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민생경제연구소 공동기획

소처럼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는 듯하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민생 경제’ 위기는 단 한 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 없다. 다양한 구조적인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중에는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각종 불공정한 시스템도 중심축 역할을 한다. <본지>는 시민활동가인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과 주요 민생 이슈를 살펴보고,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해보고자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말이다. [편집자주]

임대차 3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이 국회를 통과한지 두달째를 맞이한 가운데 해당 정책의 의미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시사위크=이미정 기자  집.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이 중 ‘주거 안정성’을 유독 중시하는 문화를 갖고 있다. 나아가 내가 소유한 집에 살아야 안정적인 삶을 꾸려갈 수 있다고 믿는 풍토가 있다. “내 집을 마련해야 안정적으로 살지” “열심히 일해서 집을 사야지” 등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한번쯤을 들어봤을 것이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이런 사회 풍토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내 집 마련’이 쉽지 않아진 현실에서 이를 강요만 하는 사회가 합리적인지에 대한 의문이다. 그는 설령 내집이 아닌, 남의 집을 빌려 쓰고 살더라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적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즉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해선 세입자를 위한 정책도 마련돼야 한다는 시각이다. 

◇ “임대차3법, 정통 세입자 보호를 위한 사실상 첫 정책” 

그런데 최근 세입자 보호 정책에 패러다임을 바꾸는 중요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바로 임대차3법(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전월세신고제)이다. 안 소장은 이 법안이 세입자들의 지속 주거권을 보장하고 주택 임대차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임대차3법이 전월세시장의 혼란과 가격 인상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청년세대의 주거 부담만 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청년 주거권 운동가인 권지웅 빌려쓰는 사람들 대표이사의 생각은 달랐다. 기자는 안 소장과 함께 지난 16일 서울 여의도 민생경제연구소 사무실에서 권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왼쪽)과 권지웅 빌려쓰는 사람들 대표(오른쪽)는 임대차3법이 기존 주가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세입자 보호를 하는데 있어 중요한 첫걸음을 뗐다고 보고 있다. /이미정 기자

권 대표는 임대차3법 도입을 촉구해온 인사다. 그는 최근 법안이 통과된 후, 친구한테서 연락을 받고 감동한 일화를 들려줬다. 그의 친구는 “네 덕분에 돈을 벌어서 고맙다”며 밥을 사겠다는 이야기를 건넸다고 한다. 임대차3법이 통과된 후, 자주 이사를 다니면서 드는 비용을 아끼게 됐다는 게 권 대표 친구의 말이었다. 

임대차3법은 전월세신고제·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 등을 핵심으로 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과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골자로 하는 법안이다. 해당 법안은 세입자의 주거권을 대폭 강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는 임대차3법 중 핵심 법안이다. 우선 계약갱신청구권은 세입자에게 1회에 한해 기존 계약을 2년 연장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안심거주 기간이 기존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나게 셈이다. 다만 주택에 집주인이나 직계존속·비속이 실거주할 경우엔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렵다. 

권지웅 대표는 임대차3법을 놓고 “정통 세입자를 위한 정책은 처음 나온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미정 기자

또 전월세상한제는 집주인이 전월세 임차료를 과도하게 올리는 것을 억제하는 법안이다. 해당 법안엔 기존 세입자와 전월세 계약을 갱신할 때 5% 이상 올려선 안 된다는 내용을 담겼다. 두 법안은 지난 7월 말 국회를 통과한 후 공표 즉시 시행됐다. 

아울러 전월세신고제는 주택 임대차 계약 시 임대차 계약 당사자(집주인과 세입자)가 30일 이내에 주택 소재지 관청에 임대차 보증금 등 임대차 계약 정보를 신고해야 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2021년 6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임대차3법을 놓고 권 대표는 “정통 세입자를 위한 정책은 처음 나온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우리나라 주거 정책은 집을 사게 하는 것, 즉 자가촉진 정책에만 집중돼 있었다”며 “세입자를 위한 정책도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미미한 수준이었다. 전세자금 대출 지원 등 금융지원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 차원의 정책이 있었지만 빌려 쓰는 사람들(임차인)이 있는 그대로 잘 사게 하는 제도적 토대는 제대로 없었다고 본다. 하지만 임대차3법으로 인해 세입자 보호의 중요한 첫 걸음을 뗐다”고 설명했다. 

◇ 집 반드시 소유해야 하나?… “세입자들이 있는 그대로 행복할 수 있는 세상” 

안진걸 소장도 임대차3법의 통과 의미를 되짚었다. 안 소장은 “임대차3법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나온 민생법안 중 가장 주요한 성과로 본다”며 “세입자들이 쫓겨나지 않고 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번 임대차3법이 단순한 민생·복지대책을 넘어 경제대책의 효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점쳤다. 

