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장애인 윤씨(33)가 광주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활동가들과 저상버스 환경 점검을 하는 모습이다./뉴시스
교통약자를 위해 도입된 저상버스의 보급 확대가 거북이걸음을 걷고 있다. 사진은 2016년 장애인 윤씨(33)가 광주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활동가들과 저상버스 환경 점검을 하는 모습이다./뉴시스

[시사위크=주용현 기자] “버스 한번 타는데 1시간 15분을 기다려야 한다.” 한적한 시골마을 얘기가 아니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장애인이 매일 마주해야하는 현실이다. 

◇ 교통약자 이동권 소외 ‘현재 진행형’

교통약자에게 ‘이동권’은 아직 먼 나라 얘기다. 경기도의 저상버스(교통약자가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진 버스) 비율은 16.6%로, 약 6대 중 1대만 저상버스다. 교통약자가 배차간격 15분 버스를 탄다고 가정했을 때, 최대 1시간 15분을 기다려야하는 셈이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고객은 ‘타기만 해도 다행’이다. 

기다리던 저상버스가 왔다고 하더라도 고충은 이어진다.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출퇴근 시간에 휠체어를 타고 저상버스를 이용하려면 기사들이 승차거부나 기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또 경사로 관리가 안 돼 작동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교통약자는 비단 장애인만이 아니다. 법령상 노인·임산부·어린이 등도 교통약자에 포함된다. 이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하 교통약자법)에는 저상버스 보급을 위한 규정이 존재한다. 운수사업자가 갖춰야하는 ‘적정 대수’에 대한 조항은 하나 밖에 없다. 결국 이 규정이 ‘적정 기준’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장애해방을 향한 2018 장애인 인권 행진’을 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뉴시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들이 ‘장애해방을 향한 2018 장애인 인권 행진’을 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뉴시스

◇ 저상버스 보급률 확대 거북이걸음… 애매한 규정 ‘걸림돌’

교통약자법 제14조는 ‘국토교통부장관 또는 시·도지사는 저상버스 등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대수(臺數) 이상 운행하려는 자에게 우선적으로 노선 여객자동차운송사업 면허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별시와 광역시내 노선의 운수사업자는 전체 운행대수의 2분의 1(50%), 그 외는 3분의 1(33%) 이상 저상버스를 갖추고 있어야 면허 발급 우선권이 주어진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 관계자는 “예를 들어 신규로 시내버스 사업 면허를 신청하려면 저상버스를 규정만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면허 발급의 우선권 부여의 기준 뿐만 아니라, 실제 ‘법정 기준’처럼 활용되고 있는 셈이다.

국토부가 1일 발표한 2018년 전체 시내버스 대비 저상버스 비율(추정치)은 전국 평균 25.3%다. 시·도별 비율은 서울이 44.4%로 가장 높았다. 서울시의 경우, 버스사업이 준공영제로 운영되는데다 재정자립도가 우수해 비교적 보급 비율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전남·울산·경북은 각 12.4%·12.9%·14.3%로, 저상버스 비율이 전체 평균의 절반 수준이었다. 충남은 2017년과 2018년 모두 7%대를 기록해 ‘교통약자가 버스 타기 가장 불편한’ 지역으로 조사됐다. 

법령 권고 기준을 충족한 지역은 강원(33.6%) ‘단 한 곳’으로 확인됐다. 현행 교통약자법에 따르면 저상버스 구비는 기존사업자에게 의무사항이 아니다. 버스사업자가 저상버스 도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로 지목된다. 

2005년 교통약자법이 제정되기 전에 이미 면허를 가지고 있는 사업자들이 많아, 해당 규정에 따른 저상버스 보급 유인이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이하 전국버스연합)의 자료에 따르면, 면허발급을 2005년 이전에 받은 운수사업자는 전체 463개 중 86%인 402개로 확인됐다.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은 “법 규정이 애매한 문언으로 돼있어 저상버스 보급이 더디다”며 “중앙정부 예산투입을 늘리고 서울시 준공영제 같은 공적 모델이 필요할 것”이라고 의견을 전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버스 사업자들의 경영 부담도 함께 고려돼 관련 법이 제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로서 권장은 가능하지만 강제할 수는 없는 조항”이라고 밝혔다. 저상버스는 일반버스보다 승차인원이 적은데다 유류비도 더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에서 차량 가격을 보조해주고 있음에도 저상버스 교체 유인율이 떨어지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 지역 간 보급률 격차 커… ‘문제는 예산’

지역 간 저상버스 보급이 큰 차이를 보이는 원인은 △정부 예산 투입 부족 △지자체별 예산 차이 △운수사업자들의 불만 등으로 분석된다. 

국토부가 1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저상버스는 일반 버스보다 차량 가격이 2배가량 높다. 일반버스가 1억원 상당으로 알려지며, 저상버스는 그보다 평균 9,200만원이 비싸다. 이 차액을 정부와 지자체가 절반씩 부담해 저상버스를 보급하고 있다. 정부는 올해 375억5,000만원을 저상버스 보조금 등 관련 예산으로 투입할 예정이다. 이는 전년(340억원)보다 10% 확대된 규모다.  

