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9 13:34
이세돌의 은퇴와 여의도의 세대교체 바람
이세돌의 은퇴와 여의도의 세대교체 바람
  • 정호영 기자
  • 승인 2019.11.20 1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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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13일 제주 서귀포시 해비치앤드리조트호텔 제주에서 개최된 '2018 해비치 이세돌 대 커제 바둑대결'에서 이세돌 9단이 대국장에 들어오고 있다. /뉴시스
지난해 1월 13일 제주 서귀포시 해비치앤드리조트호텔 제주에서 개최된 '2018 해비치 이세돌 대 커제 바둑대결'에서 이세돌 9단이 대국장에 들어오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정호영 기자  프로기사 이세돌(36) 9단이 지난 19일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한국바둑의 간판스타로서 전성기 이후에도 정상권을 유지하던 기사가 마흔살도 되기 전에 프로 면장을 내려놓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1995년 입단한 이 9단의 프로기사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현란한 행마와 귀신 같은 수읽기로 총 50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린 당대 최고의 기사였다. 다만 이 9단은 실력 외적으로도 특유의 직선적·돌발적 언행으로 바둑계 안팎에서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 9단의 은퇴한 표면적 이유는 '실력 저하'로 알려졌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기원과의 불협화음이 그의 은퇴 결정에 한몫했다는 것이 바둑계의 중론이다. 그는 한국기원의 불합리한 제도를 비판하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줄곧 목소리를 냈고 행동으로 실행했다.

승단대회 폐지와 프로기사회 적립금 문제 제기가 대표적이다.

과거 대다수 프로기사들은 별다른 혜택이 없는 승단대회에 어쩔 수 없이 참여해왔다. 정상급 기사는 승단대회로 인해 대국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혹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 9단은 "실력에 맞게 단을 매기든지, 단 제도를 폐지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낫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이 9단은 3단까지 승단한 이후 승단대회를 보이콧했고, 2003년에 3단인 채로 국제대회를 우승했다. 바둑계에서 승단제가 진지하게 논의되기 시작했고, 한국기원은 승단대회 폐지 및 실력에 따른 '특별승단제'를 도입했다. 이 9단의 숱한 후배들은 이 제도의 수혜자가 됐다.

이 9단은 한국기원 친목단체인 프로기사회 정관에 불합리한 규정이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며 2016년 프로기사회 탈퇴라는 초강수를 던지기도 했다.

그는 기사회에 소속되지 않은 기사는 기전에 참가할 수 없다는 점과, 기사회가 상금을 일률 공제(3~5%)하는 연계 조항의 부적절성을 짚었다. 한국기원은 이미 상금의 10%를 선공제하고 있다. 국세까지 고려하면 '3중 공제'가 된다. 이 9단은 기사회 가입을 기사 개인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기원은 올해 기사회 소속 기사만 기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정관을 개정했고, 이 9단은 한국기원을 상대로 기사회의 공제금 반환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9단의 반발은, 바둑계라는 경직된 조직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하는 후배 기사들을 위해 불합리한 제도를 고쳐놓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 9단의 은퇴로 바둑계의 역사는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으나, 그가 행동으로 보여준 변화 의지는 현 정치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21대 총선을 5개월 앞둔 여의도에도 세대교체 바람이 크게 일었다. 최근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 등 여야 중량급 인사들의 불출마 선언이 봇물처럼 터져나오며 인적쇄신론이 파도처럼 몰아쳤다.

이같은 세대교체·인적쇄신 목소리와 함께 혁신·미래·정의·공정이라는 빛좋은 단어들이 연일 정치권을 수놓는 상황이다. 상대 정당에 대한 비판은 차치하고라도, 자신의 기존 소속 정당이나 동료를 부정하는 강경 발언까지 서슴지 않으며 저마다 총선 승리를 향한 밑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보수야권은 더욱 치열하다. 총선에서 '반문(反文)연대'를 기치로 한 보수대통합, 최소한 선거연대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범여권에 대패할 수 있다는 인식이 만연하다. 현 시점에서 한국당과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변혁), 우리공화당, 자유와 민주4.0 등이 통합 논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통합의 변수는 정당 득표율에 비례해 지역구 의석과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의 통과 여부다. 우리공화당은 물론 신당 창당을 추진 중인 변혁이나 자유와 민주4.0 역시 소수당에 유리한 선거법 개정 여부에 따라 독자노선을 타거나 대통합 과정에서 몸값을 높일 시도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의도가 정치공학적 이합집산 및 새로운 길 찾기에 골몰하는 가운데, 이 9단과 같은 치열하고 뚜렷한 변화의 노력은 눈에 띄지 않고 있다.

변혁이 개혁보수 신당 창당을 계획하면서 동시에 한국당에 내건 통합 조건, 즉 '탄핵의 강 건너기', '개혁보수 수용', '낡은 집 허물고 새집 짓기' 등의 제안은 하나의 예시다. 이에 내부 의원조차 "한국정치와 사회에 대한 진정성 있는 문제 제기와 시대 고민이 없다"고 불만을 표출하는 실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건 하나를 놓고도 보수야권 안에서는 수년 간 갑론을박을 벌이는 등 타협이 쉽지 않은 상황인 점도 이들이 어떤 진정성 있는 행보를 보이는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이 9단은 스무살이던 지난 2003년 박영선(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당시 MBC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어떻게 살고 싶으냐"는 질문에 뼈있는 말을 남겼다.

바둑계의 발전도 이루고 싶고, 승단 제도도 바꾸고 싶다.
그런 건 선배가 해줘야 하지 않은가.
내가 스무살이고 아직 어리기 때문에 못하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면 그런 걸 변화시키고 싶다.
기존 시스템이라든지, 그런 걸 변화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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