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남북정상회담이 세 차례 열렸다. 4·27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는 등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도 진행중이다. 다만 대북정책을 둘러싼 국내 여론은 좀처럼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우리보다 앞서 통일을 이룬 독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독일은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평화 통일'을 이룩했다는 점에서 늘 우리의 주요 연구대상이었다. 이에 <시사위크>는 독일 통일과정에서 있었던 정책 등을 돌아보고, 향후 대한민국 대북정책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1972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와 빌리 슈토프 동독 수상이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 독일연방정부 홈페이지
1972년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와 빌리 슈토프 동독 수상이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 독일연방정부 홈페이지

[시사위크=김민우 기자] 지난 10월 국내 정치권에서는 4·27 남북 판문점선언에 대한 국회 비준동의 문제를 놓고 '북한이 국가냐, 아니냐'를 둘러싼 논쟁이 일어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자서전 등을 통해 북한은 국가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왔는데,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보수야권의 판문점선언 정부 비준 비판에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라고 언급하면서 논란이 더 격화됐다. 청와대가 '오락가락'한다는 비판이 커지자 김 대변인은 "북한을 규정하는 것은 다양한 측면이 있다. 헌법에서는 국제관계가 아니지만, 국제법에서는 국가로 인정한다"고 수습에 나섰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느냐 하는 논쟁은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다. 특히 보수권에서는 헌법 제3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와 제4조(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초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를 근거로 인민민주주의를 내걸고 공산주의 체제를 택한 북한 정권이 국가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러한 논쟁은 서독 내에서도 오랜 기간 이어져왔다. 서독은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가 간 체결하는 각종 '조약'을 맺으며 '사실상' 국가로 인정하는 투트랙을 취했다. 반면 동독은 체제의 불안정 등을 이유로 끊임없이 '독일 2국가'를 주장해왔다.

◇ 철저한 '고립'에서 '특수관계'로 발전

1949~1963년 재임했던 기민당(CDU)의 콘라드 아데나워 총리는 동독과의 관계에서 서독만이 전 독일을 대표한다는 '단독 대표권'을 내세우며 동독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정책을 추진했다. 동독과 외교 관계를 맺은 국가와도 외교 관계를 수립하지 않는 '할슈타인 독트린' 원칙을 세우기도 했다. 이러한 아데나워의 '친서방 정책'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국과 다름 없었던 서독이 서방 국가들과의 동등한 주권을 확보하고,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쌓는 토대로 작용했다.

'동독 고립' 기조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신동방정책'을 펼쳤던 사민당(SPD)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취임하면서다. 브란트 총리는 1969년 10월 28일 연방의회에서 취임연설을 통해 "독일민주주의공화국(동독)을 국제법으로 승인하는 방안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독일에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두 나라가 외국은 아니다. 두 나라는 특수한 관계다"라고 발표했다.

서독은 1972년 12월 동독과 기본조약을 체결한다. 기본조약은 '서독과 동독은 동등 자격의 원칙 위에서 상호 정상적 선린 관계를 발전시킨다', '양측은 주권상의 평등, 독립의 존중, 자립과 영토의 불가침성, 자결권, 인권 보장 등 유엔헌장에 명시된 목표와 원칙을 준수한다'는 등의 조항을 담고 있었다. 기본조약에 앞서 교통조약 등 '국가 간의 합의'를 맺기도 했다.

이를 통해 서독은 동독을 국가로 승인하지 않고서도 동독과 공존하며 관계를 개선해 나갈 수 있게 됐다. 이후 1973년 9월 동서독은 유엔에 동시 가입했고, 1974년에는 상주 대표부를 교환하기도 했다. 국제적으로는 동독을 국가로 인정한 셈이다.

그러나 서독 내에서도 이같은 동서독 기본조약이 서독 기본법에 위반된다는 반박이 제기됐다. 가장 보수적인 정당인 기사당(CSU)이 집권하고 있던 바이에른 주정부는 1973년 기본조약이 서독 기본법 중 '통일 완수의 사명'에 위배된다며 연방헌법재판소에 위헌소송을 제기했다.

연방헌법재판소는 기본조약이 위헌이 아니라고 판결한다. 브란트 총리의 '동서독 특수 관계' 이론을 지지한 것이다.

