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Extinction)’. 지구상에 존재하던 어떤 종이 모종의 이유로 세계에서 사라져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지구의 입장에서 멸종은 항상 일어나는 작은 사건일 뿐이다. 지구의 생명역사가 시작된 38억년 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구상의 생명체 대부분이 사라지는 ‘대멸종의 시대’가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멸종의 원인이 기존의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 아닌, 인간이 직접적 원인이 된 멸종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오염, 불법 포획부터 지구온난화까지 우리 스스로 자초한 결과물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제 지구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희 스스로 자초한 재앙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있는가.” [편집자 주]

국내 습지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수달은 해당 지역의 건강도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종일만큼 생태계 균형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하지만 수달은 남획, 서식지 파괴 등으로 현재 멸종위기에 처하고 말았다./사진=Getty images, pixabay

시사위크|화천=박설민 기자  앙증맞은 모습과 달리 수달은 국내 강·습지 생태계에서 당해낼 자가 없는 최상위 포식자로 우리나라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실제로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에서는 수달을 해당 지역의 수(水) 환경 ‘건강도’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종(Indicator species)’으로 분류한다. 수달이 적절한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 지역은 생물군 균형이 유지되는 건강한 생태계라는 것이다.

특히 수달은 우리나라에서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외래종 블루길·배스·황소개구리 등의 천적으로 토종 물고기와 수생 생물을 보호하는 ‘강의 파수꾼’이라고도 불린다. 수달은 하루에 자기 몸무게의 15%에 달하는 무게의 먹이를 먹어야 하는데 수달은 작은 물고기들은 열량 소모에 비해 배가 부르지 않기에 25cm 이상의 큰 물고기를 사냥감으로 선호한다. 때문에 토종 물고기보다 훨씬 큰 생태계교란종 블루길이나 배스는 수달에겐 ‘최애사냥감’이라 볼 수 있다. 

수달은 우리나라에서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외래종 블루길·배스·황소개구리 등의 천적으로 토종 물고기와 수생 생물을 보호하는 ‘강의 파수꾼’이라고도 불린다. 사진은 배스를 사냥하고 있는 수달의 모습./ 뉴시스

◇ 과거엔 남획, 현재는 서식지 파괴 등 위협에 놓인 수달

하지만 이렇게 생태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전 세계의 수달들은 모두 현재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상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서식하는 유라시아 수달의 경우, IUCN의 적색 리스트에서 NT(위기근접종)으로 고시돼 있다.

한국수달연구센터 전문가들은 수달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수달 모피 획득을 위한 남획이라고 봤다. 수달의 털가죽은 매우 부드럽고 윤기가 흐른다. 이는 주로 물속에서 생활하는 수달이 체온 유지를 위해 매우 촘촘한 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단위면적당 털 분포도가 지구상 모든 동물가운데 가장 높다. 

우수한 성능을 가진 수달의 모피는 ‘왕’을 상징하는 모자나 옷의 제작에 주로 사용됐다. 때문에 조선시대에 선조들은 중국의 원나라에는 한 해 1,000장의 모피를, 명나라에는 한 해 3~400장을 조공으로 바쳤다. 유럽 역시 1500년대 말부터 수달 모피를 얻기 위한 대규모 사냥을 진행했다. 그 결과 수달은 지구상에서 개체수가 급속도로 줄어들게 됐고, 멸종위기를 맞게 됐다.

세계적으로수달이 멸종위기에 처한 이유는 모피때문이다. 우리나라만해도 조선시대무렵, 중국에 조공을 위해 한해 수백장이 넘는 수달 모피를 바쳤다./ 사진=해외 쇼핑 사이트 캡처

자연 생태계를 유지하는 핵심종인 수달의 개체수가 급감하자 20세기 후반 들어 세계 각국의 보호단체 및 정부는 수달 보호를 위한 행동에 나섰다. 우리나라 역시 수달을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330호에도 등록한 상태다.  

다행스럽게도 국립생태원과 한국수달연구센터 등 연구기관에 따르면 수달은 남획이 크게 줄면서 몇 십년간 서서히 개체군이 회복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수달의 멸종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인간의 개발활동으로 인해 수달이 살아갈 보금자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하천개발사업을 할 때 설치되는 댐과 수중보는 수달에게 위협적인 장애물이다. 댐과 수중보는 수달들이 강의 상·하류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도록 차단해버리는데, 이는 수달의 먹이 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 또한 하류로 내려왔던 수달들은 다시 상류에 있는 보금자리로 돌아가지 못해 길을 헤매다 도로변에서 로드킬을 당하기도 한다.

어부들이 물고기를 잡기 위해 설치한 통발 그물도 수달에겐 치명적인 덫이 될 수 있다. 수달이 통발 속에 들어갔다가 갇히게 되면 그대로 익사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국립생태원 멸종위기종복원센터, 한국수달연구센터가 동구 대림동 안심습지 인근 금호강에 방사한 수달 중 한 마리가 통발에 갇혀 폐사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국수달연구센터 김대산 연구원은 “호기심 많은 동물인 수달이 먹이가 통발 안에 있는 것을 보고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해 익사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수달은 뛰어난 수영선수지만 인간과 마찬가지로 허파로 숨을 쉬는 포유동물이기에 물속에서 4분 이상을 견디지는 못한다”고 설명했다.

댐, 수중보 등이 설치되면서 수달의 서식지는 급속도로 줄어들고 말았다. 이에 보금자리를 찾아 헤매던 수달들은 도시로 나왔고, 로드킬을 당해 목숨을 잃는 일이 많아졌다./ 뉴시스

◇ “개체수 회복 중이지만”… 보호용 격자도입 , 생태섬 조성 등 보호 조치 필요

한국수달연구센터 전문가들은 앞서 지적한 위험요소들로부터 수달을 보호하기 위해 △인공 보금자리 설치 △수달 생태섬 조성 △수달 보호용 격자 설치 등의 방안을 시행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먼저 ‘인공보금자리 설치’는 바윗돌이나 기타 인공재료를 이용해 수달이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을 말한다. 위치는 외부로 부터의 간섭이 적고, 인근 지상부(도로, 산책로 등) 보다 낮은 강가 근처의 지역이 좋다. 또한 여름철 홍수가 발생하면 수달의 보금자리가 물에 잠기기도 하므로 이를 대비해 인공보금자리 설치 시에는 일반 수위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임시 보금자리도 함께 설치할 필요가 있다.

‘수달 생태섬 조성’은 하천, 호수의 수면 중간 지점 쯤에 모래톱 등으로 구성된 생태섬을 조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달에게 번식과 보금자리 기능을 제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깊은 수심의 댐 근처나 저수지에서 수달이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 돼줄 수 있다.

수달에겐 물고기를 잡기위해 설치된 통발도 심각한 위험 요소 중 하나다. 통발에 갇힐 경우 익사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수달보호용 격자를 통발에 설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사진=한국수달보호협회 홈페이지

전문가들은 가장 시급한 것은 강가 및 저수지, 호수 근처에서 어업을 하는 어부들에겐 통발 그물에 수달 보호용 격자를 설치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각형이나 원형으로 된 통발 입구에 약 8.5cm정도 간격의 격자를 만들어 물고기는 들어가지만 수달은 들어갈 수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수달 보호용 격자는 독일 등 유럽에선 제도화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한국수달연구센터는 서식지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거나 여름 장마철에 떠내려온 수달들을 안전하게 구조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만약 성체 수달을 발견했다면 공격성이 강한 만큼 가까이 접근하지 말고 근처 동물병원이나 동물보호센터 등에 연락해야 한다. 특히 어린 수달의 경우 근처에 부모 수달이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먼저 전문가에게 연락한 후 전문가의 지시에 따라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다.

 서식지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거나 여름 장마철에 떠내려온 수달들을 안전하게 구조하는 것도 수달을 보호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사진은 장마철 구조돼 한국수달연구센터에서 보호 중인 새끼 수달들의 모습./ 사진=박설민 기자

김대산 연구원은 “수달은 우리나라 습지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동물인 만큼 철저한 보호가 필요하다”며 “현재 사람들의 인식 변화와 밀렵 감소 등으로 서서히 개체수가 회복되는 추세지만 여전히 많은 위협에 놓여있는 만큼 수달 보호에 대해 국민들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많은 사람들은 TV 다큐멘터리나 책 등에 등장하는 수달을 보며 귀여운 외모에만 관심을 줄뿐 이들이 얼마나 큰 위험에 놓여있는지, 우리나라의 자연생태계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젠 많은 사람들이 수달이 처한 위험에도 작은 관심을 가지고 보호를 위한 작은 행동에 나섰으면 한다. 수달이 계속해서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우리 강의 파수꾼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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