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공무원 휴대폰 사찰 관련)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자세히 공개해 논란이 됐던 강효상 의원(오른쪽)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 / 뉴시스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청와대 특감반 진상조사단 회의(공무원 휴대폰 사찰 관련)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자세히 공개해 논란이 됐던 강효상 의원(오른쪽)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 / 뉴시스

시사위크=은진 기자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공개한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 파문이 확전되면서 한국당 내부도 곤혹스러운 분위기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외교부 역시 강 의원을 형사고발하기로 하면서 사태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 의원에게 해당 통화 내용을 유출한 외교관이 “공개될 줄 몰랐다”고 한 진술이 알려지면서 사태가 한국당에 불리한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부는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외교기밀 유출 논란에 연루된 주미대사관 외교관 3명에 대해 중징계 의결을 요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직접적으로 강 의원에게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을 전달한 외교관 A씨를 포함해 나머지 2명은 비밀 관리업무를 소홀히 해 보안업무 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 징계위는 오는 30일 개최될 예정이다.

외교부는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 특히, 외교 기밀을 유출한 직원에 대해서는 조사 및 보안심사위원회 심의 결과를 토대로 관련 법령에 따라 형사 고발키로 결정했다”며 “외교기밀 유출과 관련하여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외교기밀을 언론에 공개한 강효상 의원에 대해서도 형사고발 조치 예정”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형법 제113조는 ‘외교상의 기밀을 누설한 자’ 또는 ‘누설할 목적으로 외교상의 기밀을 탐지 또는 수집한 자’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외교상 기밀 누설죄를 명시하고 있다.

지난 24일 이미 강 의원을 외교상 기밀 누설죄 위반 혐의로 형사고발한 민주당은 한국당 차원의 개입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이날 긴급 외교안보통일 자문회의에서 “지금 한국당이 강 의원을 비호하는 듯한 입장을 내놓는 것을 보면 이러한 범죄행위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제1야당까지 관여한 행위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사익을 위해 국가기밀을 악용하고 당리당략을 위해 국가조직을 동원하는 국정농단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단호히 조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굴욕외교’→‘상식’… 한국당, 기밀 여부에 초점

외교기밀을 유출한 외교관 당사자의 입장이 공개되면서 강 의원은 조금 누그러진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외교관 A씨 측 변호인은 이날 한 언론에 전달한 입장문에서 “강 의원이 기자회견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고 이를 정쟁의 도구로 악용할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며 더욱이 ‘굴욕 외교’로 포장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A씨의 입장이 사실이라면 그동안 “공익제보”라던 한국당의 입장은 거짓이 된다.

강 의원을 비롯해 나경원 원내대표 등 한국당은 이번 의혹에 대한 비판에 “이 정권의 굴욕 외교와 국민 선동의 실체를 일깨워준 공익제보 성격이 강하다”라고 주장해왔다. 한미 정상 통화 내용을 공개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 방문을 요청했다고 주장한 강 의원 역시 “이 정권의 굴욕 외교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었다.

하지만 A씨의 진술이 알려지면서 강 의원은 “판례에서 기밀은 기본권 보호 차원에서 정말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정부가 얘기하는 1~3등급의 자의적이고 행정편의적인 분류가 아니다”라며 “일본에 오는 미국대통령에게 한국도 방문해달라는 것이 상식이지 기밀인가”라고 다시 반문했다. 방한 요청은 ‘상식’이기 때문에 기밀이 아니라는 논리다. ‘굴욕 외교’라고 비판해왔던 기존 주장과는 다소 배치되는 부분이다.

한국당 역시 ‘공익제보’ 논리 대신 해당 통화 내용이 국가기밀인지 사실관계를 따져보는 것이 우선이라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민주당 싱크탱크 수장인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을 만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의 초점이 옮겨간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황교안 대표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 사안에 대해 “문재인 정권 들어서 한미동맹과 대미 외교가 크게 훼손 되어가고 있다는 핵심과 본질을 외면하고 야당 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해서 기밀누설 운운하면서 고발하는 게 과연 온당한 여당의 모습인가”라며 “구체적인 법 적용에 있어서는 사실관계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죄가 되려면 엄격한 범죄 구성 요건이 필요하기 때문에 별도로 확인을 해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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