하지만 한정된 정부 예산 때문에 충분한 저상버스 공급은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인천시 교통국 관계자는 “2016년부터 요청한 저상버스 대수가 전부 받아들여진 경우는 없었고, 올해도 국토부에 50대를 요청했지만, 배분된 저상버스는 27대”라고 전했다. 경기도 교통국 관계자도 “올해 저상버스 431대를 요구했으나 199대를 배정 받았다”며 작년과 재작년 요구한 저상버스도 전부 배정받진 못했다고 설명했다. 

위의 표는 2016년 12월 국토부가 발표한 '제3차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의 저상버스 보급 계획표, 아래 표는 지난 1일 국토부가 발표한 올해 저상버스 보급계획하며 추정한 2018년 저상버스 현황/시사위크
위의 표는 2016년 12월 국토부가 발표한 '제3차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의 저상버스 보급 계획표, 아래 표는 지난 1일 국토부가 발표한 2018년 저상버스 현황 추정치/시사위크

◇ 목표치 밑도는 저상버스 보급대수 

국토부는 2016년 12월 ‘제3차 교통약자이용증진계획’을 발표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국토부는 2018년 2,894대, 2019년 2,791대의 저상버스를 공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국토부는 지난 1일 ‘저상버스 보급 계획’에서 전년(802대)보다 75대 추가한 877대를 올해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목표치의 31% 수준으로, 턱없이 낮은 규모다. 버스 수명이 다 돼 폐차될 저상버스를 고려하면 실제 누적 보급대수는 더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국토부가 추산한 ‘2018년 저상버스 보급률’도 확실하지 않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저상버스 보급률’은 전체 시내버스에서 저상버스가 차지하는 비중을 뜻한다. 국토부가 내놓은 2018년 저상버스 보급률 추정치는 25.3%로 확인됐다. 2018년 시내버스는 2017년보다 약 2,000대 줄어든 3만1,899대로 추정했다. 

그러나 전국버스연합 자료에 따르면, 집계를 시작한 2008년 이래 ‘시내버스 대수’는 단 한 차례도 줄지 않았다. 또한 해당 기관에서 2018년 11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시내버스는 3만5,200대로 국토부의 추정치보다 약 3,300대가 높다.

2016년 국토부가 발표한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에서도 시내버스 대수는 2017년 이래 5개년간 3만4,302대부터 3만6,042대까지 지속적 증가가 예상됐다.

저상버스 규모도 국토부 추산과 차이가 있다. 2018년 11월 전국버스연합이 집계한 저상버스는 7,578대, 국토부가 파악한 저상버스는 8,059대로 약 500대 많다.

전국버스연합 관계자는 <시사위크>와 통화에서 “전국 시내버스 사업은 전부 우리 조합의 회원사라서, 우리가 내놓은 통계의 신뢰도는 100%라고 봐도 된다”고 밝혔다. 

이에 2016년 발표한 보급률 목표치 ‘25%’를 맞추기 위해 국토부가 엉터리 숫자를 표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보급률은 시내버스 대수가 적어진다면 올라간다. 또 저상버스 수가 많아진다면 비율이 커지게 된다. 

◇ 보급률 목표 달성 엉터리?... 석연치 않은 통계 기준

국토부 교통안전복지과 관계자는 “지자체에서 보낸 자료를 토대로 나온 수치다.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 자료일 뿐 숫자 맞추기는 사실이 아니다”며 “실태조사와 크게 차이가 나는 부분은 확인 작업을 거칠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지자체 중 경기도의 시내버스는 전년보다 1,900여대가 줄어 가장 낙폭이 컸다. 경기도 교통국 관계자는 “시내버스 전체 중 일반형 시내버스(저상버스로 쓸 수 있는 버스 기종)을 기준으로 시내버스 현황을 제출을 했는데, 국토부 측에서 올해 초 원래 기준이었던 전체 시내버스 현황을 제출해달라고 했다”며 “그런데 국토부 측에서 요구한 전체 시내버스 통계치 자료 대신, 일반형 시내버스만 따로 분류한 자료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국토부는 그간 전체 시내버스(일반버스, 좌석버스, 광역버스 등 포함)를 대상으로 보급률 통계를 내왔다. 그런데 경기도의 경우, ‘일반형 시내버스’만 따로 분류한 자료를 국토부가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가 추산한 올해 1월 기준 전체 시내버스는 모두 1만507대다. 이 가운데 일반형 버스는 8,229대로 확인됐다. 이로 인해 경기도의 저상버스 대수가 크게 증가하지 않았음에도 전년대비 보급률이 올라가는 착시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기준 변경이 다른 지자체 통계치에도 적용됐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대폐차되는 저상버스를 고려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적 시각도 있다. 2003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한 저상버스의 대폐차 주기는 9~11년 정도다. 국토부의 ‘제3차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계획’에는 2018년 폐차될 저상버스를 878대로 예상하고 있었다. 이는 작년 도입된 저상버스 802대보다 많다.

조현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현재 보급 추세라면 저상버스 도입률은 낮은 상태로 유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반버스와 저상버스 대폐차시 저상버스 교체를 의무화하는 개정안이 국회에서 계류 중”이라며 관련 법안 통과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17년 3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시내버스를 대폐차 할 때 저상버스로 우선 교체토록 하는 내용을 담은 ‘교통약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관련 법안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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