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국내 사업체 규모별 임금격차가 확대됐고, 노동이동성은 떨어졌다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한국은행이 국내 사업체 규모별 임금격차가 확대됐고, 노동이동성은 떨어졌다는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시사위크=현우진 기자] 더 좋은 일자리에 대한 사회의 열기가 어느 때보다 높다. 신한은행의 ‘2018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취업준비생들이 일자리를 찾기까지는 평균적으로 13개월이 걸리며, 구직활동에 소모하는 비용은 직종에 따라 380만원에서 많게는 630만원까지 늘어난다(주거비·생활비 제외).

한국사회의 낮은 노동유연성과 큰 임금격차는 이들이 ‘취준’에 매달리는 이유다. 일자리 간 임금 차이가 크고, 더 좋은 조건의 일자리로 이동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 1.7배까지 늘어난 대기업·중소기업 임금격차

전병유 한신대학교 교수와 황인도 한국은행 정책보좌관실 차장, 박광용 한국은행 거시경제연구실 부연구위원은 10일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정책대응: 해외사례 및 시사점’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유럽 국가들에서 나타나는 이중구조는 주로 고용형태의 문제(비정규직)인 반면, 한국의 경우에는 비정규직 문제와 기업·사업체 규모 간 격차 문제가 겹쳐서 나타나고 있다”고 문제제기했다.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사업체규모별 임금격차 동향을 분석한 결과, 1987년 이전 자료에서는 1.1배 이하로 매우 미미했던 대규모사업체(300인 이상)와 중소규모 사업체의 임금격차가 2014년 자료에서는 1.7배까지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연령·학력 등 주요 인적자본변수를 통제한 상태에서 사업체규모에 따른 임금 변화를 살펴봤을 때도 300인 이상 사업체의 임금프리미엄은 4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같은 성별·연령·학력 등을 가진 두 근로자 중 대규모사업체에서 근무하는 한 명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46%의 임금을 더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를 조사한 결과에서는 2007년까지 -20%를 넘었던 비정규직의 임금프리미엄이 현재 -13%대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7월부터 시행된 비정규직 보호법이 긍정적인 효과를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정규직의 임금프리미엄은 줄어든 반면 대기업의 임금프리미엄은 늘어났다는 사실은 한국사회 전체 임금격차 가운데 사업체 내 분산보다 사업체 간 분산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계층이동 더 어려워졌다… 유럽은 장기 노동정책으로 사회적 타협 성공

늘어난 것은 임금격차만이 아니었다. 더 큰 규모의 사업체로 이직하기 위해 올라서야 할 계단도 높아졌다.

2015년에 중소규모 사업체에 고용됐던 근로자 중 2016년에 대규모 사업체에서 일한 비율은 2.2%에 불과했다. 반면 같은 기업에서 계속 근무하거나 비슷한 규모의 기업으로 이직한 비중은 2004년 66.1%에서 2015년 78.8%로 껑충 뛰었다. 한편 대기업 근로자 중 중소기업으로 이직하는 인구의 비중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잠시 상승(31.2%)했다가 이후 다시 하락해 2015년에는 22.8%를 기록했다. 이는 중소규모 사업체와 대규모 사업체의 노동시장이 철저히 분리되고 있음을 뜻한다.

실종된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요소로 지목된다. 한국은 세계은행의 2018년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전체 15위로 평가됐지만, 노동이동성 항목에서는 75위에 그쳤다.

한국보다 먼저 같은 문제를 겪은 국가들은 규제완화를 통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동시에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해 실업자를 보호하는 ‘유연안전성 정책’을 활용했다. 다만 한국이 당장 이 정책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실현가능성이 낮다. 우선 노동유연성을 높이는 정책들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노동규제를 완화한 정책들에는 늘 파견근로자·임시근로자 등 임금수준이 낮은 일자리를 양산해 평균임금수준을 떨어트렸다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또한 한국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적 합의 역량이 낮아 노사정 대타협을 도출하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노동시장의 분절화 문제를 겪었던 유럽 국가들은 짧게는 10년부터 길게는 30년에 걸쳐 장기적으로 개혁을 추진했으며 상당수는 아직도 개혁이 진행 중이다. 사용자 대표들이 경영권을 보장받는 대가로 고용·투자·사회 환원을 늘리기로 약속한 샬트셰바덴 협약(스웨덴)과 노동계의 임금 양보 및 사용자의 고용유지 노력을 골자로 한 바세나르 협약(네덜란드) 등이 ‘사회적 타협’을 통한 노동개혁의 예시다. 한국에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극복을 위한 정책 마련뿐 아니라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적 타협능력 제고 필요성도 제기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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