"동독은 국제법상 하나의 국가이다. 그러나 서독에 의한 동독의 국제법상 승인 문제는 별개다. 서독은 동독에 대한 국제법상 승인을 공식적으로 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이와 반대로 분명히 거부했다. 서독이 동독에 대해 긴장 완화 정책의 일환으로 취한 태도와 특히 조약을 체결하면서 대두된 실제상의 승인 사실을 평가한다면 이는 특수한 형태의 사실상의 승인으로서만 이해될 수 있다."

다만 서독 정부 역시 기본조약이 동독을 국제법상의 국가 승인으로까지 확대 해석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한다. 기본조약에 따라 동독의 동베를린에 설치한 상주대표부를 외교부가 아닌 총리실 소속으로 한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러한 '동서독 특수관계'는 브란트 정부 이후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정부로까지 이어진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평양공동사진취재단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평양공동사진취재단

◇ 법적 논쟁 대신 통일 의지 거듭 재확인

서독이 동독을 사실상 국가로 인정했다고 해도, 통일에 대한 의지는 결코 약해진 적이 없었다. 1972년 기본조약 체결 이후 동서독 민간 교류 및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동시에, 통일의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역설한 것이다.

브란트 총리는 1970년 소련과의 모스크바 조약 체결과 함께 '통일 통일에 관한 공한'에서 "이 조약은 독일 국민이 자유로운 자결권으로 다시 통일을 이룩하려는 것으로, 이는 유럽의 평화를 추구하는 독일 연방공화국(서독)의 정치적 목적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했다. 모스크바 조약에서는 독일에 2개의 국가가 있음을 인정했지만, 별도의 공한에서 독일 통일의 의지를 강하게 나타낸 것이다.

서독 연방헌법재판소도 기본조약 합헌 판결문에서 "이 조약은 (서독)기본법상의 재통일 사명과 모순되지 않는다. 이 조약은 분단을 위한 조약이 아니고 오히려 독일 민족이 다시금 국가적 통일을 달성할 수 있도록 연방정부가 언제나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통일을 위해 노력해 나가기 위해 마련한 조약"이라고 설명했다.

신동방정책을 계승한 헬무트 콜 총리 역시 1982년 총리 취임연설에서 "우리에게 독일 문제는 동서독 간의 문제를 넘어 민족의 통일 문제다. 우리 독일인들은 국토분단에 순응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듬해 연례 국정보고 연설에서도 "우리는 동포들이 자결의 권리를 부인당하고 그들의 인권이 짓밟히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 도이치 국민들은 조국의 분단상황을 수긍할 수 없다"라며 "우리는 헌법정신에 따라 자유의사에 따른 도이치의 통일과 자유를 성취하기 위해 굳은 결의와 인내력을 갖고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 헌법에 '통일 전 휴전선 이남 적용' 단서 적용 등 거론

앞서 남북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쌍방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한다"라고 명시한 바 있다. 이어 2005년 12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서는 이같은 남북의 특수관계를 규정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느냐에 대한 법적 논쟁을 다시 한다면 독일의 사례를 보듯 길어질 수밖에 없다. 혹여나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선포할 경우, 북한의 반발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에 국내에서는 서독이 기본법에 효력범위를 통일 전까지는 서독지역으로 한정했던 것처럼 헌법에 유보조항을 단서로 두는 방법 등이 거론된다.
 
지난달 30일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발간한 '통일법제특별위원회 연구보고서' 가운데 김웅기 변호사는 '헌법상 영토조항 개헌론에 대한 소고'라는 논문을 통해 "남북관계의 비적대적 변화로 인해 현행 헌법상의 남북관계와 관련된 조항, 즉 영토와 통일에 관련된 조항의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현재의 영토조항(헌법3조)은 그대로 두되, 남북한이 평화적 통일을 이뤄 통일한국의 새로운 헌법이 제정될 때까지는 대한민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영역과 주민에 대해서만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이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따라서 제3조를 그대로 두고 단서로 '다만 이 헌법과 이에 따른 법률은 남북한이 통일되어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휴전선 이남 지역에만 적용된다'는 헌법유보조항을 단서로 두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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