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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씨네
[인터뷰] 김희애의 도전, 그리고 용기
2019. 11. 14 by 이영실 기자 swyeong1204@sisaweek.com
배우 김희애가 영화 ‘윤희에게’(감독 임대형)로 관객과 만난다. /리틀빅픽처스
배우 김희애가 영화 ‘윤희에게’(감독 임대형)로 관객과 만난다. /리틀빅픽처스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오늘(14일) 개봉한 영화 ‘윤희에게’(감독 임대형)는 우연히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윤희(김희애 분)가 잊고 지냈던 첫사랑의 비밀스러운 기억을 찾아, 설원이 펼쳐진 여행지로 떠나는 감성 멜로다.

지난달 열린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선정돼 화제를 모으기도 한 ‘윤희에게’는 모녀의 여정을 통해 여성의 연대와 한 여성의 성장, 국경·성별을 뛰어넘는 멜로 등을 섬세하게 담아내 호평을 받고 있다. 특히 퀴어 소재를 다루고 있음에도, 자극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 어떤 영화보다 잔잔하고, 편안하고, 따뜻하게 녹여내 위로를 전한다.

8할은 김희애 덕이다. 모든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윤희 그 자체로 완전히 분해 극을 이끈다. 남편과의 이혼 후 홀로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일상의 고단함부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상처를 달래는 처연함까지 고스란히 담아낸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윤희의 감정 변화를 미묘한 표정과 눈빛으로 섬세하게 그려내 감탄을 자아낸다.

연출을 맡은 임대형 감독이 “연출자가 아닌 감상자로서 빠져들었다”고 극찬을 보냈을 정도로 김희애는 단단한 연기 내공으로 캐릭터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윤희 그 자체를 구현해냈다.

완벽한 열연을 펼친 그지만,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데뷔 후 첫 퀴어물 도전이기도 하고, 상대 배우와의 호흡을 통해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 없이 오롯이 홀로 느끼고, 표현해야 했다. 개봉에 앞서 <시사위크>와 만난 김희애는 “어려운 작업이었지만, 탄탄한 시나리오 덕에 가능했다”며 미소를 지었다.

‘윤희에게’로 데뷔 후 처음으로 퀴어물에 도전한 김희애. /리틀빅픽처스
‘윤희에게’로 데뷔 후 처음으로 퀴어물에 도전한 김희애. /리틀빅픽처스

-개봉을 앞둔 소감은.
“반응이 궁금했다. 어떻게 보셨는지. 의도했고, 추구했던 생각을 같이 느낄 수 있을까 했다. 그런데 저보다 더 잘 이해를 해주셔서 놀랐다. 마음을 읽어주신 것 같아서 위로가 됐다. 퀴어 코드가 있고, 배경도 이웃나라(일본)라 그쪽으로 초점이 맞춰지지 않을까 했는데, 시사회 후 반응을 보니 영화 자체로 평가를 해주더라. ‘어떤 사랑이라도 괜찮다고 위로해주는 영화’라고 해주셔서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았다. 내가 너무 걱정을 했구나 싶더라.”

-어떤 점이 가장 끌렸나.
“어떤 작품이든 시나리오가 비어있으면 못하겠다. 의도가 보이는 거 있잖나. 그런 건 못하겠다. 그런데 이 영화는 민감할 수 있는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써 내려간 것이 신선하게 와닿아서 좋았다.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마음을 순수하게 통찰해야 했다고 할까. 영화의 톤도 좋았다. 일반적으로 돌직구도 잘 안 하고 많이 생각하고 얘기하게 되는데, 극에서는 강렬한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지 않나. 그런데 우리 영화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더 사실적으로 느껴졌다.”

-동성을 향한 윤희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어렵진 않았나.
“세상에는 여러 유형의 사람이 있고,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친구 간의 우정, 여러 종류가 있는데 ‘윤희에게’ 속 인물의 감정은 조금 더 특별하다. 이해하기 위해 퀴어 소재의 영화도 보고, 다른 멜로물도 참고했다. 많은 작품을 접하면서 오히려 이런 쪽의 사랑이 더 절실하게 느껴졌고, 감동을 주더라. 배우니까 최대한 캐릭터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래야만 관객들도 캐릭터에 녹아들어 함께할 수 있지 않겠나. 그 외에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윤희의 감정 변화를 담아내야 했는데, 상대 배우와 마주하는 건 많지 않아서 감정을 잡아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겠다.
“맞다. 회상이나 그동안 히스토리가 나와야 감정이 단계적으로 올라가는데, 혼자만 비밀을 간직하다 터트려야 하는 거라 어려웠다. 혼자 마음속으로 워밍업을 하고,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게 있어야 했다. (윤희와 쥰이 만나는 장면이) 너무 중요한 신이라 부담이었다. 나카무라 유코(쥰 역) 씨와 호흡을 맞출 때도 고민이 됐다. 리허설을 할 수 없었고, 잠깐 동선을 맞춰보는 정도였다. 그런데 하다 보니 무척 슬펐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탄탄한 시나리오 덕인 것 같다. 연기로 올라가는 계단은 없었지만, 물 흐르듯 흘러가는 시나리오 덕에 가능했다.”