안 소장은 “세입자들이 이사를 하게 되면 이사비와 공인중개사비용으로만 적잖은 돈을 쓰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최소한 4년간은 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만큼 기타 주거비용 부담도 이전보다는 줄어들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아낀 비용은 내수활성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또 주거 불안정이 경감되면 결혼·출산 등 미래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도 지금보다는 늘어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청년들 중에는 임대차3법이 통과된 후 이전보다는 주거불안감이 낮아졌다고 얘기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권 대표는 지난 3일 ‘임대차3법으로 무엇으로 달라졌을까’라는 주제로 열린 온라인 대담에서 한 청년 세입자가 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안진걸 소장은 “임대3법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나온 민생법안 중 가장 주요한 성과로 본다”며 “세입자들이 쫓겨나지 않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토대가 마련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미정 기자 

권 대표의 설명에 따르면 한 청년 세입자는 최근 10년간 매년 이사를 다녀야 했다고 한다. 자주 이사를 다니다보니 살고 있는 동네에 정을 붙이기도 어려웠다던 그는 최근 임대차3법이 통과한 후 생각이 달라졌다고 한다. 이제는 살고 있는 동네에 관심이 생겼다는 것이다. 당장 주거비용이 경감되는 큰 변화가 일어나진 않았지만 마음의 편안함이 생겼다는 게 청년세입자의 설명이었다. 

권 대표는 “그 청년 세입자는 이번에 임대차3법이 통과되면서 그간 자신이 갖고 있었지만 외면해왔던 (주거) 불안을 응시하게 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에 임대차3법으로 무언가 구조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대3법을 둘러싸고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임대차3법이 전월세시장의 혼란과 가격 인상을 부추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임대차보호법이 통과된 후, 서울 등 수도권 전역의 전세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전세 공급물량이 줄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이 같은 우려는 커지는 모양새다. 

안 소장과 권 대표는 이 같은 우려에 다른 시각은 보였다. 권 대표는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의 전세가들이 상승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를 전체 주택의 임대가격 상승으로 확대해서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며 “아직 제도가 도입된 지 두 달도 되지 않는 시점이고, 구체적인 현황도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일반 다세대 주택들의 경우, 가격 흐름이 변동이 없다는 얘기도 있다”고 말했다. 

전세 거래량이 줄어들고 있는 추세에 대해선 “기존 세입자들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해 이사가지 않고 그대로 살고 있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며 “전세 거래량이 줄었다고 이를 문제가 있다고 보는데, 오히려 기존 세입자의 주거 환경이 안정되고 있다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전세 물량이 줄고 반전세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선 “반 전세가 확대되고 있는 현상은 이미 수년 전부터 이어져온 현상”이라며 “임대차3법 도입된 것과 반드시 연관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답했다.  

◇ 주거 정책의 패러다임 바뀌나 

권 대표는 임대차3법이 주거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뀌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권 대표는 “아직도 우리나라 정부는 국민이 집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자가촉진 정책에만 머물러 있다”며 “집값을 잡겠다고 주택 공급량을 늘리고, 신도시를 짓고 있다. 하지만 자가 주택 점유율은 크게 상승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주택이 없어서 집을 못 사는 게 아니라,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주택이 없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사정이 이런데, 계속 자가촉진 정책만 펼치는 것은 비합리적인 정책이라는 게 그의 의견이다. 

이에 그는 정부가 무리하게 내 집 마련만을 촉구할 게 아니라, 임차인들의 편안하게 거주할 수 있는 환경적 토대를 만드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 대표는 “반드시 집을 소유해야만 집으로서 가치와 안정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빌려서 사는 집도 내 집이다. 임차한 집에서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환경만 마련된다면 굳이 집을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우리나라 세입자들은 정당한 임차료를 내고 살고 있음에도 자기 권리를 찾는데 소극적이었다. 이번 임대차3법을 계기로 보다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이미정 기자  

아울러 임대차3법이 세입자들과 임대인들 간의 관계도 보다 평등하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권 대표는 “사실 우리나라 세입자는 임대인에게 자기 주장과 요구를 하기 어려워하는 풍토가 있다”며 “정당한 임차료를 내고 살고 있음에도 자기 권리를 찾는데 소극적이었다. 이번 임대차3법을 계기로 보다 당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임대차3법이 어렵게 도입됐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특히 자금력이 없는 청년 세입자들은 열악한 주거 환경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수도권의 경우, 주거의 질은 낮으면서 높은 임대료를 부담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에 권 대표는 세입자 지원 정책들이 적극적으로 마련되는 데 힘쓰겠다는 각오다. 아울러 표준임대료 제도 도입과 주거 질 개선 제도 마련을 위해서도 발로 뛰겠다는 각오를 전했다. 권 대표는 올해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면서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처음으로 선언한 인사다. 과연 세입자들이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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