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가 배포한 방송 프로그램 성평등 가이드라인이 논란을 부르고 있다. 사진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여성가족부가 배포한 방송 프로그램 성평등 가이드라인이 논란을 부르고 있다. 사진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발언하고 있는 모습.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여성가족부가 지난 12일 배포한 ‘성평등 방송 프로그램 제작 안내서’의 일부 내용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방송 프로그램의 과도한 외모지상주의를 지적하고 성평등 가치를 제안하기 위해 안내서를 게재했지만, ‘방송 검열·규제’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했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방송 제작을 규제할 권한이나 강제성이 없는 ‘가이드라인’을 놓고 전두환 독재 시절 ‘보도지침’과 비교하는 것은 과도한 확대해석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논란이 된 대목은 ‘비슷한 외모의 출연자가 과도한 비율로 출연하지 않도록 한다’는 부분이다. 여가부는 “방송 콘텐츠 제작자들이 방송 프로그램이 다양한 외모를 보여줘야 할 필요성과 과도한 외모 지상주의의 해악에 대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여 방송이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외모를 보여주고 다른 외모 각각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도록 권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하면서 사례로 음악방송 출연자들의 외모 획일성을 들었다.

가이드라인에는 “음악방송 출연자들의 외모획일성은 심각하다.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의 외모는 마른 몸매, 하얀 피부, 비슷한 헤어스타일, 몸매가 드러나는 복장과 비슷한 메이크업을 하고 있다. 외모의 획일성은 남녀 모두 같이 나타난다”고 표현하고 있다.

여가부는 19일 보충설명 자료를 통해 “방송에서 보여지는 과도한 외모지상주의는 일반 성인 뿐만 아니라 아동·청소년에게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분석 결과 지나친 외모의 부각, 획일적이거나 과도한 외모기준 제시, 외모지상주의 가치 전파 등이 부정적 사례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방송 제작진이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이런 요소들을 고려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하는 차원에서 안내서를 작성했다”며 “여가부는 방송 제작을 규제할 의도가 없으며 그럴 권한도, 강제성도 갖고 있지 않다. 이 안내서는 방송 제작자들의 성평등한 시각과 인식 확산을 위한 안내용 자료”라고 설명했다.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방송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중 일부 내용 / 여성가족부
여성가족부의 성평등 방송프로그램 제작 안내서 중 일부 내용 / 여성가족부

◇ “아이돌 머리 색깔 다 다른데?”… ‘외모 획일성’에 대한 오해

하지만 이 같은 여가부의 취지는 일부 정치인의 발언으로 인해 왜곡돼 확산됐다. 대표적인 것이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의 발언이다. 하 의원은 여가부의 안내서가 게재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같은 글을 올렸다.

“여가부 장관은 여자 전두환입니까? 음악방송에 마른 몸매, 하얀 피부, 예쁜 아이돌 동시 출연은 안 된답니다. 군사독재 시대 때 두발 단속, 스커트 단속과 뭐가 다릅니까? 왜 외모에 대해 여가부 기준으로 단속합니까? 외모에 객관적인 기준이 있습니까? 닮았든 안 닮았든 그건 정부가 평가할 문제가 아니고 국민들 주관적 취향의 문제입니다. (중략) 방심위는 인터넷 검열, 여가부는 외모 검열! 반독재 투쟁 깃발을 다시 들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하 의원은 이후 교통방송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도 “제가 (걸그룹) 트와이스하고 여가부 직원들 사진을 비교해 봤다. 트와이스 9명이 머리 색깔이 다 다르다. 사실 외모 획일성을 (규제하려면) 여가부부터 징계를 받아야 된다. 거기(여가부)는 염색한 사람도 한 명도 없고 다 검은색 머리인데 그런 여가부가 무슨 외모 획일성을 비판하느냐”고 했다.

하 의원은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진선미 장관은 검열 독재 발상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유신시대로 돌아가고자 하는, 외모에 어떤 지침을 두겠다는 반헌법적 발상에 대해서 진선미 장관은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으면 여가부를 반헌법적 기구로 명시하고 여가부 해체 운동에 들어갈 것임을 경고하는 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한국당도 장능인 대변인 명의로 낸 논평에서 “정부가 이제는 국민 외모까지 간섭하고 통제하려 하는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가 회수하는데 급급하고 있다. 국민은 문재인 정부의 외모 통제가 무서워 어디 얼굴이나 들고 다니겠는가”라고 비판했다.

야당 정치인들의 자극적인 발언은 언론을 통해 확산됐고 “정부가 방송 출연자의 외모까지 간섭한다”는 식으로 왜곡됐다. 그러나 여가부의 이번 안내서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30조 양성평등 조항을 반영해 작성된 것으로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해당 규정에는 방송은 ▲남·녀 양성을 균형 있고 평등하게 묘사하고 성차별적인 표현을 해서는 안 되며 ▲특정 성(性)을 부정적·희화적·혐오적으로 묘사하거나 왜곡하면 안 되고 ▲성폭력, 성희롱 또는 성매매, 가정폭력 등을 정당화할 우려가 있는 내용을 방송해서는 안 되며 ▲성폭력과 성매매 등을 지나치게 자세히 묘사하거나 선정적으로 재연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건정 여성가족부 여성정책국장은 “개인의 다양성, 사적 취향, 지향점에 대한 다양한 모습을 (방송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데 획일적인 기준을 자꾸 강조하는 프로그램들은 무리가 있다. 그래서 과도한 강조는 자제해 달라는 것이 저희의 목적”이라며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것 보다는 이러한 표현(외모지상주의 등)으로 인해서 생길 다른 효과들로 인한 다양한 사회의 미래상의 위배가 없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규제나 검열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위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