‘윤희에게’에서 윤희를 연기한 김희애 스틸컷. /리틀빅픽처스​
‘윤희에게’에서 윤희를 연기한 김희애 스틸컷. /리틀빅픽처스​

-윤희와 딸 새봄(김소혜 분), 모녀의 여정을 담은 드라마이기도 하다. 모녀의 관계를 남자인 임대형 감독이 섬세하게 담아내서 놀랐다.
“실제로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라서 그런지 되게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웃겼다. 딸의 당돌함이 귀엽기도 하고, 쿨한 면모도 좋더라. 애드리브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너무 놀라운 거다. 남자 감독이 모녀의 심리를 어떻게 이렇게 잘 담아냈는지. 이렇게 천재 같은 사람이 평소에는 그렇게 평범하고 수줍은 소년 같다니. 그 속에 가려진 천재의 모습을 보면 굉장히 흐뭇하다.”

-지난해 인터뷰에서 ‘머리 자르고 남자 역할이라도 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윤희에게’도 그렇고 최근 충무로에 여성 중심 서사의 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반응도 좋다. 이런 변화가 반가울 것 같다.
“영원한 게 어디 있겠나. 분명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 멀었다. 차곡차곡 더 쌓아서 이런 변화가 잘 자리 잡길 바란다. 연기뿐 아니라, 모든 분야 전 세계적으로 그렇지 않나. ‘82년생 김지영’도 극장에서 봤다. 재밌더라. 재밌으면 되는 것 같다. 강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현실이 느껴지더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예전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서 살았다. 약자였으니까. 소외되고 밀려서 사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는데, 이런 변화가 나오는 것을 보니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지고 살만한 세상으로 변하는구나 싶다. 긍정적으로 보고 있고, 더 발전할 거라 생각한다.”

-딸 새봄을 연기한 김소혜와의 호흡은 어땠나.
“좋았다. 밀어붙이는 뚝심이 느껴지더라. 연기는 나이 많다고 잘 하는 게 아니고 공식도 없는 것 같다. 젊은 배우들을 보며 반성도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그냥 직업으로 했다. 그런데 요즘 친구들은 절실하고 프로페셔널 하더라. 존경스럽고, 벌써 깨우친 게 부럽기도 하다.  나는 뒤늦게라도 깨우쳐서 다행이다. 지금보다 즐기지 못했다. 당시에는 사회적 편견도 있었고, 제작 환경도 열악했다. 지금은 도와주는 분들도 많고 환경도 좋아지고 그래서 점점 더  좋다.”

비로소 배우가 됐다는 김희애. /리틀빅픽처스
비로소 배우가 됐다는 김희애. /리틀빅픽처스

-한 라디오 방송에서 ‘비로소 배우가 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의미인가.
“더 소중하고 감사해졌다. 축복받은 느낌이다. 과거에 나는 배우가 아닌 것 같고, 누가 사인해달라고 하면 주눅이 들었다. 내가 뭐라고 싶었다. 보는 사람은 건방지게 보였겠지만, 나는 수줍었다. 내 이름을 왜 써야 하는지, 어색하고 쑥스러웠다. 그런 모습을 보고 친한 친구들이 ‘왜 그러냐. 기쁘게 해야지. 절대 그러지 말라’고 하더라. 반성했었다. 지금도 사실 쑥스럽긴 한데, 정신 차렸다. (웃음)”

-배우 김희애를 자극하는 게 있다면.
“표면적인 건 다른 사람의 연기. 또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데 하나도 연출되지 않고 조명도 없이 단출하게 찍으면서도 굉장히 감동을 주지 않나. 그 사람들이 하는 표현을 보면서 자극을 받는다. 하나를 꼽아 얘기하긴 어렵지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그게 모여서 10년이 되고 또 인생이 되듯, 연기도 모든 게 모여서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