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자세히 공개해 논란이 됐던 강효상 의원(왼쪽)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뉴시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자세히 공개해 논란이 됐던 강효상 의원(왼쪽)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주미 한국대사관 고위급 외교관이 고등학교 선배인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비공개 통화 내용을 유출한 사태가 확전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청와대가 이번 논란에 대해 ‘엄정대응’ 방침을 밝힌 가운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강효상 의원을 외교상 기밀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줄곧 주미 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는 해당 외교관이 강 의원과 그간 사실상의 ‘공모’를 해온 것은 아닌지, 기밀 유출 과정에서 강 의원의 강요가 있었는지 여부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송기헌 민주당 법률위원장은 24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 강효상 의원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다. 법률위 관계자는 “피고발인인 강 의원이 지난 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3급 기밀에 해당하는 외교상 기밀을 누설했고 피고발인의 고교 후배인 참사관으로부터 정상간 통화내용을 전달받아 외교상 기밀 탐지·수집했다. 특히 일반적인 공무상 비밀누설죄와 달리 외교상기밀을 탐지·수집한 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처벌규정을 두고 있으므로 본 조에 의해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형법 제113조는 ‘외교상의 기밀을 누설한 자’ 또는 ‘누설할 목적으로 외교상의 기밀을 탐지 또는 수집한 자’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외교상 기밀 누설죄를 명시하고 있다. 민주당은 강 의원에게 형법 113조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 외교관에 대해서는 외교부 내부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점을 감안해 피고발인에서 제외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우선 (강 의원에게 기밀을 유출한) 공무원은 자기 권한에 없는 자료를 열람했다. 자기 직책에 부합하는 비밀 자료 열람 권한을 넘어서서 보는 것은 위법 행위”라며 “자기가 인지한 외교상 기밀 내용을 외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 것도 불법이다. 또 강 의원이 이것을 대중에게 공표한 것은 면책 특권 상 보호받을 수 없는 내용”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해당 외교관이 강 의원에게 외교 기밀 내지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왔다는 내용을 파악하고 강 의원의 ‘배후 조종’ 가능성에 집중하고 있다. 홍 수석대변인은 “정부에서 조사 중인데 (외교관이 강 의원에게 정보를 유출한 것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강 의원과 이 외교관이 서로 공모관계 또는 강 의원이 배후에서 조종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갖고 있다”고 했다. 이 외교관은 감찰 과정에서 강 의원이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을 요구해서 전달한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 보수진영도 ‘국익 훼손’ 우려 목소리

이번 국가기밀 유출 사태는 보수진영에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사안이다. 한국당은 강 의원이 공개한 내용이 ‘국가기밀’ 수준의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역으로 청와대의 사과와 해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같은 보수진영은 물론 한국당 내부에서조차 이번 사태에 따른 ‘국익 훼손’ 여파를 우려하는 쓴소리가 나왔다.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정상 간 통화 내용이나 외교 교섭의 비밀도 지킬 수 없는 나라는 주권국가로서 국제적 신뢰를 얻을 수 없고 민감한 정보를 공유 받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그 내용이 정부를 공격하는 데 정치적으로 아무리 유리한 것이라 하더라도 외교기밀을 폭로하는 것은 더 큰 국익을 해치는 범죄행위”라며 “강 의원의 한미정상 통화 내용 공개는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을 상종하지 말아야 할 국가로 만드는 행위로서 국민의 알권리와 공익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일갈했다.

천 이사장은 이어 “한국당이 강 의원의 폭로를 두둔한다면 공당으로서의 자격을 의심받을 큰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진영논리나 당리당략의 차원이 아니라 초당적 국익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강 의원이 문재인 정부를 공격할 소재를 제공하는데 아무리 큰 공을 세웠어도 차기 집권을 꿈꾸는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출당을 선택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차제에 국회의원이 국가기밀을 누설할 경우 의원직 상실을 넘어 반드시 실형을 살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도 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위원장인 윤상현 한국당 의원 역시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의 최우선 가치는 국익이다. 당파적 이익 때문에 국익을 해치는 일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며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외교기밀 누설 사태를 대한민국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으로서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한미 관계를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민감한 시기에 국익을 해치는 무책임한 행동을 했다”고 했다.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현직 외교관이 국가 기밀을 외부에 유출한 것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한미 간 정상 간에 오고간 내용은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사안으로 이것을 외부에 유출한다는 것은 사실상 간첩행위”라며 “현직 외교관이 국가기밀을 외부에 유출한 것은 심각한 국익훼손으로 철저한 진상을 조사해서 관련자 전원에게 응당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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