기까지는 두달여간이 걸린다. 강도 높은 조직 쇄신이 필요한 시점에 경영 공백을 맞이한 셈이다.

이에 대해 국토정보공사는 “전임 사장 체제 시절에 성추행 문제에 대한 징계 강화 및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한 상태”라며 “인권위 권고안 중 일부 사안을 제외하고는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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