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에 화환이 들어가고 있다. 임세원 교수는 자신의 진료 환자에게 의료 상담 중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뉴시스
지난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고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빈소에 화환이 들어가고 있다. 임세원 교수는 자신의 진료 환자에게 의료 상담 중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뉴시스

[시사위크=조나리 기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세원 교수 피살 사건을 계기로 의료진에 대한 폭행을 막기 위한 ‘임세원법’이 추진된다. 정신질환자의 안전한 치료를 위해선 의료진의 안전이 전제돼야 한다는 취지다. 과거에도 의료인에 대한 폭행·협박 행위에 대해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법 개정이 추진된 바 있다. 그러나 환자단체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다만 이번에는 통과 여부가 아닌 어떤 내용이 담겼느냐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 진료 중 환자에 공격... 고인 추모 발길 이어져

고(故) 임세원 교수는 지난달 31일 오후 5시 45분경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 3층 진료실 근처 복도에서 자신의 환자인 박모(31) 씨가 휘두른 흉기에 수차례 찔려 사망했다. 당시는 진료시간이 끝난 때였지만, 임 교수는 박씨의 진료를 진행하다 변을 당했다. 상담실에서 처음 흉기를 휘두른 박씨는 임 교수가 도망치자 뒤쫓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상황에서 임 교수가 간호사들을 대피시키려다 박씨에게 공격을 당한 모습이 CCTV에 담긴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임 교수는 심폐소생술 후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숨지고 말했다. 박씨는 양극성 장애(조울증)로 입원치료 등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 교수는 우울증 치료와 자살예방에 앞장서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자신이 개발한 한국형 자살예방 프로그램 ‘보고 듣고 말하기’를 여러 기관에 무료로 강의도 해왔다. 임 교수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는 임 교수에게 진료를 받았던 환자들의 발걸음도 이어지고 있다.

임 교수에게 10여년 간 진료를 받았다던 한 시민은 “너무 친절하시고, 모든 다 챙겨주시려는 분이었다”고 고인을 기억했다. 환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던 고인의 뜻에 따라 유족들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거둬달라는 당부를 남기기도 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역시 성명을 통해 “의사에게 안전한 치료환경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환자에겐 지속적 치료를 제공하지 못하는 우리 제도에서는 사고의 위험은 온전히 의료진들이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남아 있다”면서 “안전한 치료시스템 마련을 위해 모든 것을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높아지는 제도 개선 목소리... ‘임세원법’ 골자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경계심에 대한 주의도 요구되고 있다. 그러나 의료진들의 경우 현실적인 불안감을 떨쳐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환자에 대한 의료인 피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8년에도 비뇨기과 의료인이 환자의 공격에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적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3일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과 긴급회의를 열고 이르면 다음주 상설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첫 협의체에는 긴급회의에 참석한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등이 참여할 예정이다.

협의체 논의는 정신과를 포함해 전체 진료과목과 현장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처벌강화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안전한 진료환경 개선 및 안전한 진료환경 정착을 위해 의료진과 환자 간 신뢰 회복 방안 등에 대해 논의를 지속하기로 뜻을 모았다.

특히 협의체는 법안 내용과 관련해서도 심도 깊은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과거에도 의료기관 내 폭행을 가중처벌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지만 환자단체의 반발로 무산됐기 때문이다.

실제 19대 국회에서는 진료 중인 의료인을 폭행 또는 협박하는 경우 징역형을 강화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처벌하겠다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됐다. 그간 의사들이 보복을 우려해 폭행이나 협박을 당해도 고소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해당 법안이 환자들의 항의 자체를 막는데 악용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환자단체는 법 적용 대상을 의료진까지 확대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시 처벌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선안을 제시했지만 의료진의 반발만 샀다. 의료계는 이번에야말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를 위해 복지부는 우선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함께 정신과 진료현장 안전실태를 파악하고 진료환경 안전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한 바 있다. 실태조사에는 진료실 내 대피통로(후문) 마련, 비상벨 설치, 보안요원 배치, 폐쇄병동 내 적정 간호인력 유지 여부 등이 포함된다.

나아가 의료인 폭행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7개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것과 관련해서도 의료계와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해당 법안들은 징역형만 가능하도록 하거나 형량하한제, 심신미약자 감형 면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한편 지난 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가 소명되고 구속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박씨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현재 박씨의 범행에 대해서는 심신미약 감형 적용사례라는 평가와 계획범죄라는 평가로